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6회. 윈랜드】
"오랜만이네요.."
마차 밖 지나가는 풍경을 보던 안느란테가 중얼거렸다. 동시에 마차 안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도 마차 밖으로 향했다.
"그래요 이 근처에서 우리가 만났죠?"
루크의 말에 안느란테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다행이에요, 만약 이곳에서 루크님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전 어떻게 됬을는지...아마 일족을 지키지 못한 저는 추위와 슬픔에 덜덜 떨다 홀로 쓸쓸하게 죽었을지도 몰라요."
안느란테가 씁쓸하게 대답했다. 그의 눈에 작은 떨림이 느껴졌으나 이내 밝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잘 정비 된 대로변 그 옆에 자라난 숲은 깊게 들어가다 보면 예전 안느란테와 그 일족들이 살았던 엘프들의 마을이 나올 것이기에 안느란테의 표정에 진한 향수가 풍겨오는 것 같았다.
"그래도 이제 저희 푸른 달빛의 숲 속 일족의 고향은 아스란이에요. 모두다 루크님 덕분이에요!"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저야 말로 영광이지요 안느란테님!."
루크가 안느란테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뒤이어 레이니도 안느란테의 손을 잡아주자 안느란테의 표정이 금세 밝게 변해 더는 씁쓸하면서도 진하게 풍겨오던 향수가 지워진 듯했다.
"그나저나 곧 윈랜드에 도착하겠군요?"
루미에르가 마차 밖에 고개를 내밀며 물었다. 그만큼 윈랜드로 가까워지고 있었고 날씨도 점차 추워지다 못해 하늘에선 눈까지 내리고 있었다. 특히 어젯밤 갑작스레 내린 폭설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심해 도저히 밖에 야영을 할 수가 없을 정도였을 정도로 폭설이었으나 다행히도 지금은 조금은 잠잠해진 상태였다.
"오늘은 밖에 불을 피워 놓고 야영을 할 수도 있겠어요."
레이니가 안도의 숨을 내쉬며 말하자 안느란테가 대답했다. 아마도 어제 마차에서 불 없이 밤을 지샌 것이 꽤 힘들었나보다.
"그러게요 게다가 이번에는 크게 야영지를 만들지도 않겠어요, 많은 사람들이 빠졌잖아요."
안느란테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마차 밖에는 처음과는 달리 소수의 성기사들만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난 날 아직 폭설이 내리기 전날이었다. 한참을 윈랜드로 달리던 마차와 성기사들을 멈춰 새운 것은 윈랜드에서 아즈문으로 향하던 전령 때문이었다. 그는 윈랜드가 위기를 겪고 있다는 것을 전하자 급히 성기사단의 마레즈는 소수의 성기사들을 남기고 모두 윈랜드로 쉬지 않고 달려가라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사제들을 태운 마차 두 대 와 성기사 콥스를 앞세워 윈랜드로 달려가게 했고 지금 이곳에 남은 이들은 소수의 사제들과 마레즈를 필두로 단 10명의 성기사들 뿐이었다.
"지금쯤 도착했겠지요?"
에이리스가 걱정스럽게 묻자 루미에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제 윈랜드가 멀지 않았으니 슬슬 도착했을 거에요."
루미에르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마차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여전히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 그 사이로 하얀 눈이 소복하게 쌓여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더 갔을까? 내리던 눈은 어느새 무릎까지 차올라 마차를 비롯해 말들 역시 제대로 움직이기 힘들 정도가 되었으나 그럼에도 멈추지 않은 눈에 결국 마차가 멈춰섰다.
"오늘은 여기서 하루 보내야 할 것 같습니다."
뒤이어 마레즈가 말에서 내리며 루미에르와 루크에게 말하자 루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레즈는 이내 병사들을 시켜 주변을 정리하게 하자 금세 눈이 치워지며 축축하게 젖은 땅이 모습을 드러내며 넓은 공터가 만들어졌다. 동시에 발 빠른 성기사들이 어느정도 마른 장작들을 구해와 불을 피우자 서서히 주변 온도가 올라가는 것이 느껴졌다.
"자 모두 옷 두둑이 입어요."
루크가 모두를 보며 말하자 모두 두꺼운 털 코트를 입고 장작불 앞에 옹기종기 모이기 시작하자 마레즈가 다가왔다.
