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9회. 희망】
루크가 천천히 눈을 떴다. 아무래도 고통에 못 이겨 잠시 정신을 잃었었나 보다. 이내 정신을 차린 루크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잠시 먹먹해진 눈을 비볐다. 그럼에 루크의 시야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마치 도화지 속에 온통 검은색 물감으로 색칠을 한 듯한 지독한 어둠뿐이었다. 혹시나 자신의 눈에 이상이 생긴 것이 아닌가 싶어 눈을 계속해서 비벼도 달리 짐이 없는 똑같은 공간 속에 루크의 표정이 의문을 띄며 서서히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여긴, 도대체 어디야? 설마 내가?"
혹시나 자신이 죽은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루크가 흠칫 놀라며 급히 이 완연한 어둠 속에서 몸을 일으키려 했다. 아니 일으키려고 생각을 했으나 이상하게 몸에는 어또떠한 감각이 없었다. 그렇기에 정말 자신이 죽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점차 확신에 가까워지고 있었따.
"그, 그럴 리가 없잖아... 내가 죽었다고?"
여전히 믿기지 않은지 루크가 현실을 부정했다. 그러나 점차 어둠은 짙어져만 가며 알 수 없는 외로움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저, 저기 누구 없어요?"
주위를 돌아보며 불안한 시선으로 루크가 소리쳤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을뿐더러 점차 자신의 목소리도 이 어둠 속에 묻혀 희미하게 사라졌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서서히 청력도 그 기능을 잃어가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생각을 한 것인지 직접 입으로 말 한 것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마치 모든 감각이 기능을 잃어가는 듯이 루크의 모든 것이 어둠 속에 동화되어 사라져 가는 듯한 감정이 들었다. 그럼에 마음속에서는 점차 후회와 아쉬움이 일기 시작했다.
이대로 죽기에는 너무나 억울했다. 아직 해보고 싶은 것도 많았고 해야만 할 일도 많았는데 이대로 죽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어떻게든 지금의 상황을 부정하며 점차 사라져만 가는 자신의 기억들을 떠올리려 애쓰기 시작했다.
"모두.."
그럼에 루크의 머릿속에 언제나 자신만을 바라보던 레이니를 시작해 엘레니아가 떠올랐고 뒤를 이어 안느란테와 에이리스, 그리고 로제스도 떠올랐다. 마지막으론 언제나 고귀한 모습의 황후인 루미에르와 루시까지 떠오르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가족들과 떠올랐다. 그러한 기억들을 어떻게든 잊혀지게 하지 않으려 루크는 계속해서 떠올리려 애를 썼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기억들은 점차 흐릿해져 갔다. 마치 이 어둠이 자신의 기억들을 집어삼키는 것처럼 그럼에 두려움이 일었고 그제야 이 어둠이 오기 전 마지막에 봤던 클루드의 비릿한 웃음이 떠올라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클루드.."
분노에 치를 떨었다. 이 모든 원흉은 클루드 때문이리라 생각했다. 그렇기에 죽기 싫었다. 어떻게든 클루드를 막아내야만 했기에 하지만 이내 현실이 다가왔다. 자신이 무엇을 하든 거진 신과 비슷한 힘을 가진 클루드를 이겨낼 수 있을지 어떠한 방법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기에 너무나 억울했다.
"보고싶어.."
그 억울함이 지나고 이제 그리움이 찾아들었다. 만약 자신이 죽은 것이라면 자신의 여인들을 마지막으로 보고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홀로 쓸쓸하게 어둠에 먹혀 사라지는 것은 싫었다.
그 순간 루크가 몸을 흠칫 떨었다. 기억이 나지 않았다. 자신의 여인들이 누구인지, 흐릿한 기억 속에 그들의 얼굴과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 안돼.."
어떻게든 기억을 되살리려 노력을 하려 했으나 계속해서 잊혀진다. 하나둘씩 그들과 나눈 추억은 물론 심지어 얼굴까지 기억나지 않자. 루크의 눈가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결국 클루드를 막지 못하고 자신의 여인들조차 잊어버린 체 끝난 것이라 생각이 들자 그리움과 아쉬움이 가득했다. 그러나 그러한 감정도 차츰 잊혀질 거라 생각했으나 이 억울함과 그리움은 너무나 지독하게 남아 루크를 괴롭혔다. 그럼에 눈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때였다.
'루크.'
"어..?"
완전히 사라진 것만 같은 자신의 청력이 돌아온 것인가?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굉장히 익숙한 목소리이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루크가 놀란 얼굴로 이리저리 둘러봤다. 그러나 여전한 암흑뿐이다. 혹시 환청이 들린 것이 아닌가 싶었으나. 모든 감각이 사라졌는데 환청이 들릴 수 있나 하는 의문이 생겨났다.
그때였다. 다시 들려오는 목소리 환청이 아님을 확신할 수 있었다.
'루크.. 두려워 하지 마!'
너무나 익숙한 목소리였다. 루크의 머릿속이 맹렬하게 돌아가며 그 목소리의 주인을 좇기 시작했다. 그럼에 흐릿한 기억 속의 안개에 한 실루엣이 떠올랐다. 그러나 그 실루엣은 짙은 안개에 가려져 보이지가 않았다.
"도대체.. 누구지.."
'날 또 잊은 거야?'
"또? 또라니... "
자신을 또 잃어버렸다고 외친 목소리에 루크는 여전히 흐릿한 실루엣만을 쫓고 있었다.
"그때처럼.. 날 또 잊은 거야?"
"그때라니!.. 도저히.. 떠오르지 않아..."
"넌 날 알고 있잖아. 우린 아직 이어져 있는 걸..."
"....이어져 있다고?"
여전히 아리송한 여인의 목소리에 루크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해갔다. 그럼에 점차 기억의 안개가 걷히기 시작했다. 흐릿한 실루엣도 점차 뚜렷해진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얼굴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도대체 넌..."
"기억해! 그때처럼. 기억하고 다시 내 이름을 불러줘.."
"...네 이름을?"
"응"
이내 무언가 따듯한 손길이 루크의 가슴부터 시작해 얼굴까지 훑어 지나가는 것 같았다. 이내 완전히 안개가 걷히자. 루크의 눈이 파르르 떨리며 파문이 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