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7회. 윈랜드】
"매일 달이 뜰 때면 푸른 빛이 맴도는 아름다운 숲이었지요, 지금은 느끼기 힘들지만, 그땐 따뜻한 햇볕이 매일 내리쬐고 형형색색의 꽃들이 화려하게 피어나며 푸른 숲 나무 님들이 뿜어내는 상쾌한 공기와 즐거은 노래 소리가 가득 울려 퍼지는 마을이었어요.
매일 밤낮으로 장난치는 요정들 하며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던 그러한 곳.. 작은 마을이었지만 언제나 행복으로 가득찬 마을이었지요. 저는 그곳에서 여러분처럼 평범하게 살던 엘프였답니다.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언제나 달빛의 기운이 가득 담긴 물로 몸을 치장했고 간단하게 과일로 아침을 해결하곤 했지요, 그러고 나면 언제나 제 또래의 친구들이 저의 집 앞에 놀러 오곤 했어요.. 메릴린, 아리안느, 지젤,.. 지금은 없는 친구들의 이름이에요. 메릴린은 마을을 지키는 레인저가 되고 싶어했지요 아리안느는 좋아하는 남자애가 있다며 얼마나 귀찮게 굴던지.. 막상 앞에 가면 아무 말도 못하는 바보였지요. 그리고 그중 지젤은 저와 가장 친한 친구였지요."
안느란테의 표정이 아련함을 품다 이내 슬픔이 느껴졌다. 그러자 주변의 기운도 이내 울적해지기 시작하자 안느란테가 멋쩍어하며 말을 이었다.
"그는 정령 술도 잘했고 활 실력도 다른 이들보다 남다를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어요, 저는 지젤과 비교하면 새 발의 피도 안되는 실력이지요.."
"친구가 많아 좋았겠네 안느란테?"
루미에르가 묻자 안느란테가 미소를 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친구들의 얼굴을 떠올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성년이 된 저희는 모두 친구들 따라 레인저가 되었지요, 하하 웃긴 게 그때까지 아리안느는 결국 고백을 못했지만, 매번 저희랑 있을 때마다 이제는 고백을 할거야! 정말이야! 그러면서 다짐하곤 했지요. 그러면 저희는 매번 얼음이 되는 아리안느를 놀렸구요 얼마나 재밌던지.. 그렇게 언제나 화기애애하던 시간이 지나고 오늘처럼 차가운 바람이 몰아치던 날이었어요.
아련함으로 가득하던 안느란테의 얼굴이 점차 굳어졌다.
"마을에 이상한 기운이 감지되기 시작했어요. 평소에도 어느 정도 마을 주변에 몬스터들이 있었는데 그날 따라 유독 많았던 것이지요. 마치 무언가 조종당하듯 몬스터들은 저희 마을로 모이기 시작했어요 저는 그렇게까지 몬스터들이 광기를 일으키는 모습은 보지 못했어요. 저희는 마을의 레인저답게 몬스터들을 막아내는 일을 했지요. 그중 지젤이 가장 강했고 마을의 차기 레인저들의 수장이 될 재능을 가지고 있었지요
그렇게 하루에도 몇 번씩 습격해오는 몬스터들을 막아내자 슬슬 지쳐가고 있었지요. 그 강력하던 지젤도 차츰 힘들어했지요.."
안느란테의 표정이 절로 찌푸려지며 점차 분노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동시에 살짝 대기가 요동을 치며 장작불이 한껏 일렁거렸다. 그런 안느란테의 처음 본 루미에르의 표정도 덩달아 진지해졌고 엘레니아와 루크 역시 그러했다.
"그렇게 며칠 간 이어진 몬스터들의 싸움이 끝나고 그날이 되었지요... 모두 지쳤고 부상자도 많았던 그날 저녁, 그 자가 저희 마을에 쳐들어온 것이지요... 루크도 기억하지요 그때 그자를 말이에요."
"잭크 더.. 아이언이었던가?"
"맞아요. .그자.."
