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5회. 전쟁이 발발하기 전】
다시 며칠이 흘렀다. 아직까진 고요한 전장에 방벽 위에 올라선 데미아스의 눈에 근심이 서리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많은 숫자구나.."
뒤이어 그의 무거운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그의 옆엔 지크문드를 비롯해 사무엘과 나서스 그리고 성기사단의 마레즈와 로열나이트인 제이슨도 자리하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저만치 지평선 끝에 진군해 오는 메사츠데의 병사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수는 가히 상상 이상으로 많아 모두가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여태 윈랜드를 습격해 왔던 수는 고작 새 발의 피였음을 말해주며 이내 카시오가 했던 말이 사실이었음을 보여 주었다. 확실히 그녀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에 헛웃음이 나왔으나 그 웃음은 금세 지워지며 근심이 자리했다.
"우리도 많이 준비했다고 생각했건만 정말 우물안 개구리 였군.. 쯧쯧"
지크문드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윈랜드 역시 로열나이트를 비롯해 여러 용병대까지 윈랜드에 합세함으로 그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이정도면 해볼만 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작 그들과 직면하니 메세츠데의 적들의 수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였다는 것을 깨달으며 지크문드가 낮게 탄식을 토해냈다.
데미아스는 가시지 않은 근심이 얼굴에 짙게 내려앉았다.
"어쩌면 이번이 저들에게 본격적인 침공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마레즈가 잔뜩 인상을 쓰며 묻자 지크문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 녀석들 한동안 습격을 하지 않더니 이런 걸 준비하고 있었구만."
지크문드의 말이 끝나고 뒤이어 저만치서 몬스터들의 포효 소리가 들려왔다. 뒤이어 쿵쿵 발을 구르며 전진하는 병사들의 모습은 패기가 느껴짐에 절로 몸이 움츠러들 뻔한다.
데미아스의 표정이 굳어지며 마른 침을 삼키자 옆에 있던 모든 이들 역시 데미아스와 별반 다르지 않게 마른 침을 삼켜야 했다. 메세츠데의 남다른 패기 때문이었다.
데미아스가 이내 사무엘에게 물었다.
"우리 측의 준비는?"
"루크가 만들어 놓은 대포 15문 발리스타 총 30문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병사들 역시 루크가 만든 폭탄을 총 3개씩 소지하게 했습니다. 저희 준비도 사실상 다 끝난 상태입니다. 더는 시간이 부족합니다."
"그래.. 아쉽군 그 수에 두 배는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사무엘의 말에 데미아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의 눈가에 작은 파문이 일었다. 생각보다 발리스타 하며 루크가 만든 대포의 보급 수가 적당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언제고 예상대로 되지마는 안은게 군대이지 않았는가 데미아스가 씁쓸한 표정으로 다시 진군해오는 메세츠데를 바라보았다.
이제는 시간이 부족했다. 여태 준비한 것을 마무리할 때였다. 뒤이어 데미아스가 고개를 돌려 자신의 진영인 윈랜드 방벽 아래를 바라보자 수 많은 기사들과 병사들이 도열해 있는 모습이 보였다. 데미아스가 길게 심호흡을 하고 목소리에 마나를 담았다.
"들어라! 적들의 침공이 시작되었다! 전과는 다를 것이 분명하다! 우린 끝까지 살아남을 것이다! 그리고 기억될 것이다! 후대에! 또 그 뒤를 이은 후대에까지! 우리들의 위명은 적들을 다신 이 땅을 밟지 못할 또 다른 방벽이 될 것이다. 그러니 믿거라! 너희 자신을! 너희 옆에 있는 동료를! 그리고 듣거라! 너희를 위해 기도를 하는 가족들의 소리를! 그들을 위해 싸워라! 우리의 땅과 가족들을 짓밟는 악의 무리를 향해 무기를 드높여! 단 한 놈도 이 방벽을 통과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
"예!"
"아즈문을 위하여!"
데미아스의 외침이 끝나고 윈랜드를 가득 울리는 병사들의 함성 소리가 들려 왔다.
"아즈문을 위하여!"
"위하여!"
그렇게 우뢰와 같은 함성 소리와함께 서서히 윈랜드에 전쟁의 서막이 차츰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전쟁이 일기 하루 전
"어서 떠나거라!"
사무엘의 말에 루크가 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여기 있을게요 아버지!"
"그럴 순 없다!"
"하지만 아버지!!"
고집스런 루크의 말에도 사무엘은 여전히 고개를 저을 뿐이자 루크가 답답한 듯이 사무엘을 닦달했다.
"저도 이곳에 있고 싶어요! 저도 아스란가의 사람이에요! 전투를 피하고 싶지 않아요!"
"그럴 순 없어! 다른 이들도 생각하거라! 너만 바라보는 사람들은 어떻게 할 것이냐?! 엘레니아, 에이리스, 안느란테, 레이니, 로제스, 심지어 황후님까지 말이야! 네 생각만 하지 말고 떠나라! 당장 모두를 대리고 오늘 떠나거라! 널 이곳에 절대로 둘 순 없다."
"하지만."
"루크! 잘듣거라! 네가 만들어준 무기들로 이겨서 꼭 돌아오겠다. 그러니 제발 이번 한 번만은 이 아비 말을 들어다오! 부탁이다 루크."
"아버지. .만약 무기에 이상이 있거나 보급이 부족하면 제가 필요하게 될지도 몰라요. 그리고 아직 수량을 다 채우지도 못했잖아요!"
"그렇지 않아, 이제 우릴 기다려주는 시간은 없어! 적들은 코앞까지 다가왔어! 더이상 우리를 기다려 줄 시간이 없다는 소리야! 만약 전쟁이 발발하면 난 널 지켜줄 수 없다. 난 너 한 사람만을 지켜 줄 수가 없어!"
".."
"만약 네가 이곳에 남게 된다면 난 제대로 싸울 수 없을 것이야 말은 널 지켜줄 수 없다 해도 난 너를 지키게 될 테지 내 병사들을 버리고 말이야! 그만큼 넌 나에게 소중하단다. 그러니 이번에는 날 믿고 기다리거라..날 믿어다오 루크!"
단호한 사무엘의 말에 루크는 더는 고집을 피울 수가 없었다. 루크는 오늘따라 직접 몸으로 싸울 수 없는 자신의 몸이 이리도 한탄스럽고 한심스러운 줄 몰라 눈가에 눈물이 차올랐다. 너무 억울하기 때문이었다.
"죄송해요.. 아버지"
"나에게 죄송할 필요는 없어 넌 이미 충분할 정도로 이 나라를 위했다. 이제 내가 마무리 할 때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