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2회. 희망】
자이로스가 이를 갈며 소리쳤다. 동시에 칼리아 후작이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어찌 한 번, 오랜만에 견식 해보자꾸나? 네 검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말이야? "
"이미 한계를 넘은 지 오래다 노인네."
"그래? 그거 기대되는구나? 제자야?"
칼리아 후작의 말에 자이로스가 몸을 날리며 소리쳤다.
"난 더이상 당신의 제자가 아니야!"
동시에 자이로스의 검이 칼리아 후작의 미간을 향해 찔러 들어오자 칼리아 후작은 이내 스텝을 밟으며 미끄러지듯 자이로스의 검을 피해 간다. 동시에 눈에 쫓을 새도 없이 그어진 칼리아 후작의 검에 자이로스의 가슴팍에 기다란 혈선이 그어졌다.
"뭣 하는 게냐? 자이로스?"
"이.. 잇! 이 노인네! 난 더 강해졌단 말이야! 당신같은 노인네 따위는 내 한주먹거리도 안된단 말이다!"
다시 신경질을 토해낸 자이로스가 검을 휘두르자 이번에도 여유롭게 그의 검을 자신의 검으로 받아내며 이내 힘을 흘려보냈다. 동시에 칼리아 후작의 왼 주먹이 자이로스의 명치를 가격 하자 그대로 나가떨어져 바닥에 곤두박질치는 자이로스였다.
그런 자이로스를 보며 칼리아 후작이 이내 얼굴이 찌푸려지며 혀를 찼다.
"쯧쯧.. 더 약해졌구나 자이로스."
".. 난... 난!! 더 강해졌단 말이야 이 망령!!"
자이로스가 소리친다. 동시에 뿜어져 나오는 흑마법의 힘 칼리아 후작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검을 들어 보였다.
"한 때는 천재 데미아스의 뒤를 이을 인제가 아닐까 싶었건만... 이리도 망가졌구나. 쯧쯧.."
"닥쳐라!! 노망난 노친네! 더는 그 뱀같은 혀로 내 귀를 더럽히지 마라!"
칼리아 후작을 만나고 나서부터 무언가 심경의 변화가 온 자이로스가 급히 검을 들고 땅을 박찼다. 그럼에 검게 변하기 시작하는 자이로스의 검엔 묵직한 힘이 느껴지자 지크라엘의 표정이 놀람과 함께 다급히 소리쳤다.
"칼리아 후작!"
여유롭던 칼리아 후작이 비릿한 웃음을 보였다. 동시에 그의 검이 이번엔 원을 그리듯하며 자이로스의 검을 감싸 안았고 이내 손목에 힘을 주며 자이로스의 검을 쳐내자. 그러자 알 수 없는 거대한 힘에 밀려난 자이로스의 눈이 파문이 일며 꽤나 당황한듯 보였다.
연이어 서서히 금이가기 시작한 자이로스의 검이 이내 완전히 부서져 내리자 자이로스가 칼리아 후작을 노려봤다.
"왜? 더 약해졌느냐 말이다? 자이로스?"
"나, 난..."
☆ ☆ ☆
한편 다른 쪽이었다. 케이건의 도끼가 아가란 백작의 미간을 노리고 들어오자. 아가란 백작이 살짝 몸을 틀며 마치 펜싱을 하는 자세가 되어 검을 찌른다. 뒤이어 케이건이 다시 검을 휘둘렀으나 이번에도 쉽게 도끼를 피하며 케이건의 빈틈에 레이피어를 찔러가자 어느새 케이건의 몸이 온통 피범벅으로 물들어 갔다.
"고작이게 다요? 브루클린 백작 정말 이런 하수에게 당할 뻔한 것이요? 쯧쯧, 내가 아무리 연회를 즐겼다 해도 검술은 놓치지 않았소만 매일을 훈련에 임한 브루클린 백작보단 내가 나은 것 같소?"
아가란 백작이 비아냥 섞인 목소리로 묻자 신경질적으로 몸을 일으킨 브루클린 백작이 이내 콧방귀를 뀌며 소리쳤다.