"괜찮으십니까? 어디 불편한 곳이라도 있진 않으십니까?"
마레즈의 물음에 모두 어떠한 이상도 없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마레즈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대답했다.
"좋습니다. 금방 저녁거리를 준비하겠습니다."
"고마워요 마레즈."
루미에르가 밝게 웃어 대답하자 마레즈가 살짝 고개를 숙여 성기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렇게 금세 조금은 이른 저녁거리가 준비되었다. 나름 풍족한 식사는 따뜻한 고기 수프와 딱딱하지만 고소한 빵 그리고 양념이 된 육포였다. 아마도 대다수의 성기사들이 빠졌는지라 남은 식량이 많아 풍족하게 준비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았다.
그렇게 풍족하게 배를 채우고 마지막은 차로 입가심을 하자 슬슬 땅거미가 짙게 내려앉은 시각이 되었다. 겨울이라 그럴까? 해가 참으로 짧아 금세 어두워졌으며 차츰 온도가 내려가자 모두 모닥불 앞에 옹기종기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오직 레이니만이 레오니르와 훈련을 하기 위해 쉼터에서 멀어져 널찍한 곳을 찾아 이내 검을 휘두르는 모습이 보일 뿐이었다.
루크와 다른 일행들은 따뜻하게 데운 차를 또다시 마시며 한창 이야기의 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중 그녀의 발랄하고도 분위기를 이끄는 성격답게 이야기의 주도권을 잡고 있었고 모두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맞장구를 치곤 했다.
그렇게 어느정도 이야기를 하던 루미에르가 이번엔 루크를 향해 물었다.
"이제부터 어떻게 하겠니?"
그동안 윈랜드로 오며 나름 친해져 말이 편해졌고 루크 역시 그편이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일단, 윈랜드에 도착하고 나서 로제스 누님이 가져오는 재료를 기다리긴 해야 하겠죠.. 재료가 다 도착한다면 그때부터 빠른 시간안에 폭탄을 만들어야 하니 꽤 바쁠 것 같네요."
루크의 말에 루미에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그때 지나가면서 만난 전령 말로는 윈랜드가 많이 위험하다고 하는데 잘 해결 됐는지 궁금하네요."
루크의 표정이 걱정스럽게 변했다. 그만큼 오면서 만난 전령의 표정이 너무나 다급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루미에르도 루크와 같은 표정이 되어 걱정을 하자 엘레니아가 대답했다.
"괜찮을 거야. 루크, 그곳엔 데미아스님과 할아버지도 있잖아 그리고 사무엘님하고 아버지도 있고 말이야."
"맞아요! 괜찮을 거에요."
뒤이어 안느란테도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자 루크의 표정이 조금은 풀렸다.
"좋아! 이대로 우울하게 있지 말아야겠어! 그럴 땐 재밌는 이야기를 해야겠지? 안느란테, 루크와는 어떻게 만났는지 궁금한데 얘기 안 해줄 거야? 이 곳에서 만났다고 했잖아?"
루미에르가 밝게 웃으며 안느란테를 향해 묻자 안느란테가 잠시 머리를 긁적이며 루크를 바라봤다. 루크는 그런 안느란테의 모습에 어깨를 으쓱해 보이자 안느란테가 남은 차를 단숨에 입안에 털어 넣고는 대답했다.
"별거 없는데.."
"그래도 밤은 길어, 심심하잖아~ 이대로 멍하니 있으면 계속 우울한 생각이 드는걸?"
"그런가요?"
루미에르의 말에 루크가 멋쩍게 웃으며 대답하자 루미에르가 연실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고말고! 자 어서 얘기해봐. 모두 궁금한 것 같은데? 엘프가 어떻게 생활하는지도 궁금하고 말이야!"
루미에르가 이내 실눈을 뜨며 에이리스를 비롯해 엘레니아를 바라보자 모두가 헛기침을 한다. 관심이 없어 보여도 그들도 내심 궁금했나 보다.
"음... 알았어요... 모두 아시죠? 이 근처 숲이 저희 푸른 달빛의 숲 속 일족이 살고 있었다는 것을요?."
안느란테의 표정이 다시 아련하게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