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루크 아스란 전기-235화 (235/412)

【235회. 윈랜드】

루크가 마흐무드를 떠나고 며칠이 흘렀다.

윈랜드의 상황은 점차 최악으로 딛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비명소리는 물론 사방에서 들려오는 몬스터들의 괴성이 방벽 아래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게디가 우중충했던 하늘은 어느새 서릿발 같은 폭설이 내리기 시작했고 바람을 동반한 눈발에 움직임은 물론 시야까지 방해받았다. 그러한 곳에 주변의 동료는 보이지 않고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괴수들의 포효와 하늘을 가르는 수만의 화살 소리만이 전장을 가득 울릴 뿐이었다.

이러한 고된 장소에서 병사들의 안색은 더할 나위 창백해졌으며 엄습해오는 추위가 공포에 의해 몸을 떨지 않은 병사를 찾기가 더 쉬워 보인다. 그들의 표정에선 어떠한 희망도 느껴지지 않았다.

"방패를 들어 궁수와 마법사들을 지켜라!"

방벽 위에 올라 병사들을 바라보던 데미아스의 목소리가 서릿발 같이 내리는 눈보라를 뚫고 병사들에게 닿았다. 동시에 서서히 가까워지는 공성 탑이 보인다. 평소 같았으면 날씨가 좋아 진작에 발견했어야 할 공성 탑을 이제서야 발견했다는 것에 데미아스는 잔뜩 인상을 구겼으며 상황이 좋지 않게 흘러가리라는 것을 느꼈다.

"지크문드! 투석기와 마법사들을 이끌고 공성 탑을 막아주게!"

"알겠네!"

데미아스의 외침을 들은 지크문드가 한달음에 방벽 위에 있는 마법사들을 집중시켰다. 뒤이어 사무엘과 나서스를 시켜 투석기를 도우라 소리친다.

동시에 눈보라의 기세가 더욱 강해진다. 뼛속까지 한기가 스며들며 모든 병사들의 움직임이 굼떠지자 데미아스가 굳게 다문 입술에 핏기가 고였다.

"큰 마법은 마나의 소모가 크다 자칫 하단 공성 탑을 다 부수기도 전에 우리가 먼저 지쳐 쓰러진다. 자신이 낼 수 있는 마나의 7할은 아낀다. 가까워지는 탑 부터 부숴라!"

"아끼면 부술 수가 없어요!"

한 마법사가 반박하자. 지크문드가 혀를 차며 대답했다.

"네 혼자 부스란 말이 아니다! 어차피 모든 마나를 사용해도 부술 수도 없지 않은가? 모두 같이 5명씩 조를 이뤄 공성 탑 하나하나씩 노리는 게다! 그러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거다!"

"예!"

지크문드의 외침에 그제야 마법사들이 이해하고는 조를 이루기 시작하자 총 20개 조가 만들어졌다. 그렇게 조를 이룬 마법사들이 각자 널찍한 방벽 위에 자리를 잡았다. 그 옆과 앞에 방패 병들이 진을 쳤다.

"가장 가까워지는 것부터! 공성 탑은 총 30개! 각 조마다 하나씩 맡아 공성 탑을 우선적으로 노려라!"

"예!"

지크문드의 명령이 떨어졌고 동시에 하늘을 수놓는 여러 형형색색의 마법들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들의 마법은 조금 전과는 달리 그렇게 수준 높은 마법이 아니어서 인지 발동시간도 짧았을뿐더러 부담이 적어서 마법사들의 표정이 한결 편해진 것이 눈에 띠었다.

지크문드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자기 역시 저번에 보였던 큰 마법 대신 자잘한 마법으로 공성 탑을 노리고 있었다. 그러나 더 거세지는 눈보라에 마법을 맞추기가 여간 쉽지가 않았다. 게다가 이러한 환경에 궁수들조차 이 바람에 무용지물인 상태인지라 공성 탑을 노리기가 만만치 않았다.

그때였다. 병사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들려오다 이내 한 병사의 목소리가 데미아스와 지크문드에게 닿았다.

"이런! 저기 보십시오!! 공중입니다! 공중에 이상한 것들이 있습니다. 저.. 저게 뭐지?"

"... 저건.."

한 병사의 외침에 데미아스의 시선이 절로 하늘로 향했고 이내 눈가에 작은 파문이 일기 시작했다.

