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루크 아스란 전기-226화 (226/412)

【226회. 다시 돌아오다】

루크의 말에 요지부동인 루시의 모습을 보자 루크의 뇌리에 사자도에 있었던 일이 스쳐 지나갔다. 만약 윈랜드에 그 전쟁통에 루시가 다시 또 광기를 보인다면 어떡하나에 대한 걱정이 들자 이번에는 루시의 동행을 최대한 막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루시.. 이번엔 저희만 다녀올게요"

"왜! 칫 내가 싫은 거야? 그런 거야?"

루시의 눈이 부릅뜨며 기세가 심상치 않다. 그러한 기세를 느꼈는지 기세에 민감한 엘레니아나 레이니, 안느란테가 놀란 표정으로 루시를 바라보자 루크가 다급히 루시의 양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그게 아니에요!"

"그럼!"

으르렁거리 듯 대답하는 루시의 모습에 루크가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잠시 고민을 하자 가만히 보던 라이아가 대신 루시에게 대답했다.

"루시"

이번엔 유난히 자애롭고 감미로운 라이아의 목소리가 루시에게 닿자 루시가 고개를 돌려 라이아를 바라보자 조금 기세가 누그러지려 했다.

"이번엔 나랑 같이 집으로 가보지 않겠니?"

"싫어요!"

"안단다. 네가 루크랑 떨어지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하지만 그 곳에가면 넌 루크에게 도움이 될 수가 없어 게다가 다른 이들이 널 신경 쓰느라 루크를 제대로 지켜줄 수 없을지도 몰라"

"무슨 말이에요?"

루시가 라이아를 향해 톡 쏘아붙이자 라이아가 루시에게 다가와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우린 방해가 될 거란다. 나나 릴리나 세리스라고 루크를 따라가고 싶지 않을까? 하지만 우리가 간다면 레이니나 안느란테, 또는 엘레니아가 루크 말고도 우리까지 지켜야 한단다. 그러다 보면 루크에게 신경을 쓰지 못해 정말 루크가 위험해질 수 있어 그러니 이번엔 루크를 믿고 나와 같이 기다리자꾸나. 그리고 너에게 루크와 살 집을 보여주고 싶기도 하고 말이야."

"...에.. 에이리스님도 같이 가잖아요"

루시가 인상을 쓰며 에이리스를 가리키며 말하자 에이리스가 순간 우물쭈물하자 라이아가 풋 하고 웃으며 대답했다.

"에이리스님이 야리야리해 보여도 신물의 주인이란다. 그가 가진 능력은 충분히 루크에게 도움이 될 수 있어. 하지만 우린 그렇지 않잖니? 이번엔 나와 같이 기다리자꾸나."

미소가 여린 라이아의 차분한 목소리에 차츰 기세가 들끓던 루시의 모습이 다시 평상시처럼 돌아오기 시작했다. 루크는 그러한 모습에 확실히 라이아가 어머니로서 대단하다고 생각이 들자. 라이아가 그런 루크를 보며 한쪽 눈을 감으며 윙크를 하자 루크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알겠니?"

"...칫... 가고 싶은데.. 알겠어요."

결국 라이아의 말을 수용한 루시가 혀를 한번 차며 대답하자. 라이아가 밝게 웃어 보이며 말했다.

"그나저나 언제 가려는 거니?"

라이아가 모두를 바라보며 묻자 루크가 대답했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지요, 어차피 마흐무드에 너무 오래 있었고 더이상 할 일도 없으니 내일 쯤 가죠"

"그렇게 빨리?"

라이아의 표정에 아쉬움이 묻어 나왔다. 그러나 좀 더 있으란 말은 하지 못했다. 한시가 급한 윈랜드에 자신의 남편인 사무엘이 있었기에 이제는 루크가 아닌 사무엘에 대한 걱정이 가득 차오른 상태였기 때문이다.

"금방 다녀올게요 빨리가서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도와드려야지요"

"그래... 그렇게 하려무나.."

"조심해 오빠."

뒤이어 세리스가 같이 가지 못해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었으나 나름 밝은 모습으로 대답하자 루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다시 윈랜드로 떠날 준비를 하며 바삐 하루를 보내더니 어느새 해가 어눅어눅해지며 땅거미가 짙게 내려앉은 시간이 되었다. 오늘도 같은 방에서 잠들려는지 같은 방에 모여 있자 루크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러다 오늘 또 한숨도 못 자는 게 아닌가 싶었으나 그녀들은 여전히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았으니 루크로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그렇게 결국 모두가 한 침대에 누운 상태에서 갑작스러운 루시의 질문에 방안에는 한순간의 정적이 찾아왔다.

"루크! 루크는 누가 가장 좋아?"

뜬금 없는 루시의 물음에 루크가 살짝 움찔했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여인들도 같이 움찔하며 갑작스럽게도 방안에 침묵이 맴돌기 시작하며 모두가 귀를 쫑긋 세운다.

"자?"

뒤이어 루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루크는 잠든 척하려 했으나 오늘은 하필 루시가 옆에 있었다. 루시가 천천히 루크에게 가까워지며 다시 입을 열었다.

"안 자는 거 다 알아"

나긋하지만 날이 서려 있는 루시의 목소리가 루크의 귓가에 닿자 루크가 다시 또 움찔했다. 뒤이어 루크가 살짝 눈을 떠 보이자 크고 아름다운 흑요석 같은 루시의 눈망울이 루크를 빤히 쳐다보고 있어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말해 봐 누가 가장 좋아?"

"그게.."

루시의 물음에 루크가 잠시 고민에 빠졌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질문이었기에 게다가 어느샌가 침묵이 맴도는 방안은 모두 루크의 말을 기다리는 듯하자 괜스레 부담감이 차올랐고 머릿속에는 잘 얘기해서 빠져나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어서 말해 봐"

루시가 닦달하자. 주변의 여인들이 왠지 모르게 몸을 붙여 가까워지려 했다. 루크가 흠흠 거리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다.. 다 좋아요"

"칫! 우선순위가 있을 거 아니야?"

루크의 대답이 만족스럽지 않은 것일까? 루시가 콧방귀를 뀌며 되묻자 루크가 멋쩍게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정말이에요! 전 정말 모두를 좋아해요! 거짓말이지 않아요 루시는 알잖아요! 그리고 안느란테님도!"

루크의 대답에 루시는 여전히 만족스럽지 않아 했으나 이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한편 안느란테는 울상이 되어 루크에게 말했다.

"루시 때문에 루크님의 마음을 읽지 못한지 오래인걸요.."

"그.. 그런가요?"

루크가 루시를 바라보자 루시가 씨익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믿어 줄게 하지만 날 제일 좋아해야 하는 거 알지?"

"제가요?"

"그럼 당연하지! 우린 가장 먼저 사랑했던 사이니깐!"

아직도 루크와 라르문을 동일하게 생각하는 루시의 모습에 루크가 멋쩍게 웃어 보이자 차츰 루시의 눈꺼풀이 덮이고 있었다. 오늘도 꽤 바쁘게 돌아다녔기 때문인지 피곤해 보였다. 자신이 윈랜드로 같이 가지 않는다고 하니 오늘 하루 루크는 자기 것이라고 박박 우기던 루시의 모습이 떠오르자 괜스레 웃음이 흘러나오자 루크는 자기도 모르게 루시의 흘러내리는 머리칼을 손을 들어 쓰다듬어주자 눈을 감고 있던 루시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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