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루크 아스란 전기-282화 (282/412)

【282회. 발발하다】

그런 병사들의 모습에 진을 유지할 수가 없으니 계속해서 시체는 늘어남의 연속으로 악순환이 계속되자 이내 나서스와 사무엘이 걱정이 앞서기 시작했다.

"젠장! 이러다가 정말 함락될 걸세 사무엘!"

나서스가 사무엘의 옆에 서며 소리쳤다. 사무엘 역시 자신에게 다가오는 메세츠데 병사의 머리를 한 차례 베어내며 대답했다.

"아버지는?"

"여기선 보이지가 않네!"

"젠장.."

사무엘이 다시 다가오는 몬스터의 다리를 베어내고 이내 나서스가 쓰러진 몬스터의 목을 베어낸다. 멋진 합격 술이었으나 그 역시 사람인지라 거친 숨을 몰아쉬며 지친 모습을 보였다.

사무엘이 잠시 숨을 고르며 주위를 돌아보았다. 자신을 비롯해 공포에 젖은 아군들은 어느새 윈랜드 도심지까지 밀려난 상태였다. 그에 비해 메세츠데의 적군들은 처음과 달리 변한 점이 없다. 여전히 방벽에서부터 꾸역꾸역 밀고 들어오는 모습이 보일 뿐 그 끝이 보이지가 않자 사무엘이 다급히 나서스에게 일렀다.

"일단 지크문드님이나 아버지가 오실 때까지 맞서야 하네! 방도가 없어! 나서스 병사들을 광장 입구 쪽으로 가지! 그 좁은 입구라면 조금 더 막기 수월할 걸세!"

잠시 주변을 돌아보던 사무엘이 윈랜드의 도시가 머릿속에 그려지며 이내 판단을 끝내며 나서스에게 소리쳤다. 그러자 나서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자 사무엘이 소리치기 시작했다.

"광장으로 후퇴한다!! 그곳에서 농성을 할 것이다!! 방패 병!! 방패를 끝까지 들어 병사들을 지켜라! 천천히 뒤로 물러난다!!"

사무엘의 외침에 병사들은 살기 위해서라도 이를 악물고 방패를 들기 시작했으며 조금씩 뒷걸음질치기 시작했다. 동시에 도시 내에 광장으로 가는 길목으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런 아군들을 향해 메세츠데 적군들은 여전히 수를 앞세워 밀어붙이고 있었으나 점차 좁아지는 길목이 확실히 윈랜드에 도움이 되기 시작했다. 바로 적군의 기병들이 자신의 아군을 부딪쳐 공격하는 참사가 일어나기 시작했고 기병들이 제 속도를 이용하지 못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몸집이 큰 몬스터같은 경우 그들이 움직일 때마다 기병이며 보병들까지 휩쓸고 지나가니 그 피해가 막대하다. 사무엘의 판단이 빛이 바랜 상황이었다.

전쟁 발발 후 3시간 30분 경과

야낙이 지친 땀방울과 빗물 그리고 몸 여기저기서 난 피가 혼합되어 흘리고 있었다. 꽤나 지쳤는지 잔뜩 숨을 몰아쉬고 있었으나 여전히 패기 가득한 두 눈으로 데미아스를 노려보고 있는 건 여전하다.

그런 야낙의 모습처럼 데미아스 역시 지친 모습으로 숨을 고르고 있었다. 몇 번이나 야낙의 검을 받아낸 자신의 양팔은 이제 한계가 온 듯 모두 저릿한 느낌과 함께 짜르르 울리는 통증이 점차 심해지기 시작했다. 이제 더이상 검을 들기도 벅찰 정도였기에 이제는 슬슬 끝을 내야 할 시점이었다.

데미아스가 잔뜩 인상을 구겼다. 뒤이어 야낙이 크게 숨을 토해내며 소리쳤다.

"날, 여기까지 몰아붙인 건 네가 처음이다."

"나 역시, 젊었을 적 빼곤 오랜만에 내 힘을 다 사용한 것 같군."

서로의 모습에 야낙이 헛웃음을 지어 보였다. 야낙의 말에 절대 물러서지 않은 데미아스가 재밌다는 뜻이었다. 그러면서도 무언가 후련한 듯한 모습으로 보이기도 한 것이 데미아스와 전투가 꽤나 만족스러워 보였다. 그점은 데미아스도 그러했다. 순수히 검사대 검사의 싸움으로 이렇게 진이 빠져본적이 너무 오래되었기 때문이었다.

"좋아.. 다 쉬었으면 다시 이어가지.."

야낙이 미소를 지으며 다시 자신의 대검을 양손으로 붙잡아 데미아스를 겨누자 데미아스도 자신의 검을 힘겹게 들어 보인다.

"그 부들거리는 손으로 다시 내 검을 받아 낼 수 있겠는가?"

"물론, 이래 보여도 아직은 정정하다네."

"훗.. 좋다.. 다시 한번 말하지 난! 마계 대장군 야낙이다. 여기서 그대에게 내 마지막 힘을 보이겠다. 이것이 전사로서 그대에게 해 줄 수 있는 내 마지막 예의이다. "

야낙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이며 대답하자 데미아스가 입꼬리를 올리며 말을 받았다.

