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0회. 희망】
한편 클루드는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공격에 비릿한 웃음을 지어 보이고 있었다. 거진 반신과 같은 위치에 선 클루드로서는 그러한 공격이 한낱 어린애 장난으로 느껴질 정도였기에 이내 클루드가 손을 들어 보이며 마나를 일깨우자. 자신의 지척에 가까워진 활과 돌덩어리들이 허공에 멈춰 섰다.
마치 염력을 보는 것 같이 그대로 멈춰 선 화살과 거대한 돌덩어리들은 이내 클루드의 간단한 손짓 한 번에 오히려 다시 처음 날라온 곳으로 되돌아간다. 그럼에 성벽은 물론 투석기나 발리스타가 있는 곳이 산산이 부서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한 모습을 보던 클루드가 이내 자신의 옆에 서 있던 자이로스와 케이건을 향해 말했다.
"자이로스, 케이건! 더러운 장막이 사라졌다. 조금 전 말했다시피 성벽 위에 있는 지크라엘을 죽여 그의 목을 내 앞에 바치거라!"
클루드의 시선에 한창 성벽 위를 뛰어다니며 병사들의 사기를 끌어내는 지크라엘과 칼리아 후작을 보며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그런 그들의 모습이 눈에 거슬린 듯했다. 게다가 클루드는 현재 지크라엘과 칼리아 후작만 죽인다면 이 전쟁은 쉽게 끝날 것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도 했다. 지금 그들의 성벽 위에는 노인과 어린 청년들로 급조된 병사들임을 잘 알고 있었고 그들의 구심점이 되는 지크라엘과 칼리아만 없다면 완전히 무너져내린다는 것 역시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 자이로스와 케이건이 급히 몸을 날렸다. 더는 빛의 장막에 의해 방해받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에 그들의 움직임은 어떠한 거리낌도 없이 성벽에 가까워졌다.
한편 그런 자이로스의 모습이 지크라엘의 시선에 닿았다. 순간 지크라엘의 몸에 소름이 돋아나며 그로부터 느껴지는 살기 때문이기도 했다.
"... 자이로스!!"
파문이 이는 눈동자 속에 점차 가까워지는 자이로스의 검이 보인다. 순간 몸을 흠칫 떨던 지크라엘이 급히 검을 들어 자이로스의 검을 막아내자 불똥이 튀며 지크라엘이 몇 걸음 뒤로 물러나야 했다. 동시에 저릿한 손목에 감각이 지크라엘의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어찌 자네가 그렇게 변했는가?"
생기라고는 느껴지지 않은 몸은 물론, 그의 눈에는 흰자위가 없이 온통 검었다. 살아있는 사람이라곤 느껴지지 않아 기괴하기 짝이 없는 그의 모습은 책으로만 보았던 데스나이트 그대로의 모습을 하고 있어 지크라엘이 탄식을 토해내며 물었다.
"어찌.. 아즈문의 마지막 검인 자네가 이리도 변한 것이야!"
탄식이 섞인 지크라엘의 물음에 자이로스가 천천히 검을 들어 올려 검세를 취하며 대답했다.
"아직도 나에게 실망할 것이 남았나? 지크라엘? 그것참 놀랍군! 난 황성을 점령한 그날부터 더는 나에게 실망할 것이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말이지.."
비아냥 거리는 말투의 자이로스의 말에 지크라엘이 이내 헛웃음을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 그렇지, 자네 말이 맞네.. 이젠 아니야.. 자넨 이제 엄연한 적이 되었으니 말이야.. 자네가 무아란과 메세츠데를 등의 업고 황성을 습격하던 날, 그날! 제이서스를 죽인 그날이다! 그때부터 난 자네를 죽일 날만 손꼽았었네! 그래! 이젠 더이상 자네에게 실망할 것은 없네. 악마여!"
"큭큭..그렇다면 더는 말이 필요없지 않겠는가?"
지크라엘의 말에 자이로스가 비릿한 웃음을 지어 보인다.
"그래 필요가 없다네.. 그저 오늘 자네, 아니면 내가 죽는 날이 된다는 건 피할 수 없는 운명일 테니 말이야 ."
"당연할 것이다. 지크라엘! 여기서 아즈문이 밀리면 아즈문은 씨 하나 남지 않고 모든 생명들은 죽게 될 것이다. 여자들은 몬스터들의 씨받이가 될 것이며 살아남은 남자들은 클루드님의 노예가 될 것이지. 큭큭."
"미친 녀석.."
더이상 말은 필요치 않았다. 분노로 가득 찬 지크라엘이 땅을 박차고 나아가며 검을 휘두르자 자이로스가 여유롭게 지크라엘의 검을 받아간다. 동시에 자이로스의 검이 지크라엘의 빈틈을 노리고 들어오자 살짝 몸을 튼 지크라엘이 자이로스의 검을 피해 다시 반격한다.