"흥! 그,그래.. 커,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그러네!"
"하? 그렇소?"
"그렇다니깐!"
뒤이어 브루클린 백작이 아가란의 옆에 서며 같이 케이건을 공격하자 케이건이 이내 힘이 부치는지 처음으로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동시에 빈틈이 생길 때마다 자신의 틈을 비집고 노려오는 아가란의 레이피어에 케이건의 창상은 점차 수를 더해가기 시작하며 이내 많은 피가 순식간에 빠져나가자 몸이 굼떠지기 시작했다.
"별거 아닌것 같소."
아가란 백작의 말에 브루클린 백작이 여전히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렇게 그들의 싸움이 승기를 잡아가고 있을 때 병사들만은 그렇지 않았다. 결국, 뚫려버린 브루클린 영지의 성문은 이내 메세츠데 병사들과 몬스터들로 짓밟혀 갔고 뒤이어 쉴새 없이 밀고들어오는 몬스터와 꼭두각시들의 모습이 지크라엘의 시야에 닿자 표정이 점차 굳어져 갔다.
"큭..큭... 너희들은 어차피 여기서 다 죽는다. 그리고 난 죽지 않아... 그분이 있으니까 말이야.."
온통 피범벅이 되어 땅에 처박혀 있는 자이로스가 중얼거렸다. 그럼에 칼리아 후작과 지크라엘이 자이로스를 바라보다 이내 밀고 들어오는 적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절망적이었다.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병사들의 얼굴은 피와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다행히도 성문 앞에 쥬디스도 성녀를 노리던 암살자를 이겨냈는지 이내 신물의 힘을 이끌어내 쏟아지듯 밀려오는 메세츠데 병사들을 간신히 막아내고 있었으나 그것도 잠시 뿐일 것이다.
곧 완전히 밀림이 분명했다.
"크워어어!!"
"끄악.. 살려줘!!"
"안 돼!! 살려줘!"
뒤이어 트롤들이 들어와 병사들을 도륙해나가기 시작했다. 거대한 몸뚱어리만큼 커다란 둔기를 들고 한 번씩 휘두를 때마다 병사들이 비명을 토해내며 나가떨어지자 지크라엘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렇게 점차 쌓여만 가는 아군들의 비명, 죽어가는 중에도 혹여라도 목소리가 닿을까. 연이어 찾고 있는 각자 부모님의 이름 한 자 한 자까지 지크라엘의 귓가에 닿았다.
"포기해라.. 지크라엘 큭큭.."
자이로스 간헐적으로 숨을 헐떡이며 소리했다. 지크라엘의 침울한 표정 속에 어떠한 희망도 느껴지지 않아 눈을 감았다. 이렇게 끝이 났다. 이렇게 아쉬움 속에 아즈문이 끝날 것이다. 이들은 이내 황성을 밀어 버리고 그들이 말한 대로 여성들은 치욕과 수치 속에 죽어나갈 것이며 남자들 역시 그들의 노예로서 생을 마감할 것이다. 조금이라도 반항을 했다간 잔인하게 죽어갈 테지..
"이럴 순 없어.."
몸이 부르르 떨리며 분노가 차올랐으나 어찌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럼에 계속해서 들려오는 병사들의 애절한 비명소리가 지크라엘의 귓가를 괴롭혔다.
"신이시여.. 라우엘이시여.. 제발, 저희에게 희망을 주소서..."
"큭큭.. 이제 와서 신을 찾는가? 지크라엘? 너희들의 신은 겁쟁이다. 절대 내려오지 않아.. 큭큭...그에비해 보아라 우리의 신을 말이야."
계속해서 비아냥이 섞인 자이로스의 말에 지크라엘은 더는 참지 못해 검을 꼬나쥐며 자이로스에게 다가서려 할 때였다. 아직 희망은 지크라엘을 비롯해 아즈문을 버리지 않았음을 알려주듯 또는 라우엘이 이들을 버리지 않았음을 보여주듯 거대한 폭음이 전장을 연속적으로 울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피어 오르는 불꽃의 버섯구름이 전장을 가득채우며 후끈한 열기를 뿜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