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루크 아스란 전기-280화 (280/412)

【280회. 발발하다】

얼마나 검을 휘둘렀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가빠져 오른 숨도 고르지 못하고 그저 본능처럼 적군들을 죽이고 병사들에게 소리치길 어느새 루크가 주었던 폭탄도 모두 소진한 상황에서 적들의 수는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뒤이어 기병들에 의해 완전히 붕괴가 된 진형, 준비가 부족했음을 뼈저리게 느껴졌다. 그 폭탄만이라도 지금의 두 배만 더 있었더라면 저 대포라는 것이 두 배라도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사무엘의 마음을 적셨으나 이미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았다. 사무엘도 이리 아쉬움이 진하게 남았는데 자신의 병사들은 어떠할까 그들의 표정이 이내 절망감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꿋꿋이 검을 휘두른다. 참으로 대견스럽다. 그간의 훈련을 말해주는 것이니라. 그렇기에 사무엘도 이 난전 속에 포기할 수가 없었다 .자신의 병사들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끄어어어!!"

트롤 한 마리가 또다시 쓰러졌다. 아군의 병사 몇몇이 검과 창을 휘둘러 베어낸 듯했다. 마지막으로 성기사 한 명이 이내 고통스러워 하는 트롤의 머리를 자신의 검으로 여러 번 내려 찢기 시작했다. 울분을 토해내리라 싶었다. 그러나 뒤로 다가온 또 다른 괴수가 연실 트롤의 머리를 내려 찢고 있던 성기사를 낚아채 이내 몸을 반 토막으로 갈라버렸다. 주변 병사들의 시선이 경악으로 변했으나 그럼에도 병사들은 물러서지 않고 다시 그 괴수를 향해 검과 창을 휘두르자 사무엘도 그들 곁으로 몸을 날렸다. 몸을 날림과 함께 병사들을 향해 내려치는 트롤의 손을 베어낸다.

"다리부터 베어 넘어트려라!"

사무엘의 외침에 병사들이 한둘 씩 달려들기 시작했다. 동시에 트롤의 다리를 베어내고 이내 쓰러진 트롤의 머리를 베어내자 다시 한번 사무엘이 소리쳤다.

"한번 죽은 괴수에게 미련을 버려라, 확인 사살은 한 번이면 족 해! 언제나 주위를 둘러보며 경계를 하라! 그래야 살 수 있어!!"

"네!"

병사들이 얼떨결에 대답했다. 동시에 다시 다가오는 적군들을 향해 창과 검을 휘두르기 시작하자 사무엘도 다시 적군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 ☆ ☆

한편 데미아스가 자리하고 있던 방벽 위였다. 하늘에서 누군가 데미아스의 앞에 내려오며 주변의 병사들을 베어가기 시작했다. 뒤이어 그가 이르른 곳은 데미아스의 앞이었다.

"야낙, 또다시 그대와 만나는구려?"

데미아스가 자신의 앞에 선 야낙을 보며 말하자. 야낙의 눈은 분노로 이글거리고 있었으며 여전히 그 위용을 숨길 수 없는 거대한 대검을 들어 데미아스를 겨누고 있었다. 동시에 둘에겐 전장의 소리가 먹먹하게 변하며 주변의 소음이 더이상 들려오지 않은 것 같았다. 마치 세상에 단둘만이 존재하고 있는 듯한 느낌에 데미아스가 천천히 검을 뽑아들며 야낙을 겨누었다.

"카시오는... 어디에 있느냐?"

야낙이 목소리를 내리깔며 물었다. 그런 그의 목소리엔 진득한 살기가 느껴졌다. 데미아스는 그런 야낙을 보며 비릿하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너희는 적진에 사로잡힌 포로들을 어떻게 하느냐?"

데미아스의 말에 야낙이 흠칫 몸을 떨며 이내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데미아스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 내.. 너의 살과 뼈를 갈아 마실 것이다!"

야낙이 분노했다. 동시에 퍼져 오르는 거대한 마계의 기운은 오직 데미아스에게 쏠린 상태였다. 그때 마침 한 메세츠데 병사가 야낙의 옆에 서 데미아스를 노리려 하자 야낙이 신경질적으로 아군 병사의 목을 베어내며 소리쳤다.

"내 먹잇감에 손대지 마라. 내 친히 너와 단둘이 결판을 내겠다."

"후회할 텐데.."

데미아스가 비릿하게 웃으며 이내 마나를 이끌어내기 시작했다. 그만큼 야낙을 허투루 볼 수 없는 사내였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야낙과의 전투로 시간을 오래 끌 생각도 없었다. 자신은 엄연한 윈랜드에 사령관이기에 어서 빨리 야낙을 처리하고 병사들을 이끌어야 하는 몸이었다.

"내가 할 소리! 날 만난 건 후회하게 해주마!"

