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회. 다시 돌아오다】
레이니가 레오니르를 얻게 된 그날 저녁이었다. 교황청 내에 소소하지만,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만들어진 대식당엔 오랜만에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추기경 수잔이 모두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죄송합니다. 아스란의 형제자매 여러분, 진작에 이러한 자리를 만들었어야 했는데 그동안 여기저기서 바쁜 일이 있어 이제야 얘기를 나누게 되었군요. 다시 한번 마흐무드의 추기경으로서 여러분의 방문을 환영한답니다!."
수잔이 미안한 감정을 품으며 입을 열자 라이아가 황급히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저희야말로 이렇게 사전에 얘기도 없이 마흐무드로 와서 죄송합니다. 오히려 저희가 더 죄송할 뿐입니다. 게다가 루크를 치료해 주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성녀님에게도 그렇고 추기경님에게도 감사하단 말을 다시 한번 전해주고 싶습니다."
라이아가 한껏 예를 차리며 대답하자 크리스티나가 웃어 보이며 고개를 저었다. 수잔 역시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기분이 좋아진 듯 밝게 웃어 보이다. 옆에 있던 조셉이 익살스럽게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이번에 축하할 일이 있지 않습니까. 레이니양이 레오니르님과 함께 하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조셉의 말에 레이니가 멋쩍게 웃어 보이며 자신의 옆구리에 차 있는 기다란 클레이모어를 바라보다 이내 말을 이었다.
"아직, 확실하게 계약을 맺은 게 아니라서..."
"그렇지 않습니다. 레이니양의 명성은 마흐무드에서도 많이 들었답니다. 검성 데미아스님의 뒤를 이을 인재라고 들었습니다만 오늘 레오니르님과 검을 나누는 모습을 보니 그 명성이 헛소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답니다. 오히려 그 명성이 부족할 정도로 더 뛰어나 보였답니다. 레이니양 때문에 우리 성기사들도 지금 독이 바짝 올라 있는 상태이지요!"
"하핫.."
조셉의 말마따나 레이니와 레오니르의 대련을 본 성기사들은 지금도 연무장을 빠져나가지 않고 수련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것이 레이니 탓이라는 조셉의 말에 레이니가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히며 조신하게 웃어 보이자 수잔이 말을 이었다.
"레오니르! 또는 사자의 검, 레이니양 그 검은 신물 중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신물이라 전해집니다. 그렇기에 이렇게 기회를 잡은 것만 해도 정말 대단한 일이라 생각이 드니 충분히 자부심을 가져도 된답니다. 레이니양"
"네, 감사합니다. 추기경님."
레이니가 조신하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수잔이 밝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다시 한번 모두를 한차례 훑어 보다 말을 이었다.
"그래도 다행입니다. 벌써 이곳에 아쿠아리우스, 라이브라, 제미나이, 레오니르, 파이시스, 아리스 이렇게 여섯의 신물이 모였으니 말입니다. 이렇게 저희가 모인 것도 라우엘님이 이어주신 인연, 서로의 만남에 미안함이나 죄송스러움이라기보단 축배를 들어야 마땅하지요! 어떻게 보면 교황 그 늙은이 말대로 루크님이야 말로 인연의 중심이 되시는 분 같군요!"
"예?"
수잔의 말에 루크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되물었다. 뒤이어 아스란가의 사람들도 고개를 갸웃해하자 수잔이 아스란가의 사람들을 한 차례 훑어 보고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교황이 서거하기 전, 신탁을 받은 내용입니다. 사실 신탁의 내용은 마흐무드외 사람들에겐 알리면 안 되지만 이것 또한 운명이라 생각하고 우린 같은 적을 보고 있으니 충분히 말해줘도 된다고 생각하는 군요, 크리스티나 괜찮겠느냐?"
"그럼요"
수잔의 물음에 크리스티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자 수잔의 표정이 진지해지며 말이 이어졌다.
"이번 신탁은 정말이지 간단했습니다, 다른 때처럼 아리송하게 비유 문으로 되어 있지도 않았지요, 북쪽에서 자라난 악마의 싹이 태어난다는 이야기와 12개의 신물이 인연의 중심으로 모여 하나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한 신탁과 함께 교황이 서거했고 제미와 나이가 깨어나 예언을 했지요 그리고 크리스티나가 그들이 의식을 행하는 동굴을 찾을 수 있었고 그곳에서 루크님을 만날 수 있었지요 그리고 루크님에 의해 모두가 모일 수 있게 되었고 결국엔 신탁대로 악마가 태어났지요!"
