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루크 아스란 전기-321화 (321/412)

【321회. 희망】

"후우... 후우... 감히... 나에게 힘으로 상대하려고?! 만년은 이르다 이 말이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브루클린 백작이 소리쳤다. 그럼에 차츰 걷히기 시작하는 매캐한 연기 속, 그의 시야에 오롯이 서 있는 한 사내의 모습이 보였다. 이내 찌푸려지는 인상에 브루클린 백작의 근육이 다시 꿈틀거리며 굵은 핏줄이 섰다. 동시에 핏발이 서린 눈동자를 부릅뜨며 소리쳤다.

"아직도 서 있구나? 그래! 맷집 하나는 인정해주마.. 그래 이것도 맛 보거라 이 자식아!!"

그의 불같은 성격답게 여전히 서 있는 케이건의 모습에 짜증이 일었는지 브루클린의 백작의 배틀액스가 다시 번뜩였다. 연이어 그 커다란 배틀엑스가 케이건에게 내려처지려 할 때였다. 여태 표정의 변화가 없던 케이건의 모습에 비릿한 미소가 브루클린 백작의 눈에 들어오자. 왠지 모를 섬뜩함이 느껴진다. 그럼에 또 저 웃음에 자신이 겁을 집어먹은 것 같아 짜증이 밀려왔다.

"이잇!!! 죽어!!"

뒤이어 온 힘을 다해 내려친 자신의 도끼는 충분히 케이건의 몸을 일도양단했으리라 생각했다. 뒤이어 거대한 폭음과 함께 피어오르는 매캐한 연기 사이로 브루클린 백작의 눈이 바삐 움직이며 케이건을 찾았다. 그러나 꽤 진하게 피어오르는 연기에 시야가 방해받는지 케이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 그럼 그렇지! 하.. 하하.. 감히 내 힘을 견딜 자가 누가 있느냐 말이야.. 하.. 하하.."

헛웃음을 토해내며 브루클린 백작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동시에 차갑게 불어 오는 바람은 이내 연기를 밀어내 주며 브루클린 백작의 현실을 자각하게 해주었다.

무언가 연기 사이로 빛이 번뜩였다. 동시에 진하게 풍겨오는 살기 브루클린 백작의 모든 감각이 도망치라 소리치자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그러자 거대한 풍압을 일으킨 하나의 커다란 도끼가 브루클린 백작의 가슴을 살짝 스쳐 지나가며 운좋게 치명상을 면했다. 그러나 다 피하진 못했는지 작게 그려진 혈선에 브루클린 백작은 아픈 줄도 모르고 파문이 이는 눈으로 케이건을 바라봤다.

"어찌! 어째서 아직도 서 있냐 말이다!"

케이건의 도끼가 다시 한번 번뜩였다. 이내 급히 도끼를 들어 막아냈으나 반동으로 인해 브루클린 백작이 뒤로 물러났다. 연이어 이어지는 연격, 다시 한번 땅을 박찬 케이건은 눈으로 좇을 수도 없는 속도로 브루클린 백작의 앞에 나타나 도끼가 들린 팔 대신 반대쪽 팔꿈치로 명치를 가격 했다. 동시에 이어진 케이건의 뒤돌려차기에 배를 허용 당한 브루클린 백작은 이내 땅을 구르며 쓰러졌다.

"커헉.... 이, 상놈의 자식을!!"

이제야 고통이 밀려왔다. 동시에 내상까지 입었는지 피를 한 움큼 토해낸 브루클린 백작이 급히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케이건의 움직임이 더욱 빨랐다.

다시 한번 케이건은 브루클린 백작의 지척에 다가와 도끼를 하늘 높이 들어 올리고 있었다. 백작은 급히 도끼를 들어 그의 도끼를 막아내려 했으나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내 차츰 가까워지는 도끼, 브루클린 백작은 여기서 끝이라 생각하며 눈을 감았으나 이상하게도 몸에 어떠한 변화가 없었다. 뒤이어 들려오는 둔탁음과 함께 한 사내의 목소리가 브루클린 백작에게 닿자 백작이 조심스레 눈을 떴다. 그럼에 보이는 광경은 브루클린 백작이 놀람을 금치 못하겠다.

