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회. 다시 돌아오다】
"추기경님 마흐무드 입구에 경비소에서 성녀님께서 교황청에 도착한다는 전언을 보내왔습니다."
한때는 교황이 자리하고 있어야 할 업무 실이었다. 소소하게 꾸며진 방안, 마흐무드의 교황이 사용했던 그대로 고급진 책상이 아닌 평범한 나무 책상으로 되어 있는 이곳엔 수많은 책들과 서류가 가득 쌓여 있었다. 그러한 곳에 한 기사가 들어오며 대답하자 책상에 앉아 서류를 보며 잔뜩 인상을 쓰던 수잔의 표정이 절로 펴지기 시작했다.
"호오! 크리스티나가? 좋아!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지 어서 나가보자꾸나!"
수잔이 서류를 뒤로 하고 급히 몸을 일으키며 말하자 기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잔과 같이 몸을 일으켰다. 그렇게 수잔을 따라 밖으로 향했고 한달음 달려 1층으로 내려가 정문으로 향하자 곧 정문을 통과하며 들어오는 커다란 마차와 흰 백마를 이끄는 쥬디스와 성기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수잔은 반가운 얼굴로 마차를 바라보자 뒤이어 조셉과 함께 다른 추기경들도 1층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서서히 멈추기 시작하는 마차는 수잔의 앞에 멈춰 서자 그 안에 타고 있던 크리스티나를 비롯해 루시와 루크가 마차에서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아! 추기경님!"
마차에서 내린 크리스티나가 자신들을 마중 나와있는 추기경들을 발견하자 기쁜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한달음에 달려가 수잔에게 안겼다. 그러자 수잔이 크리스티나의 등을 조심스럽게 토닥여 주며 입을 열었다.
"그래! 우리 크리스티나 고생 많이 했구나? 얼굴이 반쪽이 되어있어?"
"헤헤.. 고생이라니요 괜찮아요!"
뒤이어 조셉을 비롯해 다른 추기경들도 크리스티나를 보며 고생했다는 말을 전하자 크리스티나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괜찮았어요, 여행하는 것 같아서 좋았던걸요 물론 좋지 않은 일도 있었지만 말이에요"
"그러느냐? 괜찮다, 크리스티나 네가 돌아왔으면 다행인 거야! 허허허"
조셉이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연이어 쥬디스가 말에서 내리며 급히 추기경들 앞에 서며 외쳤다.
"성기사단장 쥬디스가 임무를 마치고 복귀했습니다."
"그래요! 쥬디스님 고생 많았어요.. 피곤할 테니 들어가 몸좀 편히 쉬도록 하고 나중에 보고를 부탁해요"
"예!"
수잔의 말에 쥬디스가 급히 고개를 숙여 보이며 자신의 말과 성기사들을 이끌고 교황청에 옆쪽에 자리 잡은 성기사단의 숙소로 향했다. 성기사들의 숙소는 교황청보다는 반절 정도의 크기를 자랑했지만 그렇다고 화려하게 꾸며진 곳은 아니었다.
그렇게 쥬디스가 숙소로 떠나고 크리스티나와 추기경들 그리고 멋쩍게 서 있는 루시와 루크가 남게 되자 그때 마침 수잔과 조셉에 눈에 멀뚱히 서 있는 루크와 마주쳤다. 그러자 얼떨결게 루크가 급히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반갑습니다 루크 아스란이라합니다."
한동안 마흐무드에 있으면서도 추기경과의 만남은 처음인 루크가 멋쩍게 웃어 보이며 고개를 숙여 인사하자 조셉과 수잔이 사람 좋은 인사를 하며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그러더니 수잔이 위아래로 유심히 루크를 바라보다 의문의 찬 음색으로 입을 열었다.
"이 아이가 그 늙은이가 말하던 빛이 이끄는 아이인가?"
"그러게 말이야? 별 특별한 것은 못 느끼겠군"
조셉과 수잔의 말에 루크가 고개를 갸우뚱하자 크리스티나가 대신 대답했다.
"무슨 말이에요?"
"아니다 아냐 그건 나중에 얘기를 해보고 일단 힘들 테니 어서 들어가자꾸나"
수잔이 살며시 고개를 저으며 대답하자 루크로서는 오히려 더욱 궁금증이 쌓여만 갔다. 그러나 수잔과 조셉은 이미 크리스티나와 함께 교황청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기에 루크는 궁금증을 해결하지 못하고 그저 그들을 따라 교황청 내부로 들어서야 했다.
