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4회. 윈랜드】
데미아스의 말에 콥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보통 악마에 씌이거나 악마와 계약을 맺은 자들에겐 악마들은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습니다. 그저 두루뭉술하게 넘기거나 다른 이름을 사용하지요."
"왜 그러는가?"
"악마에게 이름은 곧 힘이 되지만 약점이 되기도 한답니다. 예로부터 악마들은 자신의 이름을 감춰 신들로부터 자신을 감춘다고 전해졌습니다. 특히 감정이 풍부한 인간들 사이에 숨어 있길 좋아했지요 그런 그들은 사람들의 그림자에 숨어 악에 물들인다고들 하지요.. 그런 그들이 직접 이름을 밝히고 현세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은 그만큼 신과 대적할 자신이 있다는 소리일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정말 우리가 생각하는 것 그 이상으로 위험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가 직접 이름을 밝혔다는 것은 어느 정도 힘을 찾았다는 소리일 수도 있고 라우엘님으로부터 도망칠 필요가 없다는 소리이기도 하니깐 말입니다."
콥스의 말에 데미아스가 심각한 표정으로 받아들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그가 정녕 자신의 힘을 찾게 된다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데미아스의 물음에 콥스가 창백해진 얼굴로 침을 꿀꺽 삼키며 대답했다.
"이 세상은 지옥으로 변할 겁니다. 예전에 있었던 마계인의 침공 따위? 종족 간의 전쟁? 다 새 발의 피가 될 겁니다. 오직 신 라우엘님이 현세에 모습을 드러내야만 막을 수 있는 유일무이한 존재가 될 테지요.."
".. .그가 그렇게 강하다는 건가?"
"악마는 신이 만들어낸 존재가 아닙니다. 신보다 더 높은 존재 , 그가 인간과 신을 벌하기 위해 만들어낸 또 다른 존재이지요... 그렇기에 악마는 신과 대항하면서 살아있는 생명들의 죄악을 먹고 산답니다."
"죄?"
"그렇습니다. 교만, 질투, 분노, 나태, 탐욕, 식탐, 색욕, 이 일곱 가지의 대표적인 죄악을 먹고 그 힘을 키워나가지요. 일곱 가지의 죄악은 살아있는 생명에겐 떼려야 뗄 수 없는 것들이기에 악마도 신처럼 불사인 것입니다. 오직 봉인만으로 그를 막아야 하지요. 이건 정말 큰 일입니다.. 이 사실을 마흐무드에도 알려야겠습니다."
콥스가 몸을 부르르 떨며 안절부절하지 못하자 데미아스가 잠시 그를 진정시키며 물었다.
"..이렇게 악마가 태어날 때까지 그럼 라우엘님은 무엇을 하신 건가? 이 세상을 정녕 버리기라도 한 것인가? 우리가 그를 막을 수나 있겠는가?"
데미아스가 잔뜩 인상을 구기며 하소연하듯 물었다. 언뜻 보면 라우엘의 믿음을 불평을 갖은 말일 수도 있어 성기사인 콥스가 불쾌할지도 몰랐으나 지금 데미아스로서는 정말 툭 터놓고 묻고 싶은 말이었다. 그 점을 콥스도 알았는지 그가 씁쓸하게 대답했다.
"원래 신은 저희가 사는 이 중간 계에 개입하지 못한답니다. 그렇기에 신의 부름을 받는 전달자들을 세상 곳곳에 내려놓아 그들에게 말씀을 주곤 하시지요, 대표적으로 마흐무드의 성녀 크리스티나님과 서거하신 교황님이 그러했고 요르문간드엔 주술사들이 있지요! 신께서 그들에게 부탁해 악이 태어나기 전에 막아내거나 막아낼 힘을 주기도 나눠 주기도 한답니다. 그렇기에 분명.. 라우엘님도 저희를 위해 어떠한 안배를 해놓았을 거라 저는 믿고 있습니다.."
두루뭉술하고 모호한 결론이었지만 콥스로서도 자세히 알지 못했기에 어쩔 수가 없어 보였다. 데미아스도 그 점을 알고는 의자에 몸을 축 늘어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그 악마를 만들었다던 신보다 높은 존재라는 자는 또 누군가?"
"그게.. 저희도 자세히 알지는 못합니다. 관련된 서적은 추기경님 또는 성녀님 정도는 되어야 열람을 할 수 있는 고문서에서만 나온 이야기지요. 이름은 없고 태초의 존재, 또는 신보다 더 고귀하고 높은 존재라고 불리지요."
"뭐 대충이라도 말해 줄 수 있겠는가?"
데미아스의 말에 콥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아는 것은 고전 설화와도 같은 이야기입니다. 태초 모든 인간, 그 조상들에 시대로부터 이야기가 시작하지요 악마도 없고 오직 신들과 여러 종족들이 한데 어우려 지내던 세상.. 여러 종족들은 늙어 죽는 일이 없던 그러한 세상의 이야기입니다. 괜찮겠습니까?"
"자네만 괜찮다면 그 이야기를 듣고 싶네."
콥스의 말에 데미아스가 콥스를 바라보며 부탁하자 콥스가 잠시 목을 가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이 땅에 인간들이 자리 잡기 시작한 시대입니다. 그때에는 여러 신들이 중간 계에 관여를 많이 했다고 전해지고 있답니다. 지금처럼 라우엘님 혼자가 아닌 여러 신들이 각자 맡은 임무를 다하고 있었다고 전해지지요 어느 신은 사랑과 평화를 담당하기도 했고 어느 신은 전투와 죽음을 담당하기도 때론 대지와 하늘을 담당하던 신도 있었고 동물들을 담당하는 신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어엿한 신.. 인간들과는 달랐지요 그들은 태생부터 고귀해 언제나 오만했고 장난이 심했으며 인간을 무시하고 때론 달콤한 거짓말로 속여 서로 싸우게 하며 해어지게 만들었지요. 더 나아가 전쟁을 일으키기도 했답니다. 그들에겐 신을 제외한 다른 종족들은 그저 그들의 장난감 병정 그 이상도 아니었던 불행한 시대이지요. 물론 그 중 인간을 사랑하고 잘 보살펴 준 신들도 있었지만 말입니다."
"그런 이야기가 있었는가? 나는 처음 듣는 이야기일세."
데미아스가 인상을 쓰며 대답하자 콥스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저 역시 책을 통해 알게 된 내용이지요 얘기를 계속해도 되겠습니까?"
잠시 말이 멈춘 콥스는 다시 데미아스에게 묻자 데미아스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 좋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이름을 만들어 인간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고 어떻게보면 유희를 즐겼던 것이지요. 어느날은 한나라의 왕이 되었고 어느 날은 거지가 되었으며 어느 날은 방랑자가 되어 이 세상을 관찰하고 희롱하고 했던 것이지요 그러다 결국 신들에 의해 여러 종족들이 많은 피해를 보게 되었지요 바로 대전쟁이 일어났던 겁니다. 오직 그들의 유희에 의해서 말입니다.
많은 이들이 피를 보았고 결국 앙금이 생긴 신들은 서로를 향해 이빨을 들이밀며 죽고 죽이는 일까지 발생하자 더이상 그러한 만행을 참지 못한 태초의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지요."
콥스가 잠시 목이 탔는지 험험거리자 급히 데미아스가 물을 떠다 콥스에게 건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