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루크 아스란 전기-248화 (248/412)

【248회. 윈랜드】

"루크님 말이 맞아요, 오히려 저에게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저희 일족을 돌봐 달라고 제가 또다시 부탁했는 걸요.. 그런데도 루크님은 저에게 바라는 게 하나도 없었지요 그래서 처음에는 너무 고마워서 루크님을 따라다니면서 은혜를 갚고 싶었는데..그게 어쩌다 보니.."

안느란테가 이내 얼굴을 붉혔다. 루미에르는 그런 안느란테를 보다 다시 루크를 흘깃 바라보자 루크가 겸연쩍한 모습을 보였다.

"도대체 루크의 어느 부분이 좋은 것일까?"

루미에르가 루크를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하하.. 글쎄요.."

"그냥.. 모든게 다.."

안느란테가 몸을 비비 꼬며 대답하자. 루미에르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엘레니아와 에이리스를 바라봤다. 그들 역시 괜스레 헛기침을 했다.

그러면서 루미에르의 시선을 피하자 루미에르가 인상을 찌푸리며 다시 루크를 바라봤다. 얼굴은 확실히 공작가의 자제라 그런지 귀티가 흐른다. 연약해 보이는 얼굴은 보호 본능을 일으키긴 하지만 이렇게 많은 여인들을 빠지게 하는 무언가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하하.. 저기."

루크를 뚫어지라 쳐다보는 루미에르의 모습에 루크가 난감해하며 자신의 볼을 긁적였다. 그럼에도 상념에 빠진 루미에르는 루크의 말이 들리지 않은 지 여전히 루크를 뚫어지라 쳐다보고 있었다.

한편 꽤 긴 이야기에 레이니가 훈련을 끝냈는지 레오니르를 허리에 차고 돌아오며 당당하게도 루크의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오면서 찬물에 세안까지 했는지 얼굴에는 물기가 잔뜩 있자 루크가 급히 자신의 소매로 레이니 얼굴에 묻은 물기를 닦아주며 말했다.

"훈련을 잘하고 왔어요?"

"그럼~ 헤헷 나 없이 심심했지 루크?"

"아.. 아뇨 하하.."

루시와 로제스가 없는 지금 레이니의 적극적인 애정공세를 막을 자가 별로 없었다. 오직 안느란테만이 잔뜩 인상을 구기며 레이니를 바라만 볼 뿐이었으나 힘에선 레이니를 이길 수가 없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본 루미에르는 여전히 루크가 왜 이리도 인기가 많은지 이해가 되지 않으나 무언가 찝찝한 기분이 드는 건 왜일지 몰랐다.

"자 됐고! 그만 자자."

결국 어깨를 으쓱하며 넘긴 루미에르가 모두를 향해 말했다. 꽤 긴 이야기에 어느새 주변은 완전히 어두워졌고 성기사들도 슬슬 교대로 불침번을 서며 잠들려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힝 나 이제 왔는데."

레이니가 투정부리듯 투덜거렸다. 그러자 엘레니아가 레이니를 다그쳤다.

"레이니 푹 자야 내일 일찍 일어나야지"

"에휴.. 알았어.."

마치 엄마처럼 엘레니아의 다그침에 레이니가 한숨을 푹 내쉬고 몸을 일으켰다.

루크 역시 자신의 침낭에 들어가려 하자 레이니가 몰래 루크의 침낭으로 들어서자. 엘레니아가 또다시 레이니를 제지했다.

"레이니! 루크는 너랑 달라 많이 지쳤다고 쉬어야 해 오늘은 안 돼!"

"하.. 하지만... 힝.. 로제스나 루시가 없을 때가 지금인데."

"안돼!"

"칫! "

"맞아요 안돼요!"

"안느란테까지?!"

뒤이어 안느란테가 엘레니아를 옹호하자. 레이니가 울상이 되어 자신의 침낭으로 축 처진 어깨로 걸어갔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 여전히 루미에르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어 보이며 중얼거렸다.

"흠... 왠지 신경 쓰이네.. 내가 외로워져서 그런가.."