안느란테의 눈가에 짙은 살심이 풍겼다. 그 거대한 몸집과 거만하고도 오만한 성격을 가진 잭크 더 아이언이 생각나서 일 것이다. 안느란테는 손이 차츰 떨림이 강해졌다.
"그자와 그자의 용병단들은 지친 저희를 너무나 쉽게 제압했지요, 그런 과정 중, 제 친구들이 모두...지젤은 끝까지 명예롭게 끝까지 맞섰으나.. 그들은.. 모두가 보는 앞에서 ..모욕을 주었지요.. 모두가 보는 앞에서..."
"...안느란테.."
엘레니아가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뒤이어 에이리스도 안느란테의 말을 끊고 손을 붙잡아주자 안느란테의 몸에 떨림이 차츰 잦아들었다. 간신히 분노를 삭이는 것 같았다.
"하하, 이제.. 다 지나간 일이잖아요..."
"..."
애써 웃어 보이는 안느란테의 표정은 여전히 슬퍼 보였다. 루크는 그런 안느란테의 표정에 괜시레 자신의 마음 한구석이 짠하게 아파 오는 것 같았고 안느란테가 느낀 슬픔과 분노가 직접 느껴지는 듯했다. 혹 한동안 루시 때문에 이어지지 않았던 인연의 끈이 다시 연결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루크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조금 진정된 안느란테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그렇게 저희는 잭크 더 아이언이란 자에게 잡혀 미래를 알 수가 없게 되었지요. 저 역시 그들에게 잡혀 어떻게 될지 몰랐던 상황에 운이 좋았다면 좋았다고 할 수 있었어요. 운 좋게 저희 일족의 도움으로 혼자서 도망칠 수 있었거든요. 그리고 그 도망치는 길에 루크님을 만난 것이구요. 그게 저와 루크님을 만나게 된 계기였어요."
안느란테의 눈빛이 루크와 겹쳤다. 동시에 안도감이 느껴졌다.
"처음에는 루크님을 제외하고 모두가 절 도와주는 것에 반대했어요. 저는 도와만 준다면 뭐든지 하겠다고 했구요... 헤헷, 정말 다행이라 생각해요 루크님이 착하신 분이라. 만약 그렇지 않았더라면 지젤이 당한 것처럼 저도... 생각하기도 싫네요.. 아무튼 루크님과 제롬님의 도움으로 잭크를 잡을 수 있었고 그들에게서 흑마법의 존재를 깨달았지요...그리고 마을을 덮치게 만든 장본인들이 흑마법사들의 소행이란 것을 알았고요.."
안느란테의 말이 끝나고 주변엔 침묵이 흘렀다. 모두의 표정엔 슬픔이 가득해 보였고 안느란테 역시 애써 웃어 보려 했으나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슬픔을 채 가리지 못하자 루미에르에게 머리를 긁적이며 침묵을 깨었다.
"..이렇게 슬픈 얘기를 꺼내게 해서 괜히 미안하네.."
루미에르가 미안한지 멋쩍게 웃으며 안느란테에게 사과를 하자 그녀가 고개를 저어 보이며 대답했다.
"전 괜찮아요!.. 헤헤.. 별로 재미가 없는 이야기였죠? 괜히 제가 분위기를 망쳤나요?"
"아, 아냐!"
루미에르가 다급하게 손사래를 쳤다. 그러다 이내 다시 정적이 흐르기 시작했다. 루미에르는 괜스레 자신 때문에 침묵이 흐른 것 같아 어찌할 줄 몰라 하다. 이내 다시 안느란테에게 물었다.
"흠, 그러면 루크가 안느란테를 도와줬으니 안느란테 말대로 무엇을 요구했어? 호호 설마? 내 여자가 되어줘~ 라고 한 건 아니겠지?!"
루미에르는 가라앉은 분위기를 바꾸려 장난기가 가득한 표정으로 루크를 흘겨보자 루크가 멋쩍게 웃어 보이며 말했다.
"아무런 요구도 안 했어요."
"흠? 정말?"
루미에르는 의외라는 듯이 믿기지 않은 표정으로 안느란테와 루크를 보며 묻자 안느란테가 키득거리며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