"..이게...무슨!"

저만치 날아가 있는 케이건과 자신의 옆에 서 있는 흰색의 갑옷에 붉은색의 장미가 수놓아진 갑옷을 입은 아가란 백작이 서 있었다. 그런 그의 손에는 기다란 레이피어가 들려 있었다. 붉은 핏방울을 뚝뚝 흘리고 있어서 흰 갑옷과 참으로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아, 아가란 백작! 자네가?"

한편 자이로스와 지크라엘의 싸움이었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공방은 끝이 날 줄 모르자 이내 지크라엘의 점차 숨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그런 그에 비해 자이로스의 검은 여전히 처음과 같이 묵직했고 빨랐으면 숨도 한치 흐트러짐 없는 정상이었음에 점차 자이로스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와 함께 승리의 기운이 느껴지고 있었다.

"슬슬 끝을 내야 하지 않겠느냐? 지크라엘!"

자이로스가 비릿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소리쳤다. 동시에 다시 검을 치켜드는 지크라엘의 모습이 보였다. 뒤이어 자이로스가 땅을 박차고 쇄도해 들어왔다.

다시 이어지는 공방전, 조금 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지크라엘은 계속해서 걸음을 뒤로 물리며 간신히 자이로스의 칼을 받아낼 뿐이었고 자이로스의 검은 어떠한 규칙도 없이 무차별적으로 틈이고 뭐고 사정없이 무작정 내려칠 뿐이란 것이었다.

그러한 근본 없는 검술에도 지크라엘은 자이로스의 어떠한 빈틈도 노릴 수가 없었다. 아니 애초에 그의 빈틈이 보이지도 않았다. 마치 그의 검이 지나가는 길 자체가 하나의 검술인 것처럼 지크라엘은 아무리 자이로스의 틈을 찾아보려 해도 보이지가 않아 낭패감이 들기 시작했다.

게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묵직해지는 자이로스의 검에 이제는 저릿하던 손의 감각이 마치 마비라도 된 것처럼 사라지기 시작하자 이대로 있다가 검을 놓칠 것만 같았다.

"크흑.."

"왜 그러느냐?! 아까 전 패기는 어디로 간 것이냐 지크라엘!"

비릿한 웃음소리가 지크라엘의 귀를 어지럽혔다. 동시에 점차 밀리다 못해 조금 전 클루드가 날려보낸 돌덩어리에 부서져 내린 성벽에 이르러자 더이상 뒷걸음질조차 치지 못할 상황에 다가왔다.

"끝이다 지크라엘!"

그러한 상황 속에 자이로스의 검이 먹이를 노리듯 지크라엘의 미간으로 향하려 할 때였다. 어느새 다가온 칼리아 후작이 자신의 애검을 들고 지크라엘의 옆에 서며 틈을 노려 찔러가자 헛바람을 삼킨 자이로스가 급히 뒤로 몸을 날려야만 했다.

"카, 칼리아 후작.. 병사들은?"

"아직 괜찮네 재상! 마흐무드의 성기사들이 잘 토닥이고 있어! 특히 쥬디스란 자가 꽤 노련해 한 시름 놓을 수 있었네."

"그, 그렇습니까? 그나저나 조심하는 게 좋을 겁니다. 자이로스가 데스나이트가 되어서 왔습니다."

지크라엘의 말에 칼리아 후작이 껄껄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에 칼리아 후작이 한발 앞을 나서자 자이로스의 표정이 한껏 구겨지며 신경질적으로 중얼거렸다.

"노인네.. 뭣 하러 아직까지 살아 있는가?"

"끌끌... 잘 지냈는가? 자이로스? 뭐.. 데스나이트가 된 걸 보니 잘 지내지는 못한 것 같은데 말이야?"

"...이 엿 같은.. 노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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