그렇게 그들과 함께 교황청으로 들어온 루크를 향해 조셉이 무언가 생각난 듯 손가락을 튕기며 자신을 따라 들어오는 루크를 향해 말했다.
"그나저나 루크라 했던가? 자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객실에 있는 휴게실에 모여 있으니 어서 올라가 보게 아주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어"
"아!"
그제야 루크도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생각났는지 궁금증 가득하던 표정은 금세 사라지고 얼굴에 밝은 미소가 가득차기 시작했다.
조셉의 말을 들은 루크는 그들을 만나고 싶음에 마음속에 다급함이 생겨나기 시작하자 조셉과 수잔이 가보라고 고개를 끄덕이자 급히 고개를 숙여 보이며 객실이 있는 2층으로 루시와 함께 발걸음을 바삐 놀렸다.
뒤이어 2층에 다다른 루크의 눈에 익숙한 문이 보인다. 저 문만 연다면 객실로 통하는 길목 전에 휴게실이 있을 테고 그곳에 루크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들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들자 마음이 더욱 급해졌다.
그렇게 익숙하게 문을 열고 들어서자 루크에게 더할 나위 없이 익숙하고 보고 싶었던 사람들이 보였다. 뒤이어 그들 역시 문을 열고 들어온 루크를 보며 놀랐는지 한껏 커다란 눈이 더욱 커져 오르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었다.
"어머니.. 세리스! 하핫 모두들!"
루크의 목소리에 라이아는 물론 세리스를 비롯해 모두의 눈망울에 작은 파문이 일더니 물방울이 서서히 맺히기 시작했다. 그러자 루크 역시 괜스레 눈물이 흘러 나오려 했다. 오직 루시만이 그들의 상황을 보면 약간 불만스런 표정을 지어 보이고 있었으나 지금 자신이 껴들 때가 아니란 것을 아는지 한걸음 뒤에 빠져 조용히 지켜보곤 했다.
"루크!!"
역시나 가장 먼저 행동한 것은 레이니였다. 한달음에 달려와 루크를 껴안자 뒤이어 에이리스와 안느란테 로제스까지 모두 루크에게 달려와 안겼다.
"흑... 루크 보고 싶었어! 제발 다음부터는 이러지마!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미안해요 레이니누나."
레이니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소리치자 루크로서는 그저 미안하다는 말만 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얼마나 무모했고 모두에게 끼친 걱정이 얼마나 컸는지 알았기 때문에 딱히 이 상황에서도 떠오르는 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뒤이어 안느란테 역시 울먹이며 안겨오자 루크는 지난 기억이 떠올랐다. 어떻게 보면 안느란테에게 가장 미안하게 느끼는 루크였기에 저번에 본 이후로 꽤 초췌한 모습의 안느란테를 보며 미안한 감정이 앞서기 시작했다. 루크는 그런 안느란테를 보며 멋쩍게 웃으며 안느란테의 등을 토닥여주자 안느란테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너무해요.. 루크님 그날 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어떻게! 제가 얼마나 힘들고 슬펐는지 아는가요?"
안느란테의 목소리에 서운함과 원망스러움이 담겨 있었다. 루크는 씁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미안해요."
"너무해요.. 정말 너무해요!"
연실 루크를 보며 슬퍼하는 사람들을 보자 루크는 문뜩 쥬디스가 자신에게 해주었던 말이 떠올랐다. 자신의 행동은 영웅적인 모습이 아닌 멍청하고 무모한 행동이었음은 자신을 생각하는 주변인들을 무시한 행동이라던 쥬디스의 말이 갑작스레 떠오르며 비수가 되어 루크의 심장에 밖혀 드는듯했다. 그러한 느낌에 루크는 지금으로선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뒤이어 엘레니아의 모습이 보인다. 언뜻 보기에도 단단히 화가 난 듯 엘레니아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미안해요.. 누나."
루크의 목소리에 엘레니아가 묵묵히 루크에게 다가섰다. 그러고는 짝 소리가 한 차례 방안을 울리며 루크의 뺨이 홱 하니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