"아즈문의 제국 총사령관이자 아즈문의 오롯한 검, 사람들에겐 검성이라 불리는 데미아스 아스란일세 나 역시 마지막까지 자네를 실망시키지 않겠네."

"좋다.. 자네라면 내 마지막 힘을 받아내기에 충분하다.. 사실 벨리알에게 사용하고 싶었던 힘이었는데.. 일찍이 사용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군. 쯧쯧."

숨을 고른 야낙이 혀를 차며 씁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나 다시 투기를 한껏 내뿜으며 전장이 울릴 정도에 기합성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동시에 땅을 박차고 데미아스에게 향했다. 더이상 마나를 뿜어내지 않았다. 이번엔 짙은 생명력을 쏟아 붇기 시작했고 거대한 붉은색의 기운이 야낙의 대검을 핏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그런 야낙의 모습에 데미아스도 자신의 모든 힘을 쏟아 내기 시작하며 땅을 박찼다. 동시에 퍼져 오르는 푸른 색의 검기가 마치 불꽃처럼 이글거리기 시작했고 이내 서로의 검이 맞부딪치며 전장을 울렸다. 그러자 순간 세상이 멈춘 듯이 둘의 주변이 느리게 흘렀고 이내 굵은 빗방울이 한순간 지워졌다. 찰나의 시간이 지나가고 다시 세상인 원래대로 돌아왔다. 빗방울도 다시 내리기 시작하자 야낙이 말을 이었다.

"하, 아직도 이 정도의 힘이 남아 있었나? 정말 대단하군."

"자네 역시!"

그 말을 뒤로 둘은 어떠한 기운도 뿜어내지 않고 다시 한번 땅을 박찬 둘이 이내 서로를 지나쳤다. 동시에 이어진 정적, 오로지 지면을 강타하는 빗소리만이 가득한 전장에 데미아스가 검을 땅바닥에 떨구는 소리가 들려 왔다.

"..."

야낙의 얼굴에 미소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후우... 후우.."

데미아스의 가슴에 짙은 혈 화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가빠져 오른 숨에 쇳소리가 섞여 나온다. 데미아스가 잔뜩 인상을 구기며 무릎을 꿇었다. 동시에 데미아스의 갑옷이 반으로 갈려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크흑.."

이번엔 입에서 한 차례 피가 쏫아져 내리며 데미아스가 마른기침을 연실 토해내기 시작했다.

"대단하구나."

뒤이어 야낙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언가 후련한 모습의 야낙이 데미아스를 바라보자 데미아스도 힘겹게 고개를 돌려 야낙을 바라보았다.

"내가 상대한 자 중에.. 자네가 가장 강하다네."

"나 역시 그러했다.."

야낙이 대답했다. 그가 다시 한번 크게 미소를 지어 보인다. 이내 그의 몸에 기다란 실선이 머리부터 하체까지 그려지기 시작했고 짙은 혈 향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수고했네.. 야낙."

"..."

야낙이 대답이 없었다. 대신 한 차례 휘청이던 몸이 이내 바닥에 쓰러졌고 어떠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을 뿐이었다.

"나도.. 일어나야.."

쓰러지는 야낙을 보며 데미아스가 이내 몸을 일으키려 했다. 이미 방벽 근처는 조용했기 때문이다. 윈랜드의 병사들은 보이지 않고 계속해서 밀려드는 메세츠데 적군들만이 보일 뿐이었다.

그러나 몸이 쉽사리 움직이지 않았다. 동시에 울컥하고 피가 입에서 흘러 나왔다. 동시에 정신까지 아늑해지며 시야가 먹먹해졌고 이내 빗소리가 뭉개져 들려오는걸로 보아선 몸이 정상이 아닌 듯하다.

"안 돼.."

데미아스가 간신히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며 소리쳤다. 어서 빨리 움직여 병사들에게 달려가야 하는 마음이 간절했으나 몸이 천근만근이다. 이대로 있다간 여기서 쓰러질 것이 분명했다. 데미아스가 간신히 정신을 유지하며 조금 전 지크문드가 있던 방향을 바라봤다. 그곳에 쓰러져 있는 지크문드가 보였다.

순간 데미아스는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어떠한 미동도 없는 지크문드를 보며 지크문드가 죽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였다. 점차 밀려 들어오는 잠 속에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적군들이 언뜻 보인다. 아마 야낙이 없으니 이제 마음대로 자신을 도륙하리라, 데미아스의 얼굴에 짙은 아쉬움이 맴돌기 시작했다. 이대로 윈랜드를 잃는다는 생각이 들자 마치 주마등처럼 뒤에 남은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미 죽고 없는 자신의 아내를 시작해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사무엘과 라이아 그리고 친우 지크문드를 비롯해 레이니와 루크까지 데미아스는 괜스레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대로 죽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여전히 몸은 움직이질 않았다. 간신히 숨만 붙어 헐떡일 뿐이었다.

"제발.. 신이 있다면.. 도와주시오..."

데미아스가 난생 처음 신을 찾으며 중얼거렸다. 동시에 서서히 가까워진 메세츠데 병사의 모습 그 병사의 손에 들린 창이 번뜩이기 시작했다. 데미아스가 이내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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