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회. 다시 돌아오다】
"루미에르님"
"예 말씀하세요. 에이리스님"
에이리스의 부름에 루미에르가 대답했다.
"궁금하게 있어서... 잠시 이야기를 나눴으면 해요. 물론 둘이서만요"
에이리스의 물음에 루미에르가 고개를 갸웃하다 이내 고개를 끄덕이곤 에이리스를 데리고 사람들이 없는 한적한 복도에 마주 섰다.
"여기면 괜찮을 거에요 얘기해보세요."
"네..."
에이리스가 복도 양옆을 훑어 보며 잠시 우물쭈물했다. 루미에르는 그럼에도 에이리스를 닦달하지 않고 여유롭게 기다려 주자 이내 에이리스의 입이 힘겹게 열렸다.
"흠,, 혹시 어쩌면 아닐 수도 있지만,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거에요. 물론 제감이 틀렸을 수도 있어요.."
"하하 예 말씀하세요."
루미에르가 멋쩍게 웃으며 대답하자 에이리스가 진중한 표정이 되어 물었다.
"혹시.. 루미에르님도.. 루크에게 마음이 있는 건가요?"
갑작스럽고도 직설적인 에이리스의 말에 루미에르의 순간 말문이 막혔다. 에이리스가 이러한 말을 꺼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저의 생각일 수 있겠으나.. 한 나라의 황후이기도 하고.. 물론 루크가 루미에르님을 구해주긴 했으나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어서, 나중에라도 황성으로 불러 루크에게 은혜를 갚으면 되지 않나요?"
"하하. .그게 무슨 저는 아즈문의 황후랍니다..."
루미에르가 한껏 당황하며 묻자 에이리스가 잠시 루미에르를 바라보다 대답했다.
"저도.. 메세츠데의 황후였답니다. 물론 저의 감이 맞는 건 아니지만, 자꾸 제감이 말해준답니다. 루미에르님의 호기심이.. 마치 제가 루크에게 느꼈던 그러한 호기심이 아닐까 하고 말이지요.."
"예 그건...갑자기.."
루미에르가 당황하며 뒷말을 흐리자 에이리스가 따지듯 물었다.
"제감이 틀렸나요? 확실하게 제가 틀렸다고 말할 수 있나요?"
"...."
에이리스의 말에 루미에르가 어떠한 말도 하지 않자 에이리스가 씁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루미에르님의 감정 저도 알아요 오지랍일까요? 저 역시 세상 시선이 두렵기도 하고 게다가 유부녀에다가 다른 이들 보다 나이도 많지요 루크의 주변에 있는 여인들에 비해 한없이 많은 오점을 가지고 있다 생각했어요. 하지만 루크가 그랬답니다"
".."
에이리스의 표정이 너무나 진지해서일까? 당황하던 루미에르의 표정도 나름 진지해지며 에이리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후회하며 살지 말라고, 그렇기에 전 당당하게 루크를 사랑하고 있답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아이가 있다는 것조차 벽이 될 수 없다고 한 사람이 루크였답니다. 그런 루크였기에 감사한 마음으로 루크를 좋아하고 사랑한답니다. 유부녀가 자기보다 어린아이와 사랑을 나눈다는 것이 추해 보일 수는 있지만, 전혀 없는 일도 아니잖아요? 저는 루크의 말대로 후회하며 살지 않을 거랍니다."
"갑자기 제게 그런 말을 하시는 이유가.."
루미에르가 당황하며 묻자 에이리스가 진지했던 표정을 풀고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그저.. 저의 감이에요.. 어떨 때는 제감이 확실히 들어맞기도 하거든요.. 그렇기에.. 루미에르님에게도 해주고 싶었어요. 오지랖이라 생각할 수 있겠으나.. 이미 지나가 버리고 떠난 사람은 이미 세상에 없다는 것과 그 사람에게 미련이 남아 혼자 살기엔 아직 루미에르님이나 저나 너무 젊은 나이라는 것이에요 그렇기에 루크가 해주었던 말을 루미에르님에게도 해주고 싶었어요. 루미에르님 후회하며 살지 마세요 너무 늦는다면 정말 우린 이대로 새로 시작도 하지 못하고 늙을 테고 결국 다시 사랑할 수 있는 시기를 잃을지도 몰라요 그나마 원했던 사람은 이미 멀리 떠나버릴지도 몰라요.."
