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루크 아스란 전기-203화 (203/412)

【203회. 사자도】

한편 마흐무드 역시 조금 전 느껴진 알 수 없는 힘에 난리가 난 상태였다. 아직 수련이 부족한 초급 사제들이나 성기사들은 다행히도 느끼지 못해 피해가 미비했으나 그 윗선 악에 좀더 민감한 고위급 사제들은 갑작스레 느껴지는 악의와 분노에 자기도 모르게 분노를 터트리기도 또는 두려움에 몸을 떨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급히 위기를 감지한 조셉과 수잔을 비롯해 교황을 위한 추모 기도를 멈추고 모습을 드러낸 추기경들에 의해 큰 피해를 입지는 않게 되었다.

그런 일이 있은 직후 교황청 내부에 있는 회의실로 보이는 곳이었다. 둥그런 원탁에 여러 의자들이 놓인 곳에 수잔과 조셉이 잔뜩 일그러진 표정으로 마주 보며 심각하게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회의실 문이 다급히 열리며 곧 밖에서부터 수잔과 조셉의 복장과 별반 다르지 않은 추기경들이 한둘씩 줄지어 들어오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요?"

한 추기경이 조셉과 수잔을 향해 묻자 조셉이 평소와는 다를 정도로 심각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나도 잘 모르겠네.. 하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하다네... 이렇게까지 우리를 느끼게 할 수 있는 거대한 악이 깨어났다는 거지.. 어처구니가 없군 알 수 없는 기운 하나만으로 고위급 사제들의 심상을 깨트리니 말이야."

조셉의 말에 회의실에 한차례 침묵이 맴돌았다. 그때 다른 추기경들보다 조금은 젊어 보이는 다른 추기경이 조셉을 향해 물었다.

".. 성녀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성녀는 마리에테님의 신물의 행방을 찾으러 잠시 사자도에 갔지. 아마 돌아오는 데까지는 좀 걸릴 게야."

"그렇군요.. 성녀님은 괜찮으시려는지.."

중년 사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심각한 표정으로 대답하자 수잔이 걱정말라는 듯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크리스티나는 괜찮으실게야. 아직 어려 보여도 우리로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신성력을 그 몸에 담고 있으니 말이야"

수잔의 말에는 확신이 묻어 있었으나 수잔을 제외하고 다른 추기경들의 표정은 여전히 좋지만은 않았다. 자신들 역시 순간적으로 악의에 휩싸인 걸 막아내는데 애를 좀 먹었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조금 전 느낀 힘은 추기경들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거대한 힘이란 걸 방증했다.

"일단 정보가 중요하겠군.. 정보 길드에 들려서 메세츠데 제국에 대한 정보를 더 알아봐야겠어 그 힘이 메세츠데에서부터 나온 거라면 어쩌면 아즈문만으로 그들을 막을 수 없을지도 모르겠네.."

"그 방벽으로도 말입니까?"

"어쩌면.."

조셉의 얼굴에 한없이 진중하다 수잔 역시 조셉의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교황이 서거하기 전부터 걱정하며 모두에게 거대한 악이 옴에 대비하라 하던 진정한 큰일이 정말 코앞까지 다가온 것이 아닌가 하는 위기감이 들자 조셉은 예전과 같은 장난기 가득하고 밝은 웃음을 보일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뒤늦게 회의실 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금발의 여인이 모습을 드러내자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쏠리기 시작했다.

"조셉! 수잔!"

급히 회의실을 박차고 들어오는 여인은 다급해 보였으나 이내 말을 끝까지 이어가진 못했다. 바로 회의실에 가득 들어선 추기경들 때문이었다.

"어.. 그.. 모두 반갑습니다.. 추기경님..."

"호? 루미에르님 아니십니까? 여길 어떻게?"

진지하던 중년 사내의 표정이 금세 반가워하는 얼굴이 되어 루미에르를 향해 말했으나 이내 엄숙한 분위기에 급히 반가웠던 얼굴을 굳히며. 괜스레 헛기침을 했다. 루미에르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도 여전히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살짝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바.. 반가워요! 지아코 추기경님.. 그리고 메르니스 추기경님이랑 자비에르 추기경님 호아킨 추기경님까지 어떻게 전부?"

조셉과 수잔을 제외하고 한창 교황의 추모 기도에 들었던 다른 추기경들의 모습에 루미에르가 조금 전 느꼈던 기운도 잊고 놀란 얼굴을 보이며 물었다. 그러나 이내 표정을 굳히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맞아!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방금, 방금 이상한 느낌을 받았어요. 한동안 움직일 수조차 없었어요!"

"그래. 우리 모두 다 느끼고 이렇게 오랜만에 모이게 된 거지"

수잔이 다급해 보이는 루미에르를 진정시키며 대답했다.

"알 수 없는 거대한 악마가 태어난듯하구나 곧 큰일이 벌어질 거야 어쩌면 루미에르 네가 살고 있는 아즈문이 다시금 큰 위기에 빠질지도 모른단다.."

"그.. 그런.. 어떻게 해야 하죠 그럼?"

아즈문이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수잔의 말에 루미에르가 모두를 돌아보며 묻자 수잔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신께선 우리에게 이겨내지 못할 시련은 주시지 않는단다. 이것 또한 우리가 이겨내야 할 시련 겸허히 받아들이고 이겨 내야겠지 어떻게 이겨내야 할지는 아직 우리도 잘 모르겠으나, 그래도 우린 노력을 하고 있잖느냐?"

수잔의 말에 루미에르가 여전히 근심어린 표정으로 되물었다.

"노력이라니요?"

"마리에테의 신물 말이다.. 성녀가 이 바쁜 시기에 사자도에 간 이유도 그렇고 말이야. 교황도 그랬고 우리가 할 수있는 최선은 그 성물을 한시라도 빨리 모아야 한다는 것이지 않겠느냐"

"맞아요!..할아버지.. 아니 교황님께서도.. 돌아가시기 전에도 제게 성물을 모아야 한다고 편지에 써서 보내셨어요.."

여전히 근심이 가시지 않은 루미에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자 수잔도 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에도 가시지 않는 근심은 여전히 루미에르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혹여나 지금 자신이 이곳에 있는 것이 잘못된 행동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자 그 근심은 더욱 커져갔다.

한편 교황청 객실에 있던 아스란가의 일행들 역시 갑작스런 악의 힘에 의해 당황하고 있었다. 평범한 이들은 못 느꼈으나 갑작스레 파이시스와 아쿠아리우스가 빛을 토해내기 시작했고 뒤이어 아리스가 홀로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아리스?"

레이니는 루크가 없음에도 갑작스레 모습을 드러낸 아리스를 보며 의아함을 표했으나 아리스는 연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창 밖을 보며 대답을 하지 않고 있었다. 연이어 엘리자베스를 비롯해 다른 이들도 놀란 표정으로 아리스에게 시선이 쏠리게 되자 아리스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모두를 보며 입을 열었다.

-알 수 없는 거대한 악마의 힘이 느껴졌다. 나로서도 처음 느끼는 거대한 힘이다..-

아리스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아리스를 바라보자 아리스는 다시 고개를 돌려 다시 창밖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거대한 분노와 들끓는 악의, 그가 깨어난 것만으로도 민감한 사람들의 정신을 옭아맬 거대한 악마다..이건.. 흑마법사 따위에 힘이 아니다.-

"그런, 어디서? 어디에서 느껴지는 거죠? 설마 메세츠데인가요?"

엘레니아가 급하게 되묻자 아리스가 알 수 없는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곧 그 힘을 감출 수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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