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1회. 내가 할 수 있는 것】
"모두 무기를 거둬라."
그런 그들 사이에서 또다시 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조금은 젊은 목소리에 한순간 평원을 가득 채우던 살기가 지워지며 요르문 간드의 전사들이 당연하다는 듯이 병장기를 거둬들이자 사무엘의 눈에 호기심이 서리기 시작했다. 뒤이어 목소리가 들린 곳에 시선을 돌리니 마치 게의 앞발과도 같은 클로를 장착한 한 사내가 천천히 그들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내가 요르문간드의 대족장 라그나르라 하오. 아즈문의 전사여."
"그대가 대족장인가? 내가 아는 사람이랑은 좀 다르군?"
자신을 대족장이라 소개한 라그나르를 보며 지크문드가 되묻자 라그나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자카르타! 그는 나에게 져 대족장 자리에 물러났소."
"그랬군.. 요르문 간드의 대족장의 자리는 힘에 의해 돌아간다고 하더니 그 말이 사실인가 보오?"
데미아스가 호기심이 가득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동시에 라그나르를 훑어 봤다. 저 특이하게 생긴 클로 안에 균형 잡힌 근육, 확연하게 드러나진 않지만 미세하게 풍겨오는 그의 기운은 그가 범상치 않음을 보여줬다.
그런 기운 속에 저 서글서글한 얼굴은 어떻게 보면 괴리감이 느껴졌다. 예전 요르문 간드의 대족장이었다. 자카르타를 보면 이 사내와는 완전히 정반대로 온통 근육으로 뒤덮이며 거대한 둔기를 소유한 사내였는데 그런 자크라트에 비해 한없이 왜소해 보이는 이 라그나르라는 사내가 대족장의 자리를 이어받았다는 것에 놀라움과 호기심을 감출 수 없었다.
데미아스 역시 상황이 이렇다 해도 천상 검을 가지고 살았기에 마음 한구석에 호승심이 일었으나 지금은 그게 중요 한게 아니었기에 급히 그 호승심을 숨겨 라그나르를 바라봤다.
"그렇소.. 그나저나 사무엘이라 했던가? 말이 좀 지나치시구려?"
"지나치다 했소? 난 당신들의 행동을 도통 이해할 수가 없소! 내 말에 틀린 게 있으면 가르쳐 주시오! 그대들은 적이 두려워 윈랜드로 오지 않은 것이 맞지 않소?! 그럴 거면 왜 동맹국을 자처했소?!"
사무엘의 말에 라그나르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다 이내 말을 이었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본다면 그대의 분노가 이해할 수 있지요. 솔직히 말하면 두렵다기보단 우리 용맹한 전사들의 피를 허투루 그곳에 피를 흘리게 하고 싶지 않았소. 그 싸움은 도저히 승산이 없는 싸움이기 때문이지요"
"하.. 그렇기에 승산이 있을 때까지 기다린 것이오? 무엇을 보고?"
뒤이어 지크문드가 대답했고 사무엘이 다시 소리쳤다.
"그때란게 도대체 언제요? 내 수천의 병사가 그 악마 놈의 손짓에 피를 토해내며 죽어 버렸소! 울부짖으며 말이오! 칼 한번 제대로 휘두르지 못하고 죽었단 말이오! 그대들은 이 허무함을 알고 있소? 이 허무함에서 오는 분노를 느껴는 보았소?!"
사무엘이 눈물을 뚝뚝 흘리며 소리쳤다. 그럼에 라그나르가 잠시 멈춰 서서 사무엘을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안타깝게 되었소.. 하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하다오. 이제 기다림은 끝났소. 우리 요르문 간드는 메세츠데의 씨를 말릴 것이오."
"그때란게 무엇이오."
"바로 내 안에 있는 힘이오."
사무엘의 말에 지크문드가 이내 갑옷을 하나하나 벗어 간다. 그렇게 상의를 탈의한 그가 등을 보이자 등에는 하나의 별자리가 문신으로 새겨져 있었는데 그 문신이 이내 빛을 뿜어내자 마리에테가 중얼거렸다.
"역시.. 타우루스가 깨어났군요! 2번째 별이자 2번째 신물!"
"그래요. 요르문 간드의 대족장만이 할 수 있는 12개의 시험을 그가 통과했어요. 전 족장인 자카르타는 통과하지 못한 시험이었지요.. 그렇기에 그가 타우르스를 받았지요."
마리에테의 말에 라게르사가 대답했다. 이내 라그나르가 다시 갑옷을 착용했다.
"그렇다면.. 확실하게 모든 신물이 깨어났군요! 이제 모두 모이기만 한다면!"
"그렇소. 마리에테. 이제야말로 우리가 숨죽여 기다리던 힘을 만개할 때요. 이제 반격의 시작이오."
자신감으로 똘똘 뭉쳐 있는 라그나르의 말에 마리에테가 상기 된 얼굴로 소리쳤다.
"어떠한 위기 속에서도 웅크리고 있다가 용맹함으로 길을 뚫어내는 타우루스의 힘... 그 용맹함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고맙소. 그나저나 언제까지 비를 맞을 생각들이오? 일단 야영지로 향하는게 좋겠소. 이야기는 거기서 더 자세히 나누는 게 좋겠소."
라그나르의 말에 마리에테가 고개를 끄덕이며 사무엘과 지크문드를 바라보자 데미아스가 나서서 사무엘의 등을 토닥이며 대답했다.
"일단. 화를 풀 거라.. 어차피 우린 그들의 도움이 필요해 괜히 분쟁을 일으키지 말자꾸나. 그들의 얘기도 더 들어보고 말이다."
"..."
데미아스의 말에 이내 사무엘이 불만이 가득한 시선이었으나 칼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그러자 라그나르가 다시 한번 미소를 지으며 모두를 보며 대답했다.
"다시 한번 환영하오 아즈문의 전사들이여.. 이제 우린 한배를 탄 전우가 되었소. 자 야영지에 따듯한 음식과 몸을 누일 천막이 있으니 어서 오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