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루크 아스란 전기-204화 (204/412)

【204회. 사자도】

깊게 초록색의 로브를 뒤집어쓴 여인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녀가 있는 푸른 숲 속에는 여러 종의 동물들이 그녀의 곁을 맴돌고 있었다. 여인은 동물들의 털을 손으로 쓸어주기도 또는 풀로 만든 피리를 불며 동물들이 편히 있을 수 있게 만들어 주기도 했었다.

지금도 한창 풀피리를 부르며 동물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무엇에 놀랐는지 한창 여인의 피리를 듣던 동물들이 잔뜩 겁을 먹고는 이리저리 바쁘게 도망쳐 숲 속으로 들어서는 모습이 보이자 여인의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떠나가는 동물들을 보며 천천히 몸을 일으킨 여인이 낮게 중얼거렸다.

"그녀가 깨어난 지 얼마나 됐다고.. 이번엔 다른 존재가 현세에 모습을 드러냈구나.. 흑마법사들의 씨를 말렸어야 했는데... 라우엘님.. 어찌 그들은 포기를 모르는 걸까요?"

여리여리한 목소리로 한탄을 토해내던 여인이 깊게 눌러쓴 로브의 모자를 벗어냈다. 그러자 긴 은발이 길게 드러내며 등 아래로 흘러내렸고 동시에 그녀의 기다란 귀가 모습을 드러냄에 그녀의 존재는 엘프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엘프 여인은 한껏 불만스런 표정을 지어 보이며 다시 허공을 향해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분명 잠들어 있는 루시에 분노를 이용하겠지.. 그 분노는 그 존재에 불멸의 힘이 되어 줄테니깐.. 큰일이구나..예정보다 조금 더 이른 시간이야.."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던 여인은 이내 품속에 꺼낸 구슬을 불안한 듯 만지작거리다 살짝 힘을 주어 구슬을 깨트렸다. 그러자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하나의 활이 소환되어 여인의 팔에 들렸다. 여인은 활을 자신의 얼굴 까지 들어 보이며 아무것도 없는 활에 천천히 시위를 매기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무것도 없는 시위에 빛이 일렁이더니 곧 하나의 화살이 되어갔다.

" 세지테리어스 내게 길을 인도해줘. 그곳에 가봐야겠어"

여인이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며 빛이 일렁이는 시위를 놓자 빛으로 물든 화살이 허공을 뚫고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여인의 몸도 몸이 빛으로 물들며 그 화살을 타고 빠르게 모습을 감추었다.

☆ ☆ ☆

다시 마흐무드로 돌아오는 마차 안이었다. 루크와 크리스티나는 딱히 이렇다 한 말이 없었다.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서로의 고민이 깊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갔을까? 그나마 정신이 다시 돌아온 루시에 의해 깊어가던 정적이 깨지며 사자도에서의 기억이 남아 있는지 궁금했던 루크가 루시를 향해 물었다. 그러자 크리스티나도 궁금했는지 잠시 상념에서 빠져나와 루크와 같이 루시를 바라보았다.

"사자도에서 있었던 일 기억나나요?"

"아니? 왜 무슨 일이 있었어?"

천역덕스럽게 루시가 고개를 갸웃하며 오히려 되묻자 루크가 멋쩍게 웃어 보인다. 연이어 크리스티나를 보자 크리스티나가 다시 루시를 바라보았다.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거에요?"

"무슨 소리야? 음.. 난 내가 잠든 줄 알았는데..?"

크리스티나를 보며 루시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하자 크리스티나가 잠시 루시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루시에 칠흑 같은 검은색의 눈동자는 여전히 순수함을 띠고 있었고 목소리에 작은 떨림 조차 없자 크리스티나가 인상을 썼다. 아무리 보아도 루시의 눈과 목소리에 거짓이라곤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가요.."

크리스티나가 여전히 의심가득한 눈을 지우지 못했으나 이내 시선을 거두며 말했다. 괜스레 하나의 걱정이 또 늘은 듯싶었다. 그때 알 수 없는 힘을 내뿜던 루시가 혹여나 흑마법사들이 원하던 그 마신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으나 지금으로선 알 수가 없었기에 드는 답답함이었다. 그런 크리스티나가 이상했는지 루시가 루크를 보며 물었다.

"루크 내가 이상한 짓이라도 했어? 잠꼬대라도 했나?"

여전히 의아함이 가득한 얼굴로 루시가 묻자 루크가 크리스티나를 한차례 바라보다 다시 루시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아니에요 갑자기 루시가 잠들어서 놀라서 그랬어요."