"호호 재밌구나 좋다. 야낙! 덤비거라. 오늘은 그대를 쉽게 보내지 않을 테니 진정으로 목숨을 거는 것이 좋을게야."

"오냐.. 오늘 내 목숨을거마!"

둘의 대화가 끝났다. 더이상 대화는 필요치 않았다. 그저 땅을 박차고 번뜩이는 둘의 검이 공간을 점해 갈 뿐이었다. 뒤이어 그들의 주변에 거대한 파공음이 전장을 울리기 시작했다.

☆ ☆ ☆

"호호홋 제법이야?"

간드러지는 목소리, 메드니스가 깔깔거리며 재밌다는 듯이 웃어 보이자 지크문드의 인상이 구겨졌다. 확실히 이 여자는 카시오랑은 다르게 이러한 전투가 익숙한지 쉽게 싸움를 끝낼 수가 없었다. 특히 그녀는 마법 뿐만 아니라 허공을 날아다니며 저 기이하게 움직이는 채찍 때문에 더 상대하기가 골치가 아팠다.

"하찮은 인간 따위가 이렇게까지 버틸 줄이야. 정말 상상도 못 했다니깐? 그나저나 그때 그 아이는 어디 있어? 꽤 괜찮은 아이였는데 말이야~"

메드니스가 지크문드를 보며 탐욕적인 모습으로 말했으나 지크문드는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런 쓸모없는 대화로 시간을 끌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서 빨리 메드니스를 정리하고 병사들을 다독여야 했다. 게다가 지크문드와 반대쪽 방벽에 있는 데미아스를 힐끔 쳐다보니 그 역시 야낙이란 자를 만나 발이 묶인 듯하다 그렇기에 병사들에게 자신이 더욱 필요한 시점이었다.

지금 아래에는 진이 붕괴되고 사무엘과 나서스가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다행히 그 옆엔 마레즈와 제이슨이 있었으나 그들만으론 부족했으니 데미아스나 자신 둘 중에 한명은 꼭 있어야 함이 분명했다.

"말을 할 줄 모르는 거야? 아니면 내 모습에 반하기라도 했나? 호호"

간드러지는 웃음 속에 메드니스가 자신의 몸매를 과시했다. 그럼에도 지크문드는 어떠한 대답도 없자 메드니스가 이내 기분이 상했는지 눈살을 찌푸리며 인상을 구겼다. 동시에 그의 주변이 흙색의 불쾌한 기운을 풀풀 풍기는 마법 진이 그려지며 진 사이로 적갈색의 촉수가 뿜어져 나와 지크문드를 향해 쇄도해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지크문드도 진중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마나를 일깨우기 시작하자 그의 손에 새겨진 푸른 마법 진에 주변을 아우르는 푸른 번개가 뿜어져 나와 촉수를 검게 태워 버렸다.

"제법이야! 카시오가 왜 당했는지 알 것 같네.. 실력은 인정해 줄게! 하지만 이건 어떨까?"

다시 한번 날개를 펄럭였다. 동시에 그녀의 손에 자리한 검붉은 채찍, 지크문드가 눈살을 찌푸렸고 다시 한번 마나를 일깨우기 시작했다.

"후훗."

메드니스가 비릿하게 웃어 보이며 빠르게 지크문드를 향해 쇄도해 왔다. 그 빠르기는 정말 찰나라고 해도 될 정도로 빠른 속도였음에 지크문드가 흠칫 놀라 급히 자신의 몸 주위에 반투명한 방어막을 생성해 간신히 그녀의 채찍을 막아낼 수 있었다.

"반응 속도가 늙은이로는 안 보이는 걸?"

메드니스가 자신의 공격을 쉽게 막아낸 지크문드를 보며 놀란 표정을 지어 보인다.

그러나 지크문드는 대답 대신 다른 한 손에 또 다른 마법 진을 그리며 거대한 불꽃의 구를 만들어 메드니스에게 쏘아냈다.

"칫 재미 없어! 이까짓 마법 따위!"

메드니스가 잔뜩 뿔이난 표정으로 별반 어렵지 않게 자신에게 다가오는 불꽃의 구를 허공에 몸을 틀어 피해내자 지크문드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고작 이걸로는 부족하지! 나도 봐주지 않겠어!"

또 다시 메드니스가 지크문드를 향해 쇄도해 온다. 동시에 들려진 채찍은 지크문드가 만들어낸 방어막을 가격하기 시작했고 그럴 때마다 방어 막을 타고오는 충격에 지크문드의 안색이 파리하게 변해갔다. 그럼에도 다른 한 손으로 연실 마법을 쏘아내는 것을 멈추지 않으며 메드니스의 빈틈을 노렸으나 그녀를 맞추는 게 여간 쉽지가 않아 보였다.

"그만 포기하는 게 좋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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