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회. 사자도】
크리스티나가 무심한 눈으로 대답했다. 쥬디스도 잠시 고민을 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으나 쥬디스의 의심스런 표정은 여전히 루시에게 향해 있었다.
"계속해서 들어오는 정보가 있다면 보고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그나저나 모든 일이 끝나면 사자도에 다시 들려야겠어요."
루시의 대한 이야기가 끝나자 크리스티나가 다시 사자도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쥬디스도 씁쓸하게 웃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었지만 그래도 다행입니다. 새로운 신물을 얻게 되었으니까요."
"그렇죠.. 레오니르님이 보여주신 힘은 확실히 도움이 될 거에요. 일단 이야기를 나눠 보도록 하죠 레오니르님과 루크님이 계약을 맺었는지도 궁금하네요"
크리스티나의 얼굴에 자그마한 미소가 서리며 천천히 걸음을 옮겨 레오니르와 대화를 하던 루크에게 다가섰다. 그러자 루크가 밝은 얼굴로 크리스티나를 맞이했다.
"루크님 혹 레오니르님과 계약이 되신 건가요?"
아까부터 묻고 싶은 이야기에 크리스티나가 더이상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묻자 루크가 고개를 저어 보인다.
"저는 레오니르님과 계약을 맺은 게 아니에요 그저 저와 이야기가 통하니 레오니르님이 저를 따라다니면서 직접 자신과 계약을 맺을 사람을 찾는다고 했어요"
"아.. 어떠한 분을 원하시는지 알 수 있을까요?"
크리스티나가 레오니르를 보며 묻자 레오니르의 입가에 미소가 걸리며 루크를 바라봤다. 그러자 루크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자신과 비등한 실력을 갖춘 자라면 누구든 좋다고 하네요 물론 말도 통해야 하구요."
"그런가요? 그런데 레오니르님과 비등한 실력자를 찾을 수나 있으려는지..하하."
레오니르의 말에 크리스티나가 허탈하게 웃어 보이며 묻자 루크 역시 크리스티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표정으로 레오니르를 바라봤다. 그러자 레오니르는 더이상 관심이 없다는 듯이 고개를 돌리며 길게 하품을 토해냈다.
"그나저나 레오니르님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죠? 저나 쥬디스도 신물과 계약을 맺은 사람들인데... 루크님과 다른 점이 있는 건가요?"
"글쎄요?"
루크가 어깨를 으쓱하며 레오니르를 바라보자 레오니르도 어깨를 으쓱했다.
"자기도 모른다고 하네요,"
"흠.. 그렇군요..루크님에게서 무언가 특별한 힘이 있나 본데요?"
크리스티나의 물음에 루크가 어색하게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특별한 힘이라곤 알 수가 없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잠시 고민을 하던 크리스티나가 이내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확실히 레오니르의 힘이 마흐무드에 있다면 분명 큰 도움이 됬을 거란 생각이 들었으나 쥬디스도 그렇고 자신 역시 레오니르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니 말이다. 그때 마침 다시 크리스티나의 귀걸이에서 빛이 터지며 제미와 나이가 나타나자 연실 하품을 하던 레오니르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졌다.
"레오니르~"
"놀자~"
그 작은 날개를 쉴 새 없 파닥이며 레오니르의 주변을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제미와 나이를 보며 레오니르가 귀찮다는 듯 앞발을 휘적거린다. 그럼에도 제미와 나이는 연실 레오니르의 붙으며 조잘거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껏 귀찮은 표정을 지어 보이며 제미와 나이가 다가오지 못하게 포효를 할 생각으로 몸을 일으키던 레오니르가 갑작스레 멈춰 섰다. 동시에 발랄하게 웃던 제미와 나이 역시 멈춰서며 어느 한 곳을 뚫어지라 쳐다보자 루크가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왜 그래요?"
루크가 의아한 얼굴로 레오니르에게 물었으나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루크가 크리스티나를 보자 크리스티나도 그들이 바라보는 곳을 보며 한껏 심각해진 표정으로 몸을 벌벌 떨고 있었다. 루크의 시선이 이번엔 쥬디스에게 향하자 쥬디스도 크리스티나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루크는 가득 의아한 표정으로 크리스티나를 바라보며 무슨 일이냐며 물었으나 돌아오는 대답 대신 크리스티나의 몸이 더욱 심하게 떨려 옴을 알 수 있었다.