아직 자신의 마음을 잘 모르겠는 루미에르가 이내 어깨를 으쓱하며 침낭을 얼굴 끝까지 뒤집어 썼다. 꽤나 추운 날이었지만 잠잠해진 눈과 바람, 그리고 따듯한 모닥불에 피곤했는지 금세 잠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시 아침이 밝아왔다. 이른 아침 간단하게 식사를 마치고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마차는 빠르게 윈랜드로 향하기 시작했다.

☆ ☆ ☆

한참을 달리던 마차가 살짝 진 둔덕을 넘어섰다. 동시에 윈랜드의 전경이 보이자 루크의 표정이 한없이 굳어져 갔다. 옆에 있는 루미에르를 비롯해 레이니와 엘레니아와 에이리스 안느란테도 그러했다. 여기저기 무너져내린 건물 하며, 여기저기 검게 그을린 자국들은 하얗게 내린 눈으로도 가려지지 않았다. 저번에 왔을 때만 해도 활기차던 마을은 완전히 폐허가 되어 간간이 마을이었다는 형체만 유지하고 있는 유령도시 같았다.

"난장판이구나.."

루미에르가 인상을 쓰며 중얼거렸다. 그녀 역시 이 상황에서 활기찬 기운을 낼 순 없었나 보다. 뒤이어 성기사 마레즈를 필두로 여럿 성기사들과 함께 윈랜드에 통과했다.

마을 내부는 더 고요했다. 진창이 된 바닥을 가는 마차에 소음과 말이 투레질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더라면 눈이 내리며 들리는 사각거리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정적이 맴돌았다. 도중 도중 채 피난을 가지 못한 마을 사람들이 보였으나 그들의 표정엔 짙은 절망감은 물론 여기저기 생채기가 잔뜩 있었다.

"저번에만 해도 활기찼는데.."

어느 곳보다 활기차고 유동 인구가 많았던 거리에 들어섰는데도 이리도 한적한 모습을 본 루크가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그만큼 윈랜드의 상황이 그리 좋게 돌아가고 있진 않다는 뜻으로 보였다.

마을을 통과한 마차는 이내 마을 외과 방벽 근처로 이르르자 좀 더 속도를 내었다. 그러자 서서히 병영 근처에 이르르자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렇게 마차는 완전히 병영에 들어섬에 눈이 하얗게 내린 날에도 잔뜩 긴장한 표정에 훈련을 하고 있는 병사들이 보였다. 그들 역시 예전과는 다를 정도로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군기가 서려 있었다.

마차는 이내 병영에 들어섰고 연병장을 빙 돌아 커다란 건물 앞에 멈춰 섰다. 동시에 병영 내부에서 나오는 익숙한 사람들이 보였다.

"루크!"

마차가 이내 멈춰 섰다.

"아버지!"

"루크!"

사무엘은 곧장 루크에게 다가가 루크를 끌어안으며 중얼거렸다.

"미안하구나, 네가 위험한 일을 당했다고 들었다. 내가 가지 못해서 미안했다... 루크야."

"괜찮아요, 저야말로 죄송해요 걱정끼쳐 드려서."

사무엘이 루크를 한차례 바라봤다. 다행히도 외관상 루크는 멀쩡해 보이자 안도의 숨이 나왔다. 그동안 걱정이 되었던 마음이 싹 가시는 듯했다. 뒤이어 마차에 내리는 사람들이 보였다. 에이리스를 비롯해 엘레니아와 안느란테 레이니까지 내리자 사무엘이 놀란 얼굴로 모두를 바라봤다. 뒤이어 나서스가 엘레니아를 보자 다급히 엘레니아에게 다가가는 다그치는 모습이 보였다.

"엘레니아! 여긴 왜 온 것이야? 위험해! 당장 돌아가거라!"

"아버지!"

뒤이어 지크문드까지 나서서 위험한 곳에 이르러 엘레니아를 타박하자 엘레니아가 난감함을 표했다.

"그래 맞다 왜 이리 위험한 곳에 온게야?"

"할아버지, 걱정되는 걸요, 루크도 윈랜드에 오는 김에 저도 아버지랑 할아버지를 보려고 왔어요. 너무 뭐라 하지 말아주세요."

"그치만! 엘레니아."

"그만해요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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