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회. 사자도】
급히 배로 돌아온 루크 일행은 곧장 배 위에 올라탔다. 그러고는 느긋하게 선원들과 노닥거리던 선장을 닦달해 배를 출항시키게 했다. 언제고 다시 율랑케가 전사들을 이끌고 자신들을 막을지 몰랐기에 조금은 다급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선장은 이유도 모른 체 황급히 느긋하게 쉬고 있던 선원들을 닦달하기 시작했다. 물론 선장이 선원들을 닦달하기 전 거대한 몸에 흰색의 털을 가진 사자의 모습을 한 레오니르를 보며 한차례 놀라 하긴 했으나 크리스티나의 설명으로 다행히도 쉽게 안정을 되찾은 그들이었으나 자꾸만 레오니르에게 시선이 가는건 어쩔 수가 없나 보다.
그렇게 서서히 거대한 배가 드넓은 바다로 출항하기 시작하자 그제야 안정을 되찾은 일행들에 루크는 곧장 갑판 아래에 객실로 가 루시를 눕히고는 갑판 위로 올라왔다. 그러자 레오니르가 루크의 앞을 가로막으며 그의 목소리가 루크의 귓가를 울려왔다.
'그 여인은 정체가 뭐지?'
"예?"
레오니르의 물음에 루크가 잠시 당황을 하다 멋쩍게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그게, 저도 정확히는 알지 못해요.."
'그가 보인 힘은 인간의 힘이 아닌 것 같던데..'
레오니르가 여전히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루크를 바라보자 루크가 고개를 끄덕이다. 그러고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하다 이내 간추려 흑마법사의 동굴에서 루시와의 만남을 말하자 레오니르의 표정이 굳어지며 잠깐의 정적이 흐르다 이내 레오니르가 입을 열었다.
'그녀가 보여준 힘을 생각한다면 그들이 왜 그녀를 깨우려 하는지 알 법하군, 그녀가 정신을 잃지 않고 전투의 경험이 많았더라면 나에게 쉽게 당하지 않을 테니.. 자신의 힘을 제어하기에도 미숙해 보이고 말이야.'
"그렇지요.. 그녀는 지금 기억을 잃었어요.. 지금 정신을 잃고 일어나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전까지만 해도 단편적인 일만 기억을 했어요, 그리고 특정 기억이 떠오르거나 하면 저렇게 변해버리기도 하죠."
루크의 대답에 여전히 심각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레오니르가 힐끔 루시가 잠들어있는 객실을 보더니 다시 루크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렇군.. 그녀를 잘 지켜야 할 거야.. 그들이 어째서 그녀를 소환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녀가 가진 힘은 쉽게 볼 일이 아닐 거다. 과연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군'
"네.. 알겠습니다. 레오니르님"
'그래.. 그럼 난 이제 좀 쉬고 싶군,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너무 힘을 썼나 몸이 뻐근하군.'
레오니르가 길게 하품을 하며 이내 갑판 위에 자리를 잡고 몸을 누이자 루크는 씁쓸한 표정으로 잠시 루시가 잠든 객실을 바라보다 이내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한편 크리스티나는 씁쓸한 표정으로 점차 멀어지는 사자도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그녀의 머릿속엔 사자도와 마흐무드와의 관계에 대한 걱정에 점차 머리가 복잡하고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메디니아가 마지막에 자신에게 한 약속이 있었으나 어찌됐건 뜬금없이 들어온 이방인에게 자신들이 소중하게 여겼던 성물을 빼앗긴 것이나 다름 없을테니 마흐무드와 사자도의 관계에 조금은 껄끄러움이 남았으리라 생각이 들자 크리스티나의 표정이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그러한 크리스티나의 마음을 느꼈는지 어느덧 몸에 붕대를 칭칭 둘러맨 쥬디스가 힘겹게 크리스티나 옆으로 다가와 멀어지는 사자도를 보며 입을 열었다.
"..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렇죠.."
크리스티나의 대답에 아쉬움이 묻어 나왔다. 어쩌면 더 좋게 해결할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이미 엎질러져 쏟아져 버린 물은 다시 담을 순 없었다. 크리스티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레오니르를 바라봤다. 조금 전 보였던 살기, 포효 할 때마다 느껴지는 거대한 힘의 파동 분명 밀려오는 적들을 막기 위한 좋은 힘이 될 것임이 분명했다. 사자도와의 관계를 저버린다 해도 충분히 이득이 될 힘이지만 크리스티나는 여전히 아쉬운 감정이 맴돌았다. 그러던 크리스티나가 이번엔 레오니르 만큼이나 충격적인 힘을 보여주던 루시가 떠오르자 크리스티나의 표정이 더욱 찌푸려졌다.
"그나저나.. 루시의 정체는 뭘까요?"
크리스티나의 물음에 쥬디스도 힘겹게 몸을 돌려 루크를 바라봤다. 신물인 레오니르와 별반 다르지 않은 거대한 힘을 가지고 있던 여인, 그녀가 날려대던 거대한 불꽃의 구가 기억나자 쥬디스의 표정도 크리스티나와 별반 다르지 않게 심각해져 갔다.
"처음 보는 힘이었어요 마법도, 신성력도, 정령력도 아니었어요 그렇다고 흑마법도 아니고 저로서는 처음 느껴보는 힘이었어요, 만약 레오니르님이 없었더라면.."
크리스티나의 목소리에 쥬디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루크 아스란님에 대한 정보는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만 루시라는 여인은 알 수 없었습니다. 혹여나 아스란가에 있던 사람이 아닌가 싶었지만 그렇지도 않은 것 같고. 정보 길드에서 들어온 정보로는 알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쥬디스의 말에 크리스티나가 잠시 고심을 하다 대답했다.
"제 생각입니다만.. 그때 저희가 그 동굴에서 봤던 제단 기억하시나요?"
"기억합니다."
"그 제단 위에 사람의 형상으로 보이는 것이 있었어요.."
"혹시.."
크리스티나의 표정이 진중해졌다. 쥬디스 역시 놀란 얼굴로 크리스티나를 바라보다 다시 루시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 흑마법사들이 소환하려 했던 그 마신이라면... 어째서 흑마법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은 것이지요?"
쥬디스의 물음에 크리스티나가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대답했다.
"저희가 마신을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잖아요, 그런 것일 수도 있고 어쩌면.."
"어쩌면?"
"그녀가 마신이 아닐 수도 있지요, 제단은 쥬디스의 라이브라에 의해 실패로 돌아갔어요 그래서 다른 사람이 소환된 것일지도 모르죠, 또는 애초에 마신이 아닌 것을 그들이 몰랐던 것일 수도 있지요."
크리스티나의 말을 듣던 쥬디스가 인상을 찌푸렸다. 과연 흑마법사들은 그 제단에서 누구를 소환하려 한 것인지 궁금증이 일었으나 만약 그들이 루시를 소환하려 했던 것이라면 지금으로 봐선 전혀 마신으로 보이진 않았다. 물론 사자도에서 보여주던 모습을 보면 마신이라 의심을 할지 모르지만 그전부터 루시를 바왔 던 크리스티나나 쥬디스로서는 그녀가 마신이라고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심지어 그녀에게선 마계의 힘이라곤 전혀 느껴지지도 않으니 전혀 알 수가 없는 노릇에 쥬디스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어 보였다.
"일단.. 지켜보도록 해요 지금으로선 아무것도 알 수 없으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