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루크 아스란 전기-330화 (330/412)

【330회. 희망】

"루...시구나?"

'역시, 날 잊지 않았어 루크... 두려워 하지 마..'

"루시.. 미안해.. 또 내가 널 기억하지 못할 뻔 했어.."

'그렇지 않아. 지금에라도 다시 떠올렸으니까."

루시의 목소리에 루크가 오랜만에 미소를 그렸다. 이 지독한 어둠 속에 그녀의 목소리가 이렇게까지 위안이 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게다가 루시의 목소리로 점차 잊혀졌던 자신의 모든 기억들과 함께 감각들도 돌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아무래도 루시가 자신을 살린 것 같았다.

"루시.. 그런데 어디 있는 거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혹시 내가 눈이 먼 걸까?"

루크는 여전히 어둠뿐인 세상에 주위를 둘러보며 묻자 다시 루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지 않아, 여긴 벨리알이 만들어낸 공간이니까. 하지만 충분히 정신을 차리고 이겨내 보려 노력하면 별거 아니야.'

"그렇구나.. 난 또 내가 죽은 줄만 알았어.. 혹시 루시가 도와준거야?'

'당연하지.. 내가 아니면 누가 널 지켜주겠어? 아무도 널 죽이지 못해 헤헷.'

"그랬구나 고마워.. 그나저나 어디에 있는 거야 분명 집에 있을 텐데. "

루크가 계속해서 주위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그러나 여전히 루시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목소리만 들려 올 뿐이었다.

'걱정 하지 마 루크.. 그리고 조금만 참아.. 내가 지금 널 도와줄 테니까... 내가...'

"루시?... 하지만 넌.."

'걱정 하지 마. 루크, 내가 말했었잖아? 너와 난 연결이 되어 있다고. 네가 위험하다면.. 내가 널 지켜줄거야! 네가 그날 날 받아들였을 때, 그때 다짐했어.. 너의 수호신이 되어서라도 평생 널 지켜주겠다고.. 그러니 걱정 하지 마 그리고 지금, 널 지켜줄 게'

"무슨 소리야? 루시.. 넌 힘을.. 힘을 잃었잖아?"

'헤헤.. 잃은 게 아니야 잠시 벨리알의 눈을 피해 너의 몸에 내 기억과 힘을 봉인하고 있었는데 몰랐구나?'

"다, 당연히 몰랐지.."

'적을 속이려면 주변 사람도 같이 속이란 말이 있잖아? 헤헷.. 한 번 네가 위험할 때 나올 뻔도 했지만.. 헤헷."

"그, 무슨..혹시 사자도에서 일이야?"

'응.. 기억난다 그때 재밌었는데.. 아무튼! 그동안 고마웠어... 네 마음속에서 많은 것을 느꼈어. 네가 기억과 힘을 잃은 나에게 주었던 사랑..평생 간직할 거야.'

"왜 그래? 마치 떠나갈 사람처럼?...'

루크의 목소리가 나지막이 떨려왔다. 동시에 불안한 감정이 엄습해왔다.

'고마웠어.. 헤헷...'

"무슨 소리냐니까? 하나도 이해가 되지 않아.."

'괜찮아.. 처음이 힘드니깐. 하지만 시간이 지나다 보면 괜찮을 테지.. 꼭 살아야 해.. 그리고 라우엘을 찾아.. 그리고 네 손으로 직접 날 죽여줘..'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니까? 내가 널 죽이다니? 그럴 수 없는 거 너도 잘 알잖아?"

루크가 크게 소리쳤다. 그러나 돌아오는 목소리가 없었다. 다시 정적이 이는 공간 속에 루크가 무어라 소리치려 할 때였다.

'행복했어. .모두에게 말해줘.. 고맙고 사랑했다고.. 루크.'

"루시!!"

루크가 다시 루시를 외쳤을 때였다. 갑작스레 폭사 되는 한 줄기의 빛이 검게 물들인 공간을 차츰 빛으로 삼켜가기 시작했다. 뒤이어 그 빛 사이로 보이는 익숙한 여인의 뒷모습에 루크는 곧 그 여인이 루시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루시!!"

점차 강렬해지는 빛에 눈이 멀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루시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루크는 간신히 실눈을 떠 루시를 바라보며 그녀에게 다가가려 애를 썼다. 이내 루크가 루시에게 이르자 루시는 루크를 조심스럽게 끌어안았다. 그럼에 풍겨오는 익숙한 체향과 따스함, 루시가 확실했다.

"사랑해.."

"루시? 무슨 소리야.. 계속 떠나갈 사람처럼 그래? 그러지 마.. 싫어.."

