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0회. 내가 할 수 있는 것】
이내 모두를 보며 마리에테가 소리치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바삐 걸음을 옮겨갔다. 그렇게 점차 불빛과 가까워지려 할 때였다. 조용히 걸음을 옮기던 데미아스가 나지막이 모두를 향해 입을 열었다.
"누군가 뒤를 밟고 있네."
데미아스의 말에 지크문드가 인상을 쓰며 조심스럽게 마나를 일으켜 주변에 마나 필드라는 기척을 감지하는 마법을 사용하자 곧 몇몇 인간으로 추정되는 기척이 지크문드에 기감에도 잡히기 시작했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 마리에테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을 받았다.
"걱정하지 마세요. 요르문간드의 전사들일 테니까요!"
마리에테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이내 기척을 신경 쓰지 않고 걸음을 옮겨가려 할 때였다. 저만치 앞 서서히 다가오는 몇몇 무장을 한 여인들과 사내들이 이내 마리에테 일행을 포위하기 시작하자 일행의 발걸음이 자연스레 멈춰졌다.
"흠..."
그들은 각기 편안히 움직일 수 있는 가죽 갑옷을 주로 입고 있었는데 하나 더 똑같은 건, 그들의 가슴 부위엔 흰 뱀과 늑대의 문양이 있었다는 것이다. 데미아스는 그들의 문양을 보며 곧 이들이 요르문간드의 전사들이란 것을 알 수 있자 흥미로운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그들은 이내 각자의 무기를 들이밀며 물었다.
"그대들은 누구시오? 신분을 밝혀주시오."
중저음의 목소리를 내는 중년의 사내가 일행들을 포위한 요르문간드 전사들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한눈에 봐도 우락부락한 근육과 커다란 풍채를 보아하니 이들을 이끄는 대장의 역할을 맡은 사람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들으셨을 거에요. 저는 라게르사의 손님, 푸른 숲 속 달빛의 일족 마리에테 아르메아스 레예린이라 한답니다. 요르문간드의 전사님들"
"아! 그랬군!.. 그대가 마리에테님이셨군요. 라게르사와 라그나르님에게 들었습니다. 저는 이 정찰대를 이끄는 지하엘 하임이라 합니다."
자신을 지하엘 하임이라 소개한 사내가 이내 고개를 숙여 보이자 마리에테도 간단하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동시에 지하엘 하임이 손짓을 하자 무기를 겨누던 다른 전사들이 이내 무기를 거두기 시작했다.
"반가워요 지하엘 하임."
"저도 반갑습니다. 그나저나 뒤쪽 분들은?"
뒤이어 지하엘 하임이 뒤편을 가리키며 묻자 마리에테가 다급히 말을 이었다.
"이쪽 분은 저와 같이 온 데미아스 아스란님, 지크문드 지아란님 그리고 사무엘 아스란님과 나서스 지아란님이세요. 모두 저와 함께 온 아즈문에의 손님들이지요."
마리에테의 소개의 뒤에 있던 데미아스를 비롯해 다른 이들이 고개를 살짝 숙여 보이자 지크문드도 못마땅했으나 이내 고개를 숙여 보인다.
"호.. 들었습니다. 아즈문의 검성 데미아스님과 대마법사 지크문드님이라 정말 그분들입니까?"
"맞소."
지하엘 하임이 놀란 얼굴로 재차 묻자 지크문드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러자 지하엘 하임이 지크문드를 바라보며 살짝 고개를 숙이더니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윈랜드 사정을 들었습니다. 안타깝게 되었습니다. 요르문 간드도 도와주지 못해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답니다."
지하엘 하임의 말에 데미아스는 여전히 말없이 고개만 끄덕일 뿐이지만 영 탐탁지 않아 했던 지크문드는 이내 콧방귀를 뀌었다.
"흥! 동맹국으로서 원조를 요청했건 만 꼬리를 만 주제에... 됐소! 그런 사탕발림은 듣고 싶지 않소!"
