【199회. 사자도】
먹구름이 짙게 하늘에 그려진 메세츠데 왕성이었다. 비나 눈이라도 내리려는지 우중충한 하늘은 맑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을뿐더러 그 먹구름은 더욱 짙어져 분위기 자체가 절로 우울해진다 그 아래는 무엇이 있는지 붉은빛이 감도는 짙은 안개가 내려앉아 앞뒤가 분간되지 않아 그 우울함과 더불어 왠지 모를 섬뜩함까지도 느껴졌다. 그러한 왕성에 모습을 드러낸 클루드가 낮은 목소리로 일렀다.
"준비는?"
"시키셨던 일 모두 완벽하게 준비했습니다."
클루드의 부름에 뒤편에서 모습을 드러낸 의문의 사내는 고급스런 복장과 잘 정돈 되어 있는 모습을 보니 그 품위를 보아 일반 평민으로 보이진 않았다. 그런 사내 역시 흐릿한 눈동자로 클루드를 바라보며 한쪽 무릎을 꿇어 보이고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하자 클루드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렸다. 그러고는 자신의 앞으로 시선을 돌렸다.
황궁 앞 널찍한 공간 붉은빛에 안개가 서려있는 공간을 보던 클루드가 한차례 손을 휘젓자 안개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그 모습을 감추기 시작한다. 뒤이어 보이는 것은 공간을 가득 메운 거대한 핏빛의 웅덩이, 클루드에 표정이 잔인하리만치 일그러지기 시작하더니 입에서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끌끌 이 의식을 준비하려 수만 명의 영혼이 소모되었지.. 이 정도면 재물로서 충분하겠지 끌끌 자! 시작한다."
클루드가 자신 있게 소리쳤다. 뒤이어 메세츠데의 상징인 독수리 문양이 그려진 로브를 입은 많은 수의 마법사들이 클루드의 뒤편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들 역시 흐리멍덩한 눈은 지배마법에 단단히 당한 듯 클루드가 만들어 낸 의문의 웅덩이를 보아도 아무런 불만을 품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클루드의 명에 따를 뿐이었다.
그렇게 클루드의 주변에 줄지어 선 마법사들이 하늘 높이 자신의 스태프를 들어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스태프에 서서히 피어오르는 마나를 보며 클루드 역시 스태프를 들어 보이자 아귀의 스태프에 장식되어 있는 해골이 입을 벌리며 마법사들의 마나를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크하하하 그래! 모이는구나!! 모여!|
클루드가 굉소를 보이며 서서히 모이기 시작한 마나를 자신의 마나로 변해 핏빛이 물씬 풍기는 웅덩이를 향해 뻗자 흙빛을 띄는 마나가 꿈틀거리더니 서서히 웅덩이 쪽을 향해 쏠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강렬한 흙빛의 기류는 천천히 웅덩이를 감싸 안기 시작했다.
흑빛의 기류가 웅덩이에 맞닿자 갑작스레 들려오는 갖갖은 비명, 그 웅덩이 속에 갇힌 영혼들의 비명이 메세츠데를 울리기 시작하자 클루드의 미소가 더욱 기괴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웅덩이가 끓어오르기라도 하는지 거품이 일기 시작했다.
"그래! 더! 더 마나를 쏟아 내어라! 하찮은 녀석들아!"
광기 어린 클루드의 목소리가 공허하게 메아리쳤다. 그러자 짙어진 하늘은 번쩍이며 번개가 내려치기 시작했고 동시에 마법사들의 마나가 더욱 짙어지며 많은 양의 마나가 아귀의 스태프에 향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서서히 마나를 모두 소진한 마법사들이 한둘씩 의식을 잃어가기 시작하자 클루드의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마나가 부족하면 생명력이라도 갈아 넣으란 말이야!!!"
쇳소리가 섞인 클루드의 목소리에 짜증이 묻어 나온다 그러자 마나가 고갈 된 마법사들은 여전히 불만을 품지 않고 클루드의 명령에 따라 쓰러진 상태에서도 자신의 생명력까지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마법사들의 얼굴이 차츰 주름이 생겨나기도 하고 피부도 흙빛을 띠며 초췌해져 가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괘념치 않은 듯 클루드의 굉소가 더욱 커져 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마나가 웅덩이를 감싸 안기 시작했던가 서서히 들끓기 시작한 웅덩이가 한대로 모여 거대한 구를 이루더니 허공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서 나오 거라!! 나와! 이 내가 기다리고 있단 말이다!!"
