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9회. 윈랜드】
메드니스의 명에 야낙은 물론 메세츠데의 모든 병사들이 도열해 있는지 한 시간여 그들의 도열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수많은 인원들로 구성이 되어 있었다.
꼭두각시가 된 병사들 하며 여기저기 포효를 토해내는 몬스터들까지 보인다. 무언가 언벨런스한 조합 속에도 그들은 자이로스의 명대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도열하여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한편, 그러한 곳에 야낙 역시 잔뜩 인상을 구기며 서 있었다. 한창 카시오를 구해내지 못해 불만이 가득했음은 물론 몇 시간이 지나도록 오지 않은 자이로스에 의해 그 불만은 더욱 커져 오르며 당장에라도 여기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커져갈 무렵이였다. 한시라도 빨리 카시오를 구하러 가야 했건만 그러지 못하는 자신 때문에 초조함은 더욱 커졌기 때문이었다.
이렇기에 야낙은 도열하라는 메드니스와 자이로스의 말을 듣지 않고 다시 윈랜드로 몰래 잠입하려 했었으나 창백한 얼굴로 몸을 덜덜 떨며 두려움에 사로잡힌 메드니스의 모습에 차마 그녀의 말을 거부할 수가 없었던 야낙은 이내 잔뜩 뿔이 난 표정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저 답답한 마음에 한숨만 푹푹 내쉴 뿐이었다.
"젠장.. 이럴 시간이 없는데.. 이 녀석은 또 왜 이러는 거지?"
지금도 자신의 옆에 메드니스는 잔뜩 겁을 집어먹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도대체 무엇이 그녀를 두렵게 하는지 궁금증이 이는 야낙이 조심스럽게 메드니스에게 물었다.
"이봐? 너답지 않게 왜 그러지? 볼일 못 본 개새끼마냥 덜덜 떨고 있는거지?"
"...."
야낙의 질문에도 대답은 없자 야낙이 잔뜩 인상을 썼다.
"메드니스. 네가 꿀 먹은 벙어리라도 된 것이냐?"
"닥쳐! 너, 너도.. 곧 알게.. 될 거야.. "
그제야 메드니스의 입이 떨어졌다. 신경질적으로 소리친 메드니스의 모습에 야낙은 순간 당황을 했으나 이내 메드니스의 말을 듣는 것이 아니란 생각에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소리치려 할 때였다.
그들의 앞에 놓인 높은 단상 위, 예나 지금이나 금색의 갑옷을 입은 자이로스가 천천히 걸음을 옮겨 단상 위에 올라서자 이내 야낙의 표정이 찌푸려지며 메드니스 대신 자이로스를 바라보며 이를 갈았다.
"쓰레기 같은 자식.."
이내 자이로스가 도열해 있는 병사들을 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이더니 야낙과 눈이 마주쳤다. 동시에 자이로스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리며 야낙을 한차례 훑어 본다. 야낙이 콧방귀를 뀌었다.
자이로스는 한차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이내 도열해 있는 병사들을 보며 소리쳤다.
"오늘부로 기다림은 끝났다. 오늘을 계기로 아즈문을 비롯해 이 세상 모든 나라는 우리 발 아래 놓일 것이다. 그렇다! 새로운 역사가 쓰일 것이다. "
자이로스의 말에 병사들이 하나같이 함성을 내지른다.
"새로운 역사를 맞이하고 경배하라! 그리고 우리들의 황제를!! 황제 폐하께서 친히 너희와 함께 전장에 나설 것이다. 그러니! 하나가 되어 아즈문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자이로스가 호기롭게 소리치자 그 앞에 있던 야낙이 연실 콧방귀를 뀌었다. 되도않는 연설에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은 듯했다. 그러나 그때였다. 자이로스의 옆에 균열이 일기 시작하며 알 수 없는 기운이 스멀스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야낙은 이 기운이 언제나 활기차던 메드니스를 잔뜩 얼어붙게 한 기운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저 가만히 있기만 해도 온몸에 털이란 털이 곤두섰고 감각이란 감각들은 모두 위험을 알리는 경종을 울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주변 온도가 차츰 내려가기 시작하는듯한 느낌이 들었고 어느 순간은 또 뜨거워지기도 했다. 이렇게 알 수 없는 기운의 변화 속에 평생 두려움을 몰랐던 자신에게조차 공포심이 피어나기 시작하자 야낙의 눈동자의 파문이 일기 시작했다. 뒤이어 점차 커져 오르는 균열 사이로 클루드의 탈을 쓴 벨리알이 모습을 드러내자 그 기운의 농도는 더욱 진해지며 천하의 야낙 조차 경악과 두려움에 찬 표정을 짓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의 힘을 온전히 받아낸 것인가? 인간이?! 어찌.."
그저 모습을 드러낸 것만으로도 위엄이 느껴졌고 절로 공포심이 일게 했다. 그러자 몸이 절로 움직였다. 언제나 자존심이 강하던 야낙조차 자기도 모르게 한쪽 무릎을 꿇고 부복의 자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거진 반강제적이 위엄과 위압감 때문이었다.
뒤이어 모든 병사들이 야낙과 같이 한둘씩 무릎을 꿇어 부복의 자세를 취하기 시작하자 클루드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뒤이어 자이로스도 병사들과 같이 무릎을 꿇고 소리쳤다.
"황제 폐하를 뵙나이다."
메세츠데 진영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소리친 자이로스의 모습에 클루드의 표정이 더욱 미소로 일그러져 갔다. 이내 클루드가 병사들을 한차례 훑어 보고는 천천히 무거운 입을 열기 시작했다.
"일어나라."
그리 크지 않은 목소리였으나 클루드의 목소리가 이내 모든 병사들과 몬스터들에게까지 닿았는지 마치 기계처럼 몸을 일으켰다.
"긴말은 하지 않겠다. 그저 지나가는 모든 살아있는 생명들을 깡그리 짖밟아 죽여라, 적들이 흘리는 피로 목을 축이고 적들의 살로 배를 채워라. 우리를 반하는 자들 앞엔 오직 죽음만이 가득할 것이다."
클루드의 주변에 숨을 턱턱 막히게 하는 기운이 퍼져 오르고 있었다. 동시에 병사들의 함성 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하자 야낙이 잔뜩 인상을 썼다. 그 옆에 있던 메드니스는 여전히 두려움에 클루드를 바라보는 것조차 어려워 보였다.
"때가 되었다. 진군하라."
뒤이어 클루드가 소리치자 차츰 병사들이 발을 구르기 시작했다. 대지가 쿵쿵거리며 요동을 쳤다. 동시에 자라난 잡풀 들이 차츰 시들시들해지다 이내 완전히 말라 죽어 버리기까지 한다. 하늘에선 멈췄던 눈도 서서히 내리기 시작했다. 마치 메세츠데 진영의 진군을 알리듯 말이다.
야낙은 이러한 클루드의 모습에 그의 말대로 그가 지나가는 곳은 어떠한 생명도 살아남지 못할 것만 같아 자기도 모르게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몸은 자신의 생각과는 반대로 움직인다. 머릿속은 어서 빨리 도망치라 소리치는데 몸은 그러하지 못했다. 마치 자신의 옆에 있는 꼭두각시 인형들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