지크문드의 비아냥거리는 말이 모두에게 닿았다. 이내 요르문 간드 전사들의 표정이 굳어지기 시작하자 마리에테도 난감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면서 뒤에 있는 사무엘과 나서스를 바라봤으나 그들도 지크문드의 말에 동의를 하는 듯 딱히 지크문드를 말릴 생각을 하지 않았으나 데미아스만이 난감한 표정으로 지크문드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 역시 이곳까지 와서 굳이 시비를 걸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았으나 이미 지크문드의 뼈있는 말이 선을 넘어버림에 꽤나 다황한 눈치다.
지크문드가 다시 코웃음을 치며 계속해서 거리낌 없이 비아냥거렸다.
"내 말이 틀린 건가? 그대들은 적들이 무서워 꼬랑지를 말고 도망친 게 아닌가?"
"요르문 간드의 전사들은 절대 도망치지 않습니다. 대마법사.."
지크문드의 말에 도끼를 든 한 사내가 소리쳤다. 이내 주변의 있던 다른 전사들이 맞다며 소리치자. 지크문드는 여전히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입만 살았군! 그렇지 않다면 왜 윈랜드로 오지 않은 겐가? 도대체 그 기다림이 무엇 때문인가?"
지크문드의 말에 지하엘 하임이 잔뜩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어차피 질 수밖에 없는 싸움 괜히 우리 전사들의 피를 외간 땅에 적실 필요가 없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있다 해도 그들을 막을 수 없소. 그러한 건 당신들이 더 잘 알지 않소?"
"어떻게 알겠나? 싸워보지도 않고 도망친 녀석들이 있는데. 도대체 그 기다림은 무엇을 위한 기다림이길래 오지 않았는가?"
"그, 그건..."
"그만 하세요 지하엘 하임, 그리고 지크문드님."
그때였다. 지크문드와 지하엘 하임의 시선이 서로 겹치며 불꽃을 뿜어내고 있을 때마침 그들의 뒤에서 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그녀 역시 갑옷에 흰 뱀과 늑대의 문양이 그려져 있음은 물론 나름 균형 잡힌 근육질 몸매에 등에 찬 대검이 인상적인 여성이었다. 그런 여성의 출현에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쏠렸고 뒤이어 마리에테의 표정이 반가움으로 물들어갔다.
"라게르사!"
"반가워요. 마리에테 좀 늦었군요."
"하하.."
라게르사의 말에 마리에테가 조금은 쑥스러움을 보였으나 지크문드가 아닌 사무엘이 잔뜩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으로 소리쳤다.
"우리 말이 틀렸나? 전쟁은 어차피 죽고 죽이는 싸움이다. 전우가 죽을 수도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싸우기도 전에 괜한 피를 흘리기 싫어 참전하지 않았다고? 참으로 겁쟁이 같은 정신이군. 여기에 괜히 왔어. 요르문 간드의 전사들이 이런 겁쟁이들이라니 말이야."
사무엘이 낮게 이를 갈며 소리치자. 잠시 밝아진 분위기가 다시 험악해진다. 동시에 요르문 간드 전사들의 진득한 살기가 사무엘에게 향하자 사무엘이 낮게 이를 갈며 옆구리에 찬 검을 뽑아들려 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저희가 간다 해도 마흐무드의 성기사나 아즈문의 기사들처럼 윈랜드 땅의 피를 적실 게 분명한 것은 사실이지요."
"전사라는 녀석들이 죽음이 두려워 꼬리를 마는가? 너희 같은 겁쟁이들에 도움은 필요 없다. 어차피 또 위기가 찾아오면 겁을 먹고 도망칠 게 뻔하니! 이렇게 된 거 차라리 메세츠데의 붙거라 겁쟁이들아!"
사무엘이 비아냥이 이내 도를 넘어섰다. 그럼에 더는 참을 수 없는 몇몇 요르문간드 전사들이 병장기를 뽑아든다. 동시에 사무엘도 검을 뽑아들었고 지크문드도 마나를 일깨우기 시작하자 데미아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