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루크 아스란 전기-300화 (300/412)

【300회. 내가 할 수 있는 것】

"그래도 루크의 품에 있으면 그 기억이 안 나서 좋아... 이대로 좀만 더 있어도 돼?"

"뭘 그런 걸 물어요? 당연히 괜찮아요."

"요즘 바쁘잖아?.. "

루시가 키득거리며 조금은 퉁명스럽게 대답하자 루크가 미안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루시의 이마에 짧게 입맞춤을 했다.

"미안해요.. "

"아냐.. 나중에 모든 게 끝나면 같이 오래 있어주면 되지."

"그래요.. 나중에 모든 일이 끝나면 둘이 여행이라도 떠날까요?"

"음... 그런 다른 사람들이 분명 질투할 거야."

"하하! 루시가 그런 걸 다 걱정했어요?"

루크의 말에 루시가 여전히 씁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 루크에겐 그들도 소중하잖아.."

"..."

"게다가 이젠 그들을 미워하기에는 너무 친해져 버린걸.."

"그래요?"

"응.. 그러니 나중에 모두다 함께 놀러가자. 그거면 충분해."

"루시 많이 컸네요?"

"이미 키는 루크랑 비슷할 껄?"

루크의 말에 루시가 콧방귀를 뀌며 대답하자 루크는 괜스레 겸연쩍어 자신의 볼을 긁적였다.

"하하.. 그렇네요."

"아무튼 약속이야.. 모두다 끝나면 같이 놀러 가기로!"

"예. 약속해요."

어느새 알아 가지고 왔는지 루시가 새끼손가락을 들어 보인다. 루크는 그런 루시의 행동에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그녀의 손가락에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걸어 보였다.

"좋아! 됐어. 약속한 거야?"

"예. 루시."

☆ ☆ ☆

메세츠데의 임시 병영이었다. 땅거미가 짙게 내려앉아 온통 어둠이 가독한 진영은 오랜만에 잠시 멈춰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꼭두각시가 병사들을 제외하고 몬스터들도 함께 하기에 잠시 쉬려는 듯 그들의 진군이 멈춰 섰다.

그런 쥐죽은 듯 고요한 메세츠데 진영에 클루드가 자신의 수하들을 막사로 부르자 금새 자이로스와 스완 그리고 메드니스가 막사에 들어 왔다. 그 외엔 영혼을 잃은 자들이기에 따로 부를 필요가 없었다.

"마리에테를 놓친 게 불만이더냐?"

막사로 들어온 자신의 수하를 보던 클루드가 여전히 인상을 구기고 있는 메드니스에게 시선이 닿았다.

무언가 불만이 가득한 듯 연실 인상을 찌푸리던 메드니스를 향해 클루드가 묻자 메드니스가 황급히 고개를 저어 보였다. 아무래도 클루드에게 단단히 겁을 집어먹은 듯이 그가 자신을 향해 묻자 절로 몸이 움츠러들며 눈을 내리깐다. 그런 메드니스의 모습에 클루드의 입가에 절로 미속 그려졌다.

"아, 아닙니다.. 폐하.."

폐하라는 소리가 조금은 낯설는지 그녀의 뒷말이 살짝 떨리며 음성이 흐려진다. 그럼에도 클루드는 괘념치 않은 듯 껄껄 웃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이미 표정에서 다 드러나는 구나? 걱정 마라! 어차피 마리에테와는 언젠가 필히 다시 만나게 될 터이니 그때 해결하면 그만이다. 그나저나 내가 찾는 것은 소식이 있더냐?"

클루드가 모두를 바라보며 말하자 자이로스가 이내 고개를 숙여 대답했다.

"그게.. 너무 막연한 정보라 찾기가 꽤 까다롭습니다."

"메드니스 너도 그러한가? 너에게는 그 단검을 주었는데."

클루드의 말에 메드니스도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

"하긴. .일찍 찾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 안에 있는 벨라일님께서 꽤나 다급해진 것 같으니 너희는 그 기억을 잃은 신을 찾는데 우선 적으로 생각하거라 특히 메드니스 알겠느냐? 그리고 자이로스와 스완도 수하를 시켜 계속 찾아보라 하고 말이지. 그 단검을 이용하면 조금은 찾기 수월할 것이다."