클루드의 눈빛에도 핏발이 서기 시작했다. 완전히 광기에 잠식된 클루드는 계속해서 소리치고 또 소리쳤고 어느새 모든 마법사들이 자신의 모든 생명력을 쏟아 내 말라 죽은 상태가 되어서야 거대한 핏빛의 웅덩이는 클루드 앞에 메세츠데 성만큼의 크기로 커져 있었다. 클루드는 그 거대한 핏빛의 구를 보며 광기를 드러내고 있었다.
"모습을 드러내거라!! 그래!! 어서 모습을 드러내란 말이야!! 그대를 소환하기 위해 수만의 영혼을 받쳤다! 어서 나오너라! 내 부름에 응답하란 말이다!"
황성만큼 거쳐버린 핏빛의 구가 서서히 일렁이기 시작했다. 동시에 하늘에선 한두 방울 씩 빗줄기가 내리기 시작하자 핏빛의 구가 가운데에서부터 반으로 갈리기 시작했다.
서서히 균열이 일기 시작한 구, 그 균열 안에서부터 음산하고도 두려운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하자 클루드의 온몸에 닭살이 돋기 시작했다.
소름끼칠 정도로 두려운 힘, 절로 분노가 생기고 절로 탐욕이 생긴다, 거대한 공포를 끌어안고 모습을 드러내는 자의 입김이 새어나오자 클루드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동시에 빗줄기는 굵어지며 클루드의 몸을 사정없이 적시기 시작했다.
-크르르르-
짐승의 목소리가 균열에서부터 들려온다. 클루드도 알 수 없는 존재의 힘을 느끼며 더욱 광기 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었고 차츰 열린 균열 속에 사람의 손이라고 볼 수 없는 거대하고도 불그스름한 손이 튀어나와 클루드의 몸을 잡아채며 허공에 들어 올리고 있었다.
"크윽"
그러한 상황에서도 클루드는 작은 신음을 흘리면서도 연실 기대에 찬 눈으로 균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허공에 들어 올려진 클루드가 균열 사이에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동시에 클루드를 잠식하는 거대한 공포심 클루드는 웃으면서도 몸을 벌벌 떠는 아이러니함을 겪기 시작했다.
"나온다... 나온다!"
서서히 균열에 크기가 커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확연하게 보이는 불꽃에 이글거리는 두 눈에 클루드에 입가가 귀까지 찢어지기 시작했다.
"그대... 그대에 이름이 무엇이오!"
-크르르르-
클루드가 양손을 활짝 피며 다시 한번 소리쳤다.
"그대의 이름이 무엇이오!!"
클루드의 외침에 그제서야 응답하는 것일까? 한기가 가득 차오르며 절로 불쾌감을 주는 목소리가 대지를 진동하기 시작했다.
-모든 악의 근원 만국을 미혹하는 자 그리고 시험하는 자이자 참소하는 자 모든 이들의 원수이자 대적 모든 귀신의 왕 모든 이들의 왕 모든 권세를 잡는 자, 내 이름은 너무나 많다. 무엇을 원하는가..-
그 존재의 목소리는 클루드로서 전혀 들어보지 못한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만으로 주변이 불타오르기 시작했고 살아있는 모든 이들의 생명을 앗아가기에 충분했다. 그만큼 거대한 존재이자 괴수였다. 그런데도 클루드는 엄청난 한기를 느껴야 했다. 주변이 이리도 불타오르고 있는데 왜 추운지 알 수가 없었으나 그만큼 이 존재로부터 느껴지는 힘은 상상을 초월 했다.
클루드는 잔뜩 격양된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일렀다.
"그대가 간직하는 태초의 이름을 원하오 그대의 현신을 위한 이름 말이오"
".."
잠시 침묵을 유지하던 미지의 존재가 이내 침묵을 깨고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상을 얼어붙을 것만 같은 차가운 한기를 가진 목소리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