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루크 아스란 전기-288화 (288/412)

【288회. 내가 할 수 있는 것】

뒤이어 라이아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루크는 곧장 자신의 거울 앞에 섰다. 처음 이 세상에 온 뒤로 오랜만에 보는 전신 거울에는 초췌한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정리되지 않아 산발이 된 붉은색 긴 머리칼은 중구난방으로 뻗쳐 있었으며 눈가에 다크서클이 진하게 내려앉아 있음은 물론 붉게 충혈된 눈은 심히 보기가 안 좋았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그 충혈된 눈 사이로 점차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래, 이러지 말자.. 강인아.. 아니 루크! 그래 난 루크 아스란이야.. 이제 내가 이곳에 가주잖아?.. 처음에 후회하며 살지 말자고 했잖아?.. 멍청했어. 참 멍청했어! 이러고 있으면 안됬는데. 이렇게 허투루 시간을 보내지 말아야 했는데.."

이내 후회가 밀려왔다. 다른 의미에서의 후회였다. 이내 양손을 들어 양 뺨을 툭툭 소리가 날 정도로 치자. 아픔이 밀려 왔으나 무언가 후련함 감도 같이 느껴졌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아버지.. 할아버지.. 죄송해요.. 일어날게요.. 일어날 거에요.."

루크가 거울을 보며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럼에 다시 눈물이 터져 나오려 했으나 어떻게든 꾹 참아낸다. 그러자 오랜만에 아리스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좋은 생각이다.'

루크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고마워요 아리스,"

'아직 늦은 건 아니다. 분명히 그들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맞아요...막아낼 거에요.. 무슨 일이 있어도. 제가 막아 낼 거에요"

루크가 나지막이 거울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거울 사이로 클루드의 비릿한 웃음이 루크를 놀리는 듯하자 왠지 모를 불안감이 차오르는 것 같았다. 그러나 금세 불안감을 훌훌 털어 냈다. 그렇게 다시 루크가 깨어나자 이내 누군가 빠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내 루크가 방 밖으로 나갔다.

"루크?"

뒤이어 루시가 반기며 루크에게 안겼고 뒤를 이어 릴리와 세리스가 보이자 루크가 다급히 물었다.

"세리스, 엘레니아 누나는 이곳에 없어?"

"응... 그때 오빠가 돌아오고 엘레니아 누나도 바로 지아란으로 돌아갔어.. 표정이 많이 좋아 보이지 않던데.."

"그랬구나.."

뒤이어 에이리스와 안느란테가 보였다. 그들 역시 한달음에 루크에게 달려오자 루크가 멋쩍게 웃어 보였다.

"괜찮아요 이젠?"

안느란테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루크에게 묻자 루크가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대답했다.

"네.. 솔직히 아직 다 떨쳐낼 순 없지만.. 이겨내야지요... 그리고 제가 할 일을 찾아야겠어요."

"루크님이 할 일이요?"

"네! 그러나 지금은 가장 중요한 일이 생각났어요."

"중요한 일?"

루크의 말에 에이리스가 고개를 갸웃하며 되묻자 루크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 엘레니아 누나가 걱정이에요."

"그렇지.. 엘레니아도 많이 슬퍼하고 있을 거야.."

에이리스가 씁쓸한 표정으로 맞장구쳤다. 그러자 루크가 같이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상념에 빠졌다.

윈랜드가 함락되었다는 비보를 들은 것은 루크만이 아니었고 옆에 있던 엘레니아도 같이 들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때 루크는 넋을 잃고 매일을 눈물로 밤을 지새워 잠시 엘레니아의 존재를 잠시 잊고 있었다. 그점이 후회가 되었다. 자신은 그나마 주변에 라이아를 비롯해 다른 이들이 많이 있어 걱정을 털어 낼 수 있었는데 엘레니아의 곁엔 지금 아직 병을 완쾌하지 못한 로아니를 비롯해 동생인 테온만이 있으니 말이다. 그러자 루크의 마음에 엘레니아를 향한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당장 엘레니아 누나에게 가봐야겠어요."

지금 자신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을 마친 루크의 행동은 빨랐다. 그러자 에이리스와 안느란테가 이번엔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루시도 조금은 뿔이 난 표정을 지어 보였으나 이내 고개를 끄덕이자 루크는 급히 욕실로 들어가 간단하게 몸을 씻고 새로운 옷을 갈아입은 뒤 다시 방을 나섰다.

이내 방 밖에 기다리던 안느란테와 에이리스가 보이자 루크가 다시 한번 모두를 보며 사과를 했다.

