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3회. 내가 할 수 있는 것】
짙게 어둠이 내려앉은 밤이었다. 달 조차 구름에 가려 빛 한 점 새어 나오지 않은 밤에 커다란 저택의 앞, 흑색의 연기가 살랑이더니 이내 메드니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여전히 몸매를 강조하듯 딱 달라붙어 있는 가죽옷은 물론 등 뒤에 박쥐의 날개와 비슷한 커다란 날개를 펄럭이는 그녀의 모습은 호기심으로 가득한 채 자신의 앞 땅거미가 짙게 내려앉은 저택을 향하고 있었다.
"여기라는 거니?"
그녀의 눈이 반달 모양으로 변하며 이내 한 손에 들린 붉은빛을 연실 뿜어내며 부르르 떨고 있는 단검을 바라보자 그 공명이 커지기 시작하며 단검의 날이 저절로 저택을 가리키기 시작했다.
"참 신기한 물건이야. 신의 피를 마신 검이라.. 정말인가 보네?"
메드니스가 나지막이 중얼거리며 이내 단검을 품에 집어넣고는 다시 한번 고개를 들어 저택을 바라봤다. 동시에 지어진 비릿한 웃음은 저택의 정문을 지키고 있는 병사들에게 향했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래 소란을 피울 필요는 없잖아?"
어차피 지금은 확인만 하려는 것이 아닌가? 굳이 귀찮게 소란을 피울 필요가 없었다는 판단이 서자 메드니스는 이내 조심스럽게 허공에 날아올라 저택의 드리워진 짙은 그림자에 몸을 숨긴다. 이내 짙게 드리워진 그림자를 따라 저택의 2층에 만들어진 창문에 스며든 메드니스는 품속에 있는 단검의 떨림이 더욱 거세지기 시작하자 확실히 이 안에 벨리알이 그토록 찾는 자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 여기라는 거지?"
창문을 타고 스며든 메드니스가 다시 나온 곳은 커다란 복도였다. 꽤나 늦은 시각이라 어느 곳에서도 인기척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은 복도에서 메드니스가 다시 품속에 집어넣었던 단검을 다시 들어 손바닥 위에 올려놓자 검신이 부르르 떨더니 기다란 복도에 끝을 가리킨다. 그런 단검을 따라 메드니스의 시선도 절로 단검이 가리키는 곳으로 향하며 이내 눈을 빛냈다.
"그래~ 그래.. 가보자고 호홋."
길게 이어진 저택 내부는 여러 개의 방이 있었고 양 끝과 중간에 1층으로 내려갈 수 있는 계단이 나 있는 저택이었다. 메드니스는 그러한 복도를 조심스럽게 소리를 죽여 걸으며 단검이 가리키는 곳을 따라 바삐 걸음을 옮겼다.
"벨리알의 말대로 확실히 찾기 간단한걸?"
그렇게 잘 풀리는 일에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는지 콧노래가 절로 나와 흥얼거리기 시작한 메드니스가 이내 하나의 방 문 앞에 멈춰 섰다. 단검의 빛이 더욱 붉어지며 검신의 떨림도 더욱 커져 오른다. 확실했다. 벨리알이 찾는 그녀가 이 안에 있음이
"여기니? 호홋!"
메드니스가 살며시 웃어 보이며 단검을 품에 넣고 조심스럽게 문을 열려고 할 때였다.
"문에서 손 떼시지?"
갑작스레 들리는 여인의 목소리를 뒤로 한기가 절로 느껴지는 하나의 쇠붙이가 메드니스의 어깨로부터 전해졌다. 메드니스는 이내 인상을 쓰며 뒤를 돌아보자 그녀의 뒤엔 언제 있었는지 붉은 머리칼의 여성이 기다란 칼을 자신의 목 언저리를 겨누는 모습이 보인다.
이내 메드니스가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기척을 못 느꼈는데? 흠.. 넌 누구니?"