마치 온몸을 옭아매는 짙은 분노와 늪과도 같은 악의가 크리스티나의 온몸을 마치 사시나무 떨 듯이 떨게 했다. 크리스티나는 억지로라도 신성력을 이끌어내 이 짙은 어둠을 막으려 애썼으나 말처럼 쉽지가 않았다.
한편 크리스티나는 알 수없는 기운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갑작스레 느껴진 기운은 곧 크리스티나의 정신을 갉아먹기 시작하며 눈가에 차츰 핏발이 서게 만들었고 가슴 속에서부터 짙은 분노를 일깨우기 시작했다. 뒤이어 세상이 빙빙 돌 듯 균형을 잡기가 쉽지 않자 한차례 크리스티나가 휘청인다. 그런 크리스티나의 모습에 루크가 간신히 붙잡아 주자 간신히 균형을 유지한 크리스티나가 잔뜩 떨리는 몸으로 루크의 옷깃을 붙잡았다.
뒤이어 다급한 루크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으나 왠지 모르게 목소리가 먹먹하게 들려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가 없을 때였다. 레오니르가 힘차게 포효를 내 뿜었다. 그러자 크리스티나를 비롯해 쥬디스와 성기사들을 옭아매던 거대한 악의가 마치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처럼 걷히기 시작했다.
"허억... 후우..후우.."
그제서야 크리스티나의 가쁘게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크리스티나님? 쥬디스! 모두 괜찮은가요?.."
쥬디스 역시 간신히 숨을 몰아쉬며 힘겹게 다친 상처를 부여잡으며 고개를 끄덕여 보이지만 루크가 보기엔 그리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그런 그들을 보며 레오니르의 목소리가 루크의 귓가에 들려왔다.
-... 이거 꽤 큰일이군.. 알 수 없는 거대한 악마가 태어났어... 이리도 먼 곳에서까지 악에 민감한 사람들에게 피해를 가게 할 정도라면, 웬만한 흑마법사들이랑 비교할 수조차 없을거야.-
"도대체.."
루크가 한껏 심각해진 표정으로 레오니르에게 되물었다. 그러자 가쁜 숨을 몰아쉬던 크리스티나가 대신 대답했다.
"가..갑자기 온몸에 피가 들끓기 시작했어요.. 분노가 차오르고.. 살심이.. 살심이 차올랐어요.."
여전히 루크를 붙잡고 있는 크리스티나의 손에서 떨림이 느껴져 왔다. 그만큼 느껴졌던 거대한 힘에 잔뜩 겁을 집어먹고 있다는 뜻이었다. 심지어 언제나 굳세고 위험한 상황일 때도 공포심이나 두려움 따위 모르던 쥬디스 까지도 힘겨워하는 모습을 보니 루크의 표정이 더욱 심각해졌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왜 느끼지 못했는가하는 의아함이 들자 루크는 고개를 돌려 다른 성장과 선원들을 바라보았다 그들 역시 의아한 표정으로 크리스티나와 쥬디스를 보며 당황하고 있었고 오히려 조금 전 포효 하던 레오니르의 모습에 더욱 놀란 모습을 지어 보이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자 레오니르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너희는 이 여자랑 저 사내처럼 그 기운에 민감하지 않아서 그렇다. 그 기운에 둔감하니 당연한거다.-
"그렇군요.."
레오니르의 말에 루크는 멋쩍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때였다. 점차 몸을 추스르기 시작한 크리스티나가 루크를 불렀다.
"루크님.."
"예?"
"이, 이제 괜찮으니 놓아주셔도."
"아.."
자기도 모르게 크리스티나의 허리를 잡고 있던 루크가 당황하며 급히 크리스티나의 몸에서 떨어졌다. 크리스티나도 괜스레 헛기침을 하며 어색한 모습을 지어 보이자 레오니르가 끌 끌거리더니 다시 갑판 위에 몸을 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