"죄송해요. 다음부터는 이렇게 약한 모습 보이지 않을게요."

"그래 잘했어 루크! 힘들겠지만.. 이겨내야 해.. 정말 잘 생각한 거야."

에이리스의 말에 루크가 그녀의 이마에 작은 입맞춤을 해주며 말했다.

"다녀올게요."

"그래.. 엘레니아에게 안부 전해줘.. 그리고 꼭 다시 엘레니아를 데려와."

"그럴게요."

"저도 같이 갈까요?"

뒤이어 안느란테가 걱정스런 눈빛으로 묻자 루크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직 지아란가에 로아니가 루크의 다른 여인들은 못마땅하게 생각했기도 하고 이번엔 혼자서 엘레니아 누나를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괜찮아요 저 혼자 다녀올게요! 그러는게 좋을 것 같아요."

"알겠어요 루크님..엘레니아님에게 안부 전해줘요."

"네"

이내 둘을 지나쳐 걸음을 옮기려 할 때였다. 뒤에서부터 라이아의 목소리가 들려 오자 루크가 뒤를 돌아보자 막 방에서 나오는 라이아의 모습이 보였다. 아무래도 여전히 근심이 가시지 않은 라이아가 방안에서 안절부절못하다 다시 루크에게 가보려 한 듯했다.

"어디 가니?"

라이아가 놀란 얼굴로 묻자 뒤이어 안느란테와 에이리스가 다가와 루크 대신 말했다.

"지아란가에 다녀오겠다고 하네요."

"지아란?... 그렇구나, 엘레니아를 생각하지 못했구나..좋은 생각이야."

루크의 생각을 읽은 것일까 라이아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자 루크가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엘레니아도 엄연히 이젠 아스란가의 가족과 다름이 없는 사람이기에 라이아가 흔쾌히 허락했다. 그러면서도 루크에 대한 걱정이 있던 라이아가 말을 한마디 붙였다.

"위험할지도 모르니 꼭 제롬과 같이 가렴."

"네 그럴게요."

"빨리 돌아와야 해!"

루크가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고개를 끄덕이자 뒤이어 루시가 말을 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웃어 보이며 답했다.

"알겠어요! 걱정말아요. 루시."

"알겠어.."

루시의 표정은 여전히 불만이 가득해 보였다. 이 저택에 들어오면 계속 루크와 같이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것도 참으로 쉽지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지금 상황이 이러하니 악녀가 아닌 루시는 잠시 불만을 가라 앉여야 함을 잘 알고 있었다.

"다녀올게요! 아 레이니 누나는 어디 있나요?"

"아마 연무장에서 레오니르님과 같이 있을 거야"

"비가 오는데도요?"

"언제 레이니가 날씨를 가렸니?"

"하하.."

라이아의 대답에 루크가 그녀의 말에 동의하며 멋쩍게 웃어 보였다. 그러고는 급히 저택 뒤에 마련되어있는 연무장으로 향했다.

연무장으로 나온 루크는 쌀쌀한 바람이 한차례 루크를 훑어 지나감에 몸을 흠칫 떨어야 했다. 게다가 아까보다 더 거세진 빗방울이 꽤나 거슬렸음에도 연무장 가운데 연실 검을 휘두르는 레이니가 보였다.

".."

몇 번이나 빗방울을 가르고 지나가는 검이 허공을 번뜩이며 공간을 수놓아간다. 그 검의 빠르기는 언제나 눈으로 쫓기 힘들 정도로 빨랐고 검날에도 절로 힘이 느껴질 정도로 패기가 느껴졌다. 그럼에도 무언가 부족한지 레이니는 계속해서 자신을 다그치며 검을 휘두르고 있는 모습이 보이자 결국 루크는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그녀의 검술 연습에 방해가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마 나중에 자신을 보지도 않고 나갔다 온 루크에게 한 소리 할테지만 그땐 그때 알아서 넘길 생각에 루크가 멋쩍게 웃어 보이며 제롬의 숙소로 향했다.

"도련님!"

"반가워 제롬 오랜만이네? 나 없이 저택을 지키는데 지루하지 않았어?"

"그건 별거 아닙니다만.. 그동안 너무 고생하셨습니다.. 많이 초췌해지셨군요.."

제롬의 물음에 루크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이 정도는 별거 아니야.. 이제부터가 진짜 고생이지 아무튼 부탁 좀 할게 있어."

"부탁입니까?"

"응!"

루크가 미소를 그리며 대답하자 제롬은 그 부탁을 듣지 않음에도 흔쾌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이내 한 대의 마차가 아스란 가문을 빠져나와 지아란가로 향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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