잠깐 사이 순식간에 이어지는 공방은 둘의 실력을 비등하게 보였으나. 지크라엘의 표정은 그다지 여유가 없어 보인다. 그에 비해 자이로스의 표정은 언제나 여유로웠다.
"예전에 내가 아닐 것이다."
자이로스가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동시에 그의 검이 지크라엘의 목덜미를 노리며 다가왔고 지크라엘은 급히 검을 들어 그의 검을 막아냈다. 동시에 다시 피어오르는 불똥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의 검을 막고 있는 손이 저릿하며 부들부들 떨려왔다.
"큭큭..."
불쾌한 자이로스의 비웃음에 지크라엘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그러면서 차츰 그의 검에 몸이 밀리기 시작하자. 결국, 몸을 뒤로 빼며 그의 검을 피해냈다. 그러나 그것은 패착으로 가는 지름길이자 자이로스의 함정이었으니 지크라엘은 몸을 빼고 난 뒤 알 수 있었다.
어느새 기척도 없이 다가온 또 다른 사내가 지크라엘의 뒤를 점하며 다가온 것이었고 하필 지크라엘이 뒤로 몸을 날린 곳이 그가 서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비겁한!"
"이기면 그만 아닌가?"
한 자루의 배틀액스가 허공을 가르며 지크라엘의 등을 노리고 들어 왔다. 동시에 앞쪽에는 자이로스의 기다란 검이 지크라엘의 미간을 노리고 들어옴에 진퇴양난에 빠진 상황이었다. 그러한 상황 속에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재상! 제가 돕겠습니다!"
자신의 뒤를 노리고 온 사내, 케이건의 배틀액스와 비슷한 무기를 사용하는 브루클린 백작이 급히 케이건의 뒤를 노리고 들어온다. 그럼에 결국 지크라엘을 노리는 것을 포기한 케이건이 급히 땅을 굴러 브루클린 백작의 도끼를 피해냈다.
"고, 고맙소 브루클린 백작! 그리고 저 자를 좀 부탁하오!"
"맡겨만 주십시오!"
브루클린 백작이 이내 눈을 빛내며 케이건을 바라봤다. 자신과 비슷한 무기를 사용하는 사내를 만나서 그런 것인지 호승심이 절로 일어난다. 이내 그의 우락부락한 근육의 핏줄이 돋아나며 한껏 꼬나쥔 도끼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그래.. 오너라!"
둘의 도끼가 허공을 가른다. 동시에 부딪칠 때마다 성벽에 커다란 폭음을 만들어 내며 매캐한 연기가 몰아쳤다. 그럼에도 둘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연실 자신의 힘을 보이며 주변에 어떠한 이들도 다가오지를 못하게 했다.
이러한 그들을 보며 용호상박이라 칭해도 될 정도로 둘 다 한 치의 물러섬도 없었다. 어떠한 기교도 없이 그저 단순한 횡배기와 종배기만으로 도끼를 휘두르고 또 휘두를 뿐이었으나 그것도 잠시 한차례 비웃음을 짓던 케이건이 이내 진심으로 하려는지 기합성을 토해냈다. 동시에 그의 몸에서부터 피어오르는 흑색의 마기는 그의 힘을 더욱 끌어 올려 주자 막상막하의 싸움은 결국 차츰 승부가 갈리기 시작했다. 바로 브루클린 백작의 신형이 뒤로 밀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런... 또 그놈의 흑마법이더냐!!"
기합성을 토해내며 브루클린 백작이 신경질적으로 도끼를 휘둘렀다. 그러나 마기를 끌어 올린 케이건은 브루클린 백작의 도끼를 간단하게 막아내며 여유까지 부린다. 그럼에 오히려 공격을 가한 브루클린 백작의 손이 저릿하며 아려왔다. 아무래도 힘의 차이가 나기 시작한 모양이다.
"이런.."
브루클린 백작이 잔뜩 짜증 섞인 목소리로 탄식을 토해냈다. 자신이 가장 자신 있어 하는 힘에 밀린다는 것이 자존심이 상할뿐더러 믿기지 않은지 그의 눈가가 작은 떨림이 밀려왔고 이내 현실을 부정했다.
"있을 수 없다! 이 내가 힘에 밀리는 건 있을 수 없어! 난 지지 않는다!"
여전히 패기와 호기가 가득한 브루클린 백작이 계속해서 기합성을 터트리며 마구 도끼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마치 자신의 모든 힘을 쏟아 붓듯이 휘두르고 또 휘둘러 성벽에 먼지를 일게 했고 또다시 자욱한 연기가 피어올라 이내 브루클린 백작의 시야를 가릴 정도로 피어오르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