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7회. 전쟁이 발발하기 전】
전쟁 12시간 전,
윈랜드는 고요했다. 도열해 있는 병사들 사이 어떠한 말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같이 두꺼운 판금 갑옷을 입고 있었고 그의 옆 주머니엔 두세 개씩 루크 아스란이 만들어준 폭탄을 매달고 있었고 꽤나 걱정이 드는지 자꾸만 폭탄을 만지작거렸다. 그 앞에 검 병들은 계속해서 자신의 검을 마른 수건으로 닦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꽤나 불안해 보이며 얼굴도 꽤 창백한게 안쓰러워 보이기 까지 한다. 그러한 모습이 그 병사가 어떻게든 두려움을 이겨 내려는 노력인것 같지만 오히려 부산스러워 보이고 불안해 보여서일까? 한 병사가 이내 그만하라고 닦달하자 검을 닦던 병사가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에도 안절부절 하지 못하는건 똑 같았다.
그런 그들을 보며 데미아스가 지크문드에게 말했다.
"지크문드, 내 친우여.. 여기가 우리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겠구려?"
".."
"그동안 고생했네 만약 여기서 살아 돌아가게 된다면 이제 다 내려놓고 좀 쉴 수 있겠어.. 끌끌.."
"그래.. 이 정도면 충분하지. 뭘 더 해줘?"
지크문드가 방긋 웃어 보이며 퉁명스럽게 말하자 데미아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지크문드 그 아이를 풀어줬던데?"
데미아스가 카시오를 생각하며 지크문드를 바라보자 지크문드가 씁쓸하게 웃어 보였다.
"그래.. 어리지 않나? 마계인이라 해도.. 나이가 드니 연민의 감정만 이리도 늘었나 보네."
"위험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위험은 무슨, 마나를 봉쇄하는 구속 구를 착용시켜 내보냈네, 이제 살아남는 건 그 아이의 몫이지 뭐 꼭 복수하겠다고 그러는데 끌끌 재밌는 아이라네."
"...그래.. 뭐 기대를 해야겠군.. 물론 우리가 살아있다면 말이지."
서로가 서로를 보며 웃어 보였다. 이내 방벽 너머를 바라보자 점차 가까워지는 적들이 보인다. 마치 새까만 이리 떼마냥 먹잇감을 찾으러 오는 짐승들처럼 그들의 눈은 붉게 물들어 있었고 자신이 있는 윈랜드를 향해 날카로운 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여유로웠던 데미아스의 표정이 다시 굳어졌다. 이내 사무엘을 불렀다.
"사무엘! 발리스타와 대포는?"
"발리스타 30중 대포 15문 모두 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습니다."
"좋다..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게 대기하라 이르거라."
"네!"
전쟁이 일어나기 6시간 전,
서서히 다가오던 메세츠데의 진영이 멈춰 섰다. 그들도 마지막 준비를 하는 듯하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 윈래드 역시 마지막 만찬을 즐기고 있었다. 창고에 있던 갖가지 음식들을 꺼내 먹이게 했다. 술을 제외하고 평소 먹기 힘든 고급스런 고기들을 비롯해 여러 음식들을 잔뜩 먹이게 했으나 그들의 표정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오히려 별로 먹지도 못하고 토를 하는 이들이 보였다. 극심한 긴장감 때문인 듯했다. 그럼에도 꾸역꾸역 입안에 음식을 집어넣는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도 있었기에, 데미아스는 그런 그들을 보며 자신 역시 자신의 앞에 놓인 고기를 한 점 입에 넣고는 이내 식사를 끝마쳤다.
"이대로 하루가 지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서스가 병사들을 보며 사무엘에게 말하자 사무엘이 씁쓸한 미소를 터트렸다.
"그랬으면 좋겠군.."
"우리에게 내일은 있을까?"
".."
점차 전투가 가까워져서일까? 꽤나 감성적으로 변한 나서스의 모습에 사무엘이 침묵했다. 그 역시 감성적으로 변한 듯싶었다.
"만약... 우리가 진다면, 윈랜드가 무너진다면.. 내 가족, 내 친우들.."
".."
"우리 어깨에 너무나 무거운 짐이 있구나 친우여.."
"그래, 너무나 무겁지.. 그래도 그 무게 때문에 살기 위해 노력하고 빼앗기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그런가? 난 그 무게로 인해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네"
"그러는가?"
"그렇다네.."
사무엘의 말에 나서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멍한 눈으로 병사들을 바라봤다. 차츰 식사를 하던 병사들이 이내 음식이 잔뜩 남아 있는대도 일어서는 모습이 보였다.
"그래 나도 살아야겠네, 아직 내 딸과 내 아내, 그리고 내 아들을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아직 아픈 로아니는 어떻고? 그리고 내 뒷바라지를 이른 나이에 하고 있는 테온은? 그리고.. 내 아리따운 딸 엘레니아..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내 딸 엘레니아을 위해서라도 그리고 나중에 나의 손자도 봐야 하고 말이야? 큭큭.. 그래 자네 말대로 그 무게 때문이라도 살아야겠네! 고맙네 사무엘"
"같이 살아보도록 발버둥쳐 보세!."
사무엘이 껄껄거리며 웃어 보였다. 오랜만에 보이는 호탕한 웃음이었고 이내 나서스도 따라 웃어 보이자 조금 긴장되던 마음이 완화된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