수잔을 비롯해 다른 추기경들의 표정이 꽤 진중해졌다.
"아무리 우리가 신물의 소재를 찾으려 노력해도 제미와 나이, 그리고 라이브라 빼고는 그 어느 소재도 알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루크님이 오기 전까지 말이지요, 그런데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루크님이 오시고 벌써 여섯 개나 되는 신물이 모였으니 분명 루크님은 교황이 말한 인연의 중심이 되는 자가 맞을 겁니다. 그리고 루크님으로 인해 모든 신물이 모이게 되리라 저는 굳게 믿고 있답니다."
".. 저로 인해 말입니까?"
"그렇지요. 전 그렇게 생각한답니다."
수잔의 진중한 눈빛이 루크에게 향했고 뒤이어 다른 이들의 시선도 루크에게 향했다. 루크는 수잔의 말을 듣고는 잠시 상념에 빠져들었다. 혹시나 자신이 지구에서 이곳으로 오게 된 이유가 다 이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인연의 연속에 루크가 고개를 들어 자신과 인연이 이어진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레이니를 비롯해 엘레니아, 안느란테, 에이리스, 릴리, 그리고 크리스티나를 비롯해 마흐무드에서 만난 여러 사람들까지 어쩌면 자신이 이곳에 온 이유가 정말 수잔이 말했던 라우엘에 의해 만들어진 인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만약 이 일이 끝나면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걱정도 들었고 혹여나 자신은 정말 별것도 아닌데 무언가 잘못되어 이 인연의 실타래에 빠져 모든 것을 망쳐 놓은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자 머리가 어질어질해 오고 불안감이 엄습했다.
루크는 진중한 표정으로 차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했으나 지금 자신이 느끼고 있는 속마음을 얘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저는.. 솔직히 부담이 되네요... 정말 추기경님이 말한 대로 제가 그 인연의 중심일까 하는 의문이 들어요.. 저는 아무런 능력도 없어요 그렇다고 흑마법사인 클루드를 막은 능력은 더더욱 없단 말이에요! 그런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솔직히 자신감이 들진 않아요."
루크가 모두를 바라보며 솔직하게 얘기를 했다. 그러자 루크의 옆에 앉은 레이니와 엘레니아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루크의 양손을 잡아 주었으나 그럼에도 근심 걱정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그러나 수잔은 그러한 루크의 걱정에도 여전히 자애로운 미소를 그리며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루크님은 지금까지 잘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예?"
수잔의 말에 루크가 고개를 갸웃하며 묻자 수잔이 잠시 뜸을 들이더니 말을 이었다.
"지금까지 들어 본 바로는 루크님에 의해 흑마법사들이 꽤 애를 먹었다고 들었습니다. 물론 앞뒤 생각하지 않은 무모함이 있었지만 말입니다."
"제가요?"
루크가 의아해하며 되묻자 수잔이 고개를 끄덕였다.
"들었습니다. 윈랜드로 가기 전 엘프님 일족을 도와주었던 일, 그 일 역시 흑마법사들의 계획이었고 멋지게 망가트렸지요, 그리고 윈랜드에서 지크문드님과 데미아스님에게 마계의 기운이 중독되었을 때도 누구의 힘으로 재기할 수 있었습니까? 만약 루크님께서 그들을 치료해주지 않았더라면? 윈랜드는 벌써 함락이 되었을지도 모른답니다!
또! 아즈문에서 있었던 일, 누가 우리 여린 루미에르를 도와주었고 아즈문의 위기를 누가 막아내었습니까? 루미에르가 잡혔을 때도 말이지요 루크님이 없더라면 아즈문역시 흑마법사들 손에 들어갔을 겁니다."
수잔의 말에 루미에르와 루크의 시선이 이어지자. 루미에르가 루크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며 밝게 웃어 보였고 계속해서 수잔의 말이 이어졌다.
" 사자도에서 있었던 일도 그러하지 않습니까? 루크님이 없었더라면 레오니르님은 깨어나지 못했을 겁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지요 물론 너무 무모한 일이었지만 어떻게 된 게 모두 나쁘지 않게 흘러가고 있답니다. 라우엘님이 도와주셨을지도 모르지만, 이 모두가 루크님이 직접 이루어낸 일입니다. 루크님은 정말 잘하고 계십니다. 지금도 그때처럼 루크님의 뜻대로 루크님의 마음대로 행하시면 됩니다."
수잔의 말에 루크가 말을 잇지 못했다. 뒤이어 루미에르가 고개를 끄덕이며 루크를 바라보자 둘의 시선이 하나가 되자 루미에르가 밝게 미소를 그리며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