메드니스가 이내 자신의 품속에 있는 붉은빛이 도는 단검을 들어 보였다. 아직은 어떠한 떨림도 전해지지 않은 단검이지만 그냥 보는 것만 해도 불쾌한 기운이 풀풀 풍기는 단검에 메드니스의 표정이 꺼림칙하게 변해갔다. 그렇다고 클루드가 보는 앞에서 던져 버릴 수도 없어 다시 품속에 집어넣자 클루드가 만족스러운 웃음을 보이며 대답했다.

"그럼 이만 충분하다. 가보거라."

"예!"

자이로스를 비롯해 스완과 메드니스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뒤이어 클루드가 손짓했고 메드니스와 스완이 막사를 나선다. 이내 자이로스만 남게 되자 클루드가 말을 이었다.

"카시오의 행방은 찾았는가?"

"그게, 찾지 못했습니다. 아무래도 클루드님께서 명령하신 자를 찾는데 신경을 쓰고 이 많은 병사들도 거진 저 혼자 이끌기에 손이 부족해서..."

"하긴.. 내가 너무 모든 이들의 영혼을 빼앗아 이들을 통제할 사람이 부족했다. 이건 내 불찰이다. 너는 그럼 카시오를 찾는 걸 포기하거라 어차피 쓸모도 없는 년이었다."

"알겠습니다."

"야낙이 죽은 게 못내 아쉽군, 병사들을 이끌 자가 없어."

클루드가 혀를 차며 중얼거리자 자이로스가 조심스럽게 물어 왔다.

"마계인을 더 소환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자이로스의 말에 클루드가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야낙과 카시오를 보면 알지 않는가? 그 녀석들은 절대 누군가의 밑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그나마 야낙은 카시오 때문에 내 말을 들었지 그녀만 아니었으면 벌써 내게 반기를 들었을 거야. 그것이 마계인들의 족속이지 쓸데없이 자존심이 강해 목숨을 허투루 버린다. 야낙도 그러다 인간의 손에 죽게 된 것이 아니더냐."

"하긴.. 그렇습니다."

클루드의 불만 섞인 말에 자이로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야낙을 기억하자 자신의 명령을 듣지 않고 데미아스와 전투를 벌이다 결국 죽어버린 야낙이 떠올라 인상을 구겼다.

그렇기에 클루드가 왜 다시 마계인을 소환시키기를 꺼리는지 알 듯했다. 그들은 태생적으로 누군가의 밑에 들어가는 걸 몸서리 칠 정도로 싫어했으니 메드니스만이 조금은 특이한 케이스였고 보통 야낙과 비슷했다. 그렇기에 자이로스와 클루드는 그들이 별 도움도 안 된다는 것에 동의를 했다.

"아무튼 알겠다. 넌 이 군을 지휘하는 데 힘을 쓰거라 신의 몸을 가진 자를 찾는 것은 일단 메드니스에게 전담해야겠구나. 좋다 이만 가보거라. 슬슬 다시 진군을 할 것이다."

"예 폐하."

그 말을 뒤로 자이로스가 클루드의 막사를 나서자 혼자가 된 클루드가 이내 인상을 찌푸렸다. 계속해서 자신의 머릿속에서 울리는 벨리알의 음성은 이내 머리가 아파올 지경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러했다. 자신의 수하들과 대화를 하고 있을 때에도 벨리알의 음성은 한시라도 쉬지 않았다.

'어서 찾거라.. 찾아.. 만약 찾지 못하면 너의 영혼을 갉아먹어 연옥으로 끌고 갈지 어니 어서 찾으란 말이다.'

"예.. 알겠습니다 벨리알님.."

점점 벨리알의 인내심이 한계를 다다르기 시작한 듯하다. 그의 요구하는 빈도가 점차 잦아짐은 물론 점차 클루드의 몸에 피해를 주기 시작해서였다. 그런 벨리알의 행동에 클루드는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었으나 그렇다고 대놓고 싫어하는 내색을 보일 수도 없었다. 만약 그랬다간 벨리알이 언제고 자신의 영혼을 먹고 이 몸을 가로챌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괜스레 짜증이 밀려왔으나 최대한 자신의 감정을 숨기며 벨리알에게 나지막이 중얼거릴 뿐이었다.

"곧 찾겠습니다.. 벨리알님.."

'어서..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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