"당연히 내가 할 말 아니야?! 이 집 사는 사람이지 누구긴 누구야? 너야말로 누구지? 인간으로 보이지 않고 그 추악한 날개를 보니 마계인 같은데."
"추악한 날개? 하! 보는 눈이 삐었구나? 이 날개가 얼마나 매력적인데!"
메드니스가 여인을 보며 빽하니 소리치자 여인은 헛웃음을 지어 보이며 무시하자 이내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그나저나 어떻게 내가 온 걸 알았지? 기척을 완전히 지웠을 텐데? 한낱 인간따위가?"
"그건 알 필요 없어요."
메드니스의 말에 뒤이어 또다른 목소리가 메드니스의 옆에 들려오자 메드니스가 고개를 틀어 바라봤다. 그러자 그 옆엔 익숙한 인상의 남자애와 푸른 색의 골렘이 같이 있었다. 그 애는 자신을 향해 이상한 쇠막대를 겨누고 있었는데 오히려 메드니스의 눈이 반가움을 띠기 시작했다.
"어? 너?"
"그래요.. 우리 봤었죠?"
메드니스의 얼굴이 미소가 가득 실리기 시작하며 검을 겨누고 있는 여인 레이니를 무시하며 루크에게 다가서려 하자 레이니의 검이 메드니스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럼에도 메드니스는 괘념치 않은 듯 루크를 보며 대답했다.
"이 귀여운 아이가 여기에 살았구나? 호호 인연인가 봐 우리?"
"악연이지요."
"악연이라니? 호홋 그런 섭섭한 말을 하니? 난 또 그 추운 곳에서 네가 죽었을거라 생각했는데 말이야."
메드니스의 말에 루크의 표정이 더욱 험상궂게 변해갔다. 분명 메드니스도 윈랜드를 함락시키는데 한몫했음이 분명했기에 절대로 호의적인 모습을 보일 수가 없었다. 그런 루크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메드니스의 표정은 여전히 반가움으로 물들어 있다.
"호호~ 루크라 했던가? 아직 예전에 내 제안은 남아 있는데 어때? 나와 같이 갈래? 그럼 목숨만은 살 수 있을지도 몰라? 이 누가 잘 대해 줄게 호홋!"
"닥쳐요.. 당신은 윈랜드에 원수지요 당신이야말로 이곳에서 살아 돌아갈 생각은 하지말아요."
"어머 무섭네~ 그런데 그 모습도 귀여워 헤헷~"
상기된 얼굴로 목소리의 톤까지 높아진 메드니스의 모습에 루크는 여전히 분노가 가득 찬 표정으로 대답했으나 메드니스가 신경쓰지 않아 보인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오히려 루크는 더욱 화가 치솟기 시작했다. 마치 윈랜드에 있었던 일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한 그녀의 모습이 신경에 거슬렸기 때문이었다.
뒤이어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저택을 울리더니 다른 이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동시에 한 밤중에 소란 때문에 결국 잠에서 깼는지 메드니스의 앞에 있던 문이 열리며 세리스와 루시의 모습이 보였다.
"누, 누구야... 이 사람은? 어, 언니.."
"루시! 세리스 내 뒤로 와!"
당황한 세리스의 목소리에 검을 겨누고 있던 레이니가 다급히 루시와 세리스를 향해 소리쳤다. 둘은 이내 무슨 상황인지도 모르는 체 그저 심각한 분위기 속에 그저 레이니의 말 대로 메드니스를 피해 레이니의 뒤에 자리하자 루크로 가 있던 메드니스의 시선이 차츰 루시에게 향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한 손에 들린 단검이 마구 울어대며 루시를 가리키자 메드니스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대답했다.
"호오~ 역시 거짓이 아니었구나? 네가..벨리알이 그토록 원하는 또 다른 신이구나? 거짓이 아니었어.."
의미심장한 메드니스의 말에 모두가 흠칫 놀라 했다.
"그 단검 내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