루크의 말에 루시는 여전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포근함이 가득했던 루시의 몸이 루크에게서 떨어져 나갔다. 뒤이어 루시가 미련 없이 뒤를 돌자 그 앞에 언제부턴가 벨리알이 자리하고 있었다.

"크흐흐흐.. 그제야. .모습을 보이는구나? 내가 널 얼마나 찾았는지 모른다."

".."

루시를 보며 탐욕으로 일렁이는 눈동자를 한 벨리알의 모습이 보였다. 그럼에 루크의 표정에 두려움이 쌓이기 시작하자 루시가 이내 루크에게 나지막이 대답했다.

"걱정 마.."

"루, 루시.."

이내 벨리알의 비릿한 웃음소리가 들려오며 천천히 루시에게 가까워지려 하자 루크가 소리쳤다.

"도망쳐!! 루시!! 안 돼!! 도망쳐!!"

"...고마워...루크.. 그리고 라우엘... 도와줘야 해요 꼭..그리고 잘 알아야 해요, 그대를 위한 게 아니라 루크를 위해 희생을 하는 것이니까.."

왠지모를 아련하고 씁쓸해 보이는 루시의 표정이 루크에게 전해졌다. 그러자 조금씩 자리 잡던 불안감은 더욱 커지며 어떻게든 루시를 붙잡으려 몸을 움직이려 했으나 마치 솜에 물이라도 먹은 듯이 몸이 천근만근이다.

"루시!! 도망쳐!!"

"내 부탁.. 꼭 들어 줘 루크.."

"무슨 부탁! 난 모르겠어! 그러니 일단 도망쳐! 다시 얘기해! 그러니 제발 도망쳐!"

"...루크.."

루시가 나지막이 미소를 남겼다. 동시에 그녀의 몸이 다시 한번 빛이 폭사 됨에 벨리알이 잔뜩 인상을 구겼다. 이내 루시가 벨리알의 다가가자 벨리알은 자기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크흑.. 마,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려는 게냐!!"

"... 당신은 큰 오해를 하고 있어요. 벨리알..."

"무, 무슨 소리지!"

이글거리는 눈으로 벨리알이 소리쳤다. 동시에 주변에 거대한 불꽃이 일었으나 루시의 손가락을 한차례 튕기자 그 불꽃은 단번에 모습을 감췄다. 그럼에 처음으로 벨리알의 눈동자가 파문이 일며 다시 한번 뒷걸음질쳤다.

"당신이 진정 제힘을 받아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요? 그대는 신이 될 수 없어요."

"닥쳐라! 난 신과 같은 존재다! 내 힘이 곧 신의 힘이란 말이다!"

다시 한번 벨리알이 소리치며 이내 주변의 온도가 급격하게 낮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루시가 손가락을 튕김으로 모든 것을 정상으로 돌렸다.

"이.. 잇.. 신벌을 피해 힘을 잃은 거짓 신 따위가!!!"

"맞아요... 저는 태초의 신의 말씀을 어겼죠.. 하지만.. 그렇다고 제가 신의 힘을 박탈 당한 것은 아니에요.. 제가 당신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은 알지만. 하지만 당신도 날 이기지 못해요.."

"그,그게 무슨 소리냐 말이다!"

이내 루시의 신형이 완전히 벨리알에게 가까워졌다. 동시에 더욱 강렬한 빛을 뿜어내기 시작한 루시의 신형이 점차 흐릿해지며 벨리알에게 스며들기 시작했다.

"무, 무슨 짓을 하는 것이냐!! 크, 크흑!!"

동시에 벨리알이 몸을 비틀며 고통스러워 했다.

"예전처럼, 조용하게 자신의 이름을 속이며 구차하게 인간들을 속여 존재를 드러내지 않았더라면... 목숨은 보전했을지 모르나.. 당신은 이미 선을 넘었어요... 기대하세요... 이번 계기로 라우엘이 당신을 찾아올 테니까."

"다, 닥쳐라.. 무슨 짓을 하는 것이야!! 끄악.. .내, 내 몸속에서 나가!!! 끄아악."

이내 완전히 모습을 감춘 루시의 신형 오직 벨리알이 머리를 부여잡으며 고통에 찬 비명을 토해낼 뿐이었다. 그럴 때마다 주변에 불꽃이 일기도 했으며 때론 차갑게 얼음이 서리는 등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다. 동시에 세상을 어둡게 물들였던 어둠이 완전히 걷혔다.

루크의 시야에 다른 이들의 모습이 보였고. 이내 루시도 벨리알도 흔적조차 사라지며 모습을 감췄다.

이내 하늘에서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마치 눈물이 흐르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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