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루크 아스란 전기-291화 (291/412)

【291회. 내가 할 수 있는 것】

"우리가 너무 늦은 것일까? 아니면 이것 또한 운명인가?"

사내가 다시 하늘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중얼거리자 중년 남성은 여전히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 해 아리송한 사내를 바라만 볼 뿐이었다. 그러자 중년 남성이 다시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이곳에서 야영을 할 거네 머지않아 곧 손님이 올 테니."

"손님 말입니까?"

"그렇네 곧 우릴 이곳으로 부른 자가 올 테니 잠시 기다려보지 그자를 만나고 결정해도 늦지 않아."

"그자라니요 도대체 그자가 누굽니까?."

사내의 말에 궁금증이 돋았는지 중년의 남성이 고개를 갸웃하며 묻자 사내가 다시 말을 이었다.

"있다네.. 라게르사와 함께 신의 전령을 맡은 여인이.."

"그럼 그분도.. 주술사 같은 분인가 보군요."

"아마도."

사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침묵했다. 중년 남성은 더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으나 저만치 누군가 다가오고 있음을 발견하고 이내 말머리를 돌렸다.

"그럼 알겠습니다. 전사들에게 야영 준비를 하라 하겠습니다."

"응."

사내의 말을 들은 중년 남성은 이내 고개를 숙이며 전사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말 머리를 돌려 달려갔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며 다시 사내가 몸을 돌려 넓게 펼쳐진 들판과 스산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다시 입을 열었다.

"과연 운명대로 세상이 무너질 것인가?"

"그걸 막으려 우리가 온 것이지요."

사내의 말이 끝나자 언제 다가왔는지 한 여인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사내의 귓가에 닿았다. 그러자 사내의 얼굴에 자그마한 미소가 서렸다. 그녀 역시 사내와 같이 머리를 길게 늘어뜨려 뒤로 묶은 머리에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진 여인이었다. 평범한 여인들과는 달리 말 그대로 여전사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그녀는 다른 사내들과 별반 다르지 않을 두꺼운 가죽으로 만든 갑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녀의 가슴에도 늑대와 흰 뱀이 그려져 있어 같은 편이란 것을 말해 준다. 그런 그녀의 뒤에는 거대한 대검이 메어져 있는 것이 가장 인상 깊었다.

"그래, 맞아 리게르사. 우린 그것을 막으러 여태 기다린 거지.."

"곧 신물들이 모일 거예요 라그나르..그대에게 있는 켄서와 타우르스의 힘이 더 큰 빛을 내고 있는 게 보여요""

리게르사라 불린 여인의 말에 사내 라그나르는 이내 자신의 무기인 켄서를 바라봤다. 그 역시 신물로서 자아를 가지진 않았지만 리게르사의 말에 반응하며 빛을 내고 있었고 사내의 몸 안에 있는 타우루스 역시 반응하는지 온몸이 투기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곧 다른 신물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에 기쁜 것이더냐?"

라그나르가 자신의 몸에 있는 타우루스와 손목에 달린 켄서를 보며 중얼거리다 이내 고개를 틀어 다시 하늘을 바라봤다. 그러자 한차례 차가운 미풍이 라게르사와 라그나르 사이를 지나쳤다.

"라그나르, 바람이 차요 이제 그만 돌아가지요. 임시 막사를 다 만들었나 보네요"

"그래."

라게르사라고 불린 여인이 뒤편에 전사들을 보며 말하자 라그나르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곤 그녀의 옆에 서며 천천히 그녀의 허리에 자신의 손을 감았다. 그러자 라게르사가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라그나르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큰 싸움이 벌어질 거에요.. 절대 죽지 말아요."

"그러한 미래는 볼 수가 없나 보지?"

라그나르의 말에 라게르사가 잠시 멈춰 서 라그나르를 바라봤다.

"그러한 미래는 보고 싶지 않은걸요."

"... 그래.. 걱정하지 마 라게르사. 죽지 않아 난."

이내 둘은 다시 걸음을 옮겨 그 들판을 내려갔다. 이내 훈련이 잘되어 있는 전사들은 이미 라게르사와 라그나르가 함께 할 임시 야영지를 만드는 것을 끝내고 곧 생사를 걸 전투가 코앞에 다가와 있음에도 미소를 잃지 않고 놀고먹고 떠드는 자신의 전사들을 보며 라그나르도 그들처럼 여유롭게 미소가 서리기 시작했다.

라게르사는 그러한 라그나르의 미소가 마음에 들었는지 이내 라그나르의 손을 이끌고 아무도 없을 막사로 이끌어 갔다.

☆ ☆ ☆

"흠.. 여긴.."

나무로 대충 엮어 만든 침대 위 데미아스가 힘겹게 눈을 떴다. 야낙 과의 싸움에서 모든 힘을 소진해 쓰러진 뒤 기절해 있던 데미아스는 갑작스레 바뀐 풍경에 난감함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급히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아직 힘이 다 돌아오지 않았는지 몸을 일으키는 것만으로도 땀을 흘릴 정도로 힘들어 몸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여긴, 어디지..?"

데미아스가 인상을 썼다. 동시에 자신의 가슴에 통증이 느껴졌다. 야낙과의 싸움에서 당한 상처였으나 다행히도 누군가 제때 치료를 했는지 붕대로 정성스레 감 쌓여 있어 통증은 그리 심하지는 않았다.

그런 데미아스가 잠시 침을 성을 삼키고 주변을 돌아봤다. 나무로 대충 엮어 만들어 집이라고 하기엔 그렇고 움막 정도 되는 곳이었고 지붕은 대충 커다란 나뭇잎을 여러 번 엮어서 만든 듯 꽤나 허술해 금방이라도 무너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 정도였다. 게다가 벽처럼 보이는 곳은 나무가 제대로 엉키지 않아 도중도중 밖이 보일 정도로 커다란 구멍들 때문에 외풍이 심하게 들어오는 허술한 집이었다.

이러한 집은 데미아스로서는 처음 보는 집이었기에 다시 몸에 힘을 주어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문밖에서 들려오는 동물들 소리와 새들의 지저귐이 귀를 즐겁게 했다. 그런 그 사이로 고운 음색의 악기 소리가 비집고 들려오자 데미아스가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나 말고 누가 또 있나 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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