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6회. 전쟁이 발발하기 전】
루크가 울먹이며 대답하자 사무엘이 루크를 끌어안아 주며 대답했다. 이내 옆에 있던 레이니가 사무엘을 끌어안자 사무엘이 레이니에게 일렀다.
"네 동생을 끝까지 지켜주거라 레이니.. 너만 믿으마."
"저라도 남으면 안 되는 건가요 아버지? 전... 충분히 강해졌어요 신물의 주인이기도 해요.."
레이니가 씁쓸하게 물었으나 사무엘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중을 위해 남겨두거라. 그리고 신물을 다 모으면 그때 도와주거라. 아직은 아니야, 그러니 부탁하마 레이니 네 동생을 지키거라!"
"... 알겠어요 아버지.. 꼭 살아 돌아오셔야 해요."
"조심하세요 아버지."
"그래! 그리고 꼭 신물을 다 찾아내거라. 그리고 아스란을 부탁하마. 루크, 레이니! "
"네.. 알겠어요 아버지.."
한편, 같은 시각이었다. 엘레니아의 방에도 한창 나서스와 엘레니아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당장 떠나야 해!"
"안돼요 아버지! 저도 이곳에서 같이 아버지와 싸우겠어요! 저도 어엿한 마법사에요!"
엘레니아의 말에 나서스가 인상을 찌푸렸다.
"넌 아직 부족해! 특히 이런 전장에선 더 그래! 내가 이곳에서 널 지켜줄 수 없어!"
"아니에요! 전도 분명 도움이 될 거에요!"
"엘레니아 이번엔 내 말 들어라!"
고집스런 엘레니아의 말에도 이번에는 나서스 역시 한 치의 물러섬도 없었다. 연이어 언성까지 높이며 나서스가 소리치자 엘레니아의 눈가에 습기가 차올랐다. 당장에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엘레니아가 말 했다.
"아버지.. 제발.."
"왜 이리도 내 말을 듣지 않은 것이냐? 제발 부탁하마! 가서 네 동생과 엄마를 도와주거라. 엘레니아."
"..아버지.."
"이번만큼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네 부탁은 들어주지 못해, 만약 가지 않겠더라면 널 묶어서라도 강제로 보낼 것이니 그리 알 거라!"
이내 엘레니아가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나서스의 말은 허투루 내뱉는 말이 아닌 것 같았다. 정 필요하다면 진심으로 묶어서까지 보낼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엘레니아의 모습에 나서스도 마음이 한편이 아려오며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절대 물러설 수 없었고 엘레니아의 말을 들어줄 수 없었기에 좀 더 모질게 대해야 할 때임을 나서스는 알고 있었다.
"부탁한다.. 엘레니아, 아직 레온은 어리고 로아니는 병이 완쾌되질 않았지 않느냐? 네가 필요해.."
"아버지도.. 필요해요."
엘레니아의 말에 나서스가 씁쓸하게 웃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승리하고 돌아가마."
"꼭 돌아오셔야 해요.."
"당연하단다."
나서스가 천천히 엘레니아를 꼭 끌어안아 주었다. 그럼에 엘레니아가 감정을 터트리며 눈물을 토해내기 시작하자 나서스도 몰래 눈물을 훔쳐야만 했다.
"황후님.. 어서 가셔야 합니다."
"전.."
"어서요, 꽤 큰 싸움이 될 겁니다. 이곳에서 다시 황후님을 잃게 할 순 없습니다. 어쩌면 황후님을 지켜내기에도 힘들 겁니다."
마차에 탄 루미에르를 향해 제이슨이 잔뜩 굳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럼에도 루미에르는 무언가 찝찝하고도 안타까운 감정이 남아 쉽사리 황성으로 돌아가질 못하고 있었다. 만약 자신이 황후가 아닌 황제 제이서스였다면, 저 두려움에 떨고 있는 병사들과 함께 싸울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 그 아쉬움이 더욱 진하게 느껴졌다. 말로만이라도 병사들에게 사기를 끌어올리게 해주겠다고 했으나 루미에르의 어떠한 연설에도 두려움과 공포로 가득한 그들의 마음은 쉽사리 진정시킬 수 없었다. 어쩌면 진짜 전장에서 서는 자들의 심리를 루미에르로서는 알 수 없으니 그러할지도 몰랐다.
그들에게 루미에르는 싸움이 일어난다면 다시 황성으로 돌아가야 하는 사람이기에 공감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루미에르의 어떠한 말로도 병사들을 자극 시킬 수가 없었을 테니.. 그래서일까? 루미에르는 오늘따라 이렇게까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밉기는 처음이었다. 어쩌면 제이서스면 달랐을 터인데 하는 아쉬움이 일었다.
"황후님.. 어서.."
제이슨이 닦달했다. 루미에르는 아쉬운 듯 인상을 찌푸리며 방벽 아래 늘어선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하나같이 창백한 인상이었다.
"제가 도와줄 일은 정녕 없는 것입니까?"
제이슨이 씁쓸하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어찌 황후 앞에서 자신이 쓸모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특히 제이슨 같은 충신은 더욱 그러했으니 루미에르는 이내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그제야 제이슨이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마차의 탄 마부에게 일렀다.
"최대한 안전하게 모시거라."
"예! 조심하십시오 대장."
한 기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자 제이슨이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동시에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는 마차 루미에르는 창문 밖으로 고개를 빼내 제이슨과 윈랜드를 바라보다 이내 두 눈을 감고 오랜만에 라우엘에게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전쟁이 일어나기 20시간 전,
"그래.. 가거라."
"예.."
루미에르의 마차가 먼저 길을 떠났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차마 인사도 다 못 나누고 급하게 떠나 아쉬움이 남았으나 어쩔 수 없었으리라. 이내 루크도 마차에 탔고 뒤이어 엘레니아를 비롯해 레이니와 안느란테 그리고 에이리스와 로제스가 탐으로 마차가 서서히 움직이며 길을 떠나기 시작하자 루크가 급히 마차 창문을 열고 소리쳤다.
"조심하세요! 꼭 돌아오세요!"
"오냐 돌아오마."
루크의 말을 들었는지 사무엘이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뒤이어 마차가 속력을 더하기 시작하며 이내 윈랜드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엘레니아 역시 걱정스런 눈으로 나서스의 모습을 끝까지 쫓았으나 이내 한 점이 되어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차마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뒤이어 윈랜드에 남은 사람들 나서스와 사무엘 그리고 데미아스와 지크문드를 비롯해 성기사 마레즈 로열나이트인 제이슨까지 고개를 돌려 자신의 뒤에 도열해 있는 병사들을 바라봤다.
"우리도 슬슬 준비하자꾸나."
데미아스의 말에 모두가 대답했다. 이제 모든 준비를 마무리해야 할 때였다.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 보낸 아쉬움은 잠시 접어두고 이제 한 사람이 아닌 자비가 없는 악귀가 되어야 했다. 그래야 자신이 살고 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