에이리스의 말에 루미에르가 나름 심각한 표정이 되어 물었다.
"에이리스님은.. 릴리를 어떻게 생각하지요? 아니 릴리는 에이리스님을 어떻게 생각하나요?"
"이해해주고 있어요. 오히려 저를 응원해주는 걸요 루미에르님도 다른 이들의 시선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미련과 걱정 불안 때문에 후회하며 사는 것보다 그래도 조금 더 젊었을 때 새로운 인연을 만나 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요."
"..."
루미에르의 표정이 여전히 진지해져 있었으나 어떠한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러자 에이리스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정말 루미에르님은 루크에 대해 아무런 감정이 없을 수도 있겠지만, 이 말을 해주고 싶었어요... 루크가 아니라도 좋아요, 루미에르님은 아직 젊고 예쁘다는 것을. 물론 루미에르님께서 남편을 잃으신 지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것도 알아요 저처럼 강제로 맺어진 인연도 아니겠지요 그렇기에 더욱 자신의 감정을 속일 수밖에 없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조금 전에 말했다시피 떠나간 사람은 이미 떠나간 사람이랍니다. 마음속에 묻어두고 끝내야 해요, 더는 미련을 갖지 마세요 잊으란 말은 하지 않겠어요 그건 주제넘은 짓이니까요 하지만 루미에르님은 아직 젊다는 것 서른 중반은 그리 많은 나이가 아니라는 것이에요 늦어지면 뺏긴다는 말... 사실 저한테도 하고 싶은 말이었지요.."
에이리스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지난밤 로제스의 얼굴이 떠올랐다. 매번 부끄럽다는 이유로 적극적이지 못한 자신보다 자신의 매력을 표출하며 적극적으로 나서던 로제스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자신보다 더 젊어서 그런 것일까? 하면 그렇지 않았다. 에이리스는 아직 루크를 좋아하는 것에 무언가 자신감이 없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죄송해요 괜히 역시나 괜한 오지랖이었을까요? 만약 제감이 틀렸다면 저한테는 다행일지도 모르겠네요, 여기서 루크에게 다른 여인이 더 생기는 것은 염치없지만 저도 싫거든요 하핫 그럼 이만 가볼게요."
에이리스는 멋쩍게 웃어 보이더니 이내 고개를 숙여 보이고 복도를 나서자 루미에르가 멍하니 멀어지는 에이리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무언가 말을 하려다 이내 그만두었다.
"후.."
괜스레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러고는 에이리스가 자신에게 했던 말을 떠올리다 이내 루크의 얼굴이 떠오르자 왠지 싱숭생숭했다.
그때였다. 멍하니 멀어지는 에이리스를 보던 루미에르에게 누군가 다가오며 말을 걸었다.
"언니 뭐해요?"
익숙한 음성, 자신의 동생인 크리스티나였다.
"으, 응.. 크리스티나? 너야말로 여기서 뭐 하니?"
"그냥 자기 전에 언니랑 얘기 좀 하고 싶어서 왔지!"
"그랬니. 그래 할 말이라도 있어?"
"그냥요 꼭 할 말이 있어야만 오나요? 그냥 옛날이야기나 좀 할 겸 왔어요"
크리스티나의 말에 루미에르가 고개를 끄덕여 보이다. 이내 무언가 결심했는지 진중한 표정이 되어 크리스티나에게 대답했다.
"그렇구나.. 그래! 잘 됐다. 크리스티나 너에게 묻고 싶은 게 있어.."
"묻고 싶은 거요?"
"그래."
"그럼 언니 방에 들어가서 얘기할까요?"
크리스티나가 밝게 웃으며 대답하자 루미에르가 잠시 고민을 하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