거센 눈보라에 잔뜩 방해되는 시야 사이로 높은 허공에서 여럿, 실루엣이 눈보라를 뚫고 윈랜드로 향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 사이에서 들려오는 괴성, 적어도 윈랜드에겐 우호적이지 않다는 것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동시에 병사들의 웅성거림이 더욱 커져 올랐다.

"올 것이 왔군!"

지크문드의 눈가에도 파문이 일자 주변의 병사들이 하나 둘씩 절망 어린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실루엣이 서서히 거치며 그들의 모습이 보이자 한 병사가 잔뜩 겁을 먹으며 중얼거렸다.

"이럴 수가 어떻게!.. 와, 와이번이!.. 끝났어.. 우린 정말 끝났다고!"

절망감과 공포심은 한 병사로부터 시작해 마치 전염병처럼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 사이로 사무엘과 나서스가 고군분투하며 사기를 끌어올리려 했으나 마음처럼 쉽지가 않았다. 이미 떨어질 대로 떨어진 사기는 올라올 생각을 하지 않고 오히려 희망 없는 상황에 겁을 집어먹고 무기를 떨어뜨리다 급히 주워 드는 병사들이 보일 지경이었다.

"발리스타를 준비시켜라!!"

지크문드가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크게 소리쳤다. 그럼에도 웅성 거림은 멈추지 않자 지크문드의 이마에 기다란 혈관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이 녀석들!!! 여기서 밀리면 너희뿐만 아니라 네 가족들까지 다 죽어! 이곳을 지켜야 한다! 지원군은 분명 올 것이야! 어서! 발리스타를 가져와!!!"

신경질적으로 목소리에 마나까지 담아 지크문드가 소리치자 그제야 병사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멈추었다. 그러고는 재빨리 창고에 있던 발리스타를 가져와 준비시키자. 총 20대의 발리스티가 방벽 아래에 약간 둔덕이 진 곳에 일렬로 준비되었다. 그 주위로 방벽 아래 있던 병사들이 진을 치며 발리스타를 지켰다.

뒤이어 눈보라를 해치고 서서히 다가오는 와이번 무리가 보인다. 심지어 그 와이번 무리 위에는 적군들이 탑승해 있음을 알자 데미아스와 지크문드가 침을 성을 삼켰다.

"발리스타!!"

"준비되었습니다!"

데미아스가 소리치자. 20대의 발리스타 앞에 서 있는 사무엘이 소리쳤다.

서서히 와이번 무리가 가까워졌다. 하늘에서부터 마치 목이 찢어지는 듯 괴성이 천둥소리처럼 들려 왔다. 동시에 그들이 거대한 날개를 펄럭일 때마다 들려오는 소리는 마치 폭풍이 몰아치는 소리처럼 하늘을 울렸다.

병사들의 표정에서 절망에 기색이 피어올랐다. 동시에 방벽 위나 방벽 아래 대기하고 있는 병사들은 자기도 모르게 적들을 주시하는 것도 잊으며 정적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만큼 와이번의 등장은 여태 가까스로 유지하던 희망을 완전히 무너트리는 효과를 낳았다.

뒤이어 정적을 깬 데미아스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사무엘, 나서스! 곧 적들이 올 것이다. 병사들을 준비시켜라!"

"예!"

데미아스의 명을 받은 사무엘과 나서스가 급히 방벽 아래 대기하고 있는 병사들을 도열시켰다. 그들은 잔뜩 긴장하면서도 그동안 훈련했던 대로 방벽의 문 앞에 늘어서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겁을 집어먹고 도망치는 병사는 없다는 것이 감사할 정도로 병사들의 안색은 너무나 좋지 않아 보였다.

수 많은 병사들이 방벽 아래 자신의 무기를 들어 보이며 잔뜩 차오른 긴장감을 풀풀 풍기고 있었다. 완전히 코앞까지 다가온 와이번 무리에 데미아스가 눈을 빛내며 소리 쳤다.

"발리스타를 쏴라!!!"

"쏴라!!"

마나를 담은 데미아스의 목소리가 윈랜드를 울렸다. 동시에 20대의 발리스타의 시위가 놓아지며 거대하고도 철로 된 화살이 눈보라를 해치고 쇄도해 나가기 시작하자 윈랜드 방벽 위를 가득 메운 와이번들이 괴성을 내며 이리저리 혼란을 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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