"그래? 헤헷 미안 나도 모르게 너무 졸렸어..참으려고 해도 참아지지가 않던걸? 그래서 나도 모르게 잠들어 버린 것 같아."

루시가 멋쩍게 웃으며 말하자 루크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에도 크리스티나는 여전히 의심에 찬 눈으로 루시를 바라보았으나 이내 고개를 저어 보였다. 그런 크리스티나를 보던 루크가 이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군요, 많이 피곤했나 보네요?"

"그랬나봐.. 지금도.. 이상하네 많이 잔 것 같은데 아직도 피곤해."

"그래요? 좀 더 자도록 해요.. 그럼."

루크가 웃으며 대답하자 루시가 길게 하품을 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곤 루크의 어깨를 배며 눈을 감는다 루크는 그런 루시를 보다 여전히 하고싶은 질문이 많았으나 이내 질문을 할 순 없었다. 괜히 잘못하다간 루시에게 사자도에서 보았던 광기가 다시 재발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루크는 그런 루시를 바라보다 다시 크리스티나를 쳐다봤다. 여전히 의심가득한 눈빛은 지워지지 않고 루시를 향해 있는 것이 마흐무드에 도착한 순간 레오니르 뿐만 아니라 루시 때문에도 바빠질 우려가 있을거라 생각한 루크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마차가 얼마나 더 달렸을까? 마차는 다시 정적이 맴돌기 시작했다. 각자 상념에 빠져있음은 물론 루시 역시 금세 잠이 들었는지 새근거리는 소리가 들려오자 지루함을 느끼던 루크는 자신의 옆에 놓인 볼품 없이 기다란 검을 보며 속으로 일렀다.

'레오니르님'

'뭐냐?'

레오니르는 사자의 몸으로 마차에 탈 수가 없어 검으로 변한 상태였다. 그렇기에 검을 붙잡고 생각을 불어넣자 금세 레오니르의 대답이 들려왔다.

'과연 신물을 다 모인다면 레오니르님이 느꼈던 그 힘을 막을 수 있을까요?'

'그건 나도 모르지, 그저 마리에테가 만든 신물엔 각자의 역할이 있다는 거와 이러한 일을 막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만이 내가 아는 전부다.'

'그렇다면 왜 마리에테님이 애초에 막지 않은 거지요? 왜 굳이 신물들을 이렇게 따로따로 퍼트려 놓은 건가요? 처음부터 모이기 쉬운 곳에 모아 두었다가 해결하면 되는 거 아닐까요?'

여태 참아왔던 궁금증에 루크가 쉴 새 없이 레오니르에게 묻자 잠시 레오니르가 침묵을 하더니 이내 생각을 정리했는지 다시 목소리가 들려 왔다.

'마리에테가 만들었다 해도 그 쓰임에는 각자 주인이 따로 있어, 마리에테도 모든 신물을 다 사용하진 못했어 그 예로 내 힘이 그러하지 마리에테의 그 연약한 몸으로 내가 가진 모든 힘을 다 끌어내지 못했어, 루크 마리에테는 그저 신의 심부름꾼일 뿐이야. 그래 어떻게 보면 저 여인과 같지 성녀라고 했나? 마리에테도 그렇다고 볼 수 있어 그저 신의 부탁으로 우리를 만들게 된 것이지 그리고 우리가 서로 다른 곳에 있었던 이유도 각자의 주인이 충분히 인연이 되면 찾을 수 있기에 그곳에 자리 잡은 거야 나와 너처럼 말이야 아니면 아리스와 너도 그렇고 또는 저 소녀랑 같이 있는 제미나이도 그렇고 말이야 다 이유가 있고 인연의 끈이 이어져 이으니 지금 이곳에 우리가 함께 하고 있는 이유지'

'그렇군요.. '

레오니르의 말에 루크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신물들이 깨어나는 속도가 느리긴 해도 이렇게 모이고 있지 않은가? 곧 그 마흐무드란 곳에 도착하면 아리스와 파이시스 그리고 아쿠아리우스까지 있으니 지금 여기엔 라이브라와 제미나이까지 있고 모이는 속도가 느리다 해도 어찌됐건 모이고 있으니 언젠간 다 모일 거야."

'네.. 제발 늦지 않게 모였으면 좋겠네요.'

'늦진 않을거야 분명.. 아무튼 난 도착할 때까지 잠들어 있겠다 또 내가 깨어난 걸 안다면 제미나이가 귀찮게 할지 모르니 말이야.'

'네..하하.'

배에서 한동안 제미와 나이에 의해 귀찮음에 시달린 레오니르에 모습에 루크가 헛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러자 가만히 침묵을 유지하던 크리스티나가 루크를 보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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