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루크 아스란 전기-335화 (335/412)

【335회. 12개의 신물】

"교황청 뒤편에 있는 지하에 라우엘님을 모시던 옛 제단이 있어요, 이제 너무 낡아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만 사용을 하는 제단이 있긴 한데, 아주 오래 전 교황님 때부터 지금까지 조심히 관리를 하는 곳이 있긴 있어요. 혹시.. 그곳의 제단을 말하는 건가요?"

"음 제 생각이 맞다면 맞을 거에요 크리스티나님! 그 제단은 마흐무드의 교황청이 생겨나기 전부터 존재했던 태초의 제단이자 라우엘님이 직접 만드신 제단! 마흐무드의 반석이 된 태초의 기둥이라고도 불렸어요, 엄청 오래전이지만 지금은 그저 볼품 없는 제단이기도 하죠. 호홋!"

"예.."

마리에테의 말에 크리스티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역시 그 제단이 소중함을 알고 라우엘님의 제단이란 것도 알았으나 마리에테가 이토록 찬양을 할 정도로 대단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마흐무드가 생겨난 이래로 많은 시간이 지났던 터라 성녀의 세대가 몇 대나 지났기에 가르침도 조금은 퇴색되었으리라 생각했다. 그럼에도 이리도 대단한 것을 크리스티나는 자신이 잘 알지 못했다는 것에 조금은 부끄러움이 일었는지 고개를 숙이며 얼굴을 붉히자 마리에테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모르는 것이 당연해요, 벌써 500년이 넘은 옛 제단이니까요."

"500년.... 그런 제단이 아직 사용이 가능하단 말인가?"

라그나르가 고개를 갸웃하며 묻자 크리스티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매번 신년이 되면 유지 보수를 하고 있어요. 그리고 지금도 그 제단은 특별한 날 잘 사용하고 있어요."

"그런가?"

라그나르의 말에 크리스티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매년 사제가 되려는 수련생들의 입단식에서 그 제단을 사용하긴 하거든요.. 그래서 라우엘님의 제단이라기보단 옛 제단 또는 시작의 제단이라 부르기도 해요... 그건 그렇고 지금도 그 제단을 이용하기엔 어떠한 문제도 없어요."

"그럼 다행이군... 그럼 지금 당장 가야 하지 않겠는가 마리에테? 이렇게 여유 부릴 시간이 없을 텐데?"

"그렇지요. 하지만 이제 막 이곳에 도착했는데 여러분은 괜찮으시겠어요?"

마리에테가 동의를 하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다른 이들에게 물었다. 아무래도 이제 막 아스란 가의 도착해 이야기를 나누느라 제대로 쉬질 못한 다른 이들의 얼굴이 꽤나 피곤함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듯 하다.

그때 마침 가만히 그들의 얘기를 들으며 표정을 굳히고 있던 루크가 마리에테에게 물었다.

"루시는... 어떻게 된 거죠?"

모두의 시선이 루크에게 쏠리다 다시 마리에테에게 향했다. 그럼에 마리에테도 씁쓸한 표정을 지어 보이고는 애꿎은 찾잔을 어루어 만지면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루시페리아... 그녀는 지금 클루드의 몸에 들어가 벨리알과 클루드 그리고 루시페리아 이렇게 셋이서 서로 싸우고 있을 거에요. 그녀는 자신을 희생해서 우리에게 시간을 주었지요. 그리고 계기를 만들어주었고요."

"... 꼭 이러한 방법 밖에 없었나요? 꼭 루시가 희생을 해야 만 했나요?"

루크가 다시 물었다. 이내 마리에테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맞아요, 조금 전 말했던 것처럼, 라우엘님께서 직접 이 세상에 현신해 벨리알을 처단하기 위해서는 루시의 희생이 필요했어요. 그리고 운명대로, 어쩌면 예전부터 예견 되어있는 라우엘님의 계획대로 벨리알은 루시의 영혼을 자신의 몸 안에 들였지요."

"... 루시가 너무 불쌍하잖아.. 평생을 외로움에 떨다가 그제야 가족이 생겼는데..."

".."

루크가 나지막이 중얼거리자 마리에테도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어찌 보면 루시는 잔인한 운명에 의한 희생양의 불과했기에 루크의 마음이 더욱 쓰라리며 루시가 유난히도 보고 싶었다.

동시에 마지막으로 루시와의 대화가 떠올랐다. 꼭 자신을 죽여달라는 그녀의 말은 무슨 뜻이었을까 싶었으나 그때의 루시의 표정이 떠올라 또다시 울컥 눈물이 나오려 했다.

"루크.. 괜찮아?"

그러자 루크의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레이니가 루크의 어깨에 손을 얹자. 루크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말로는 괜찮다고 했으나 표정은 다 숨길 수가 없었기에 레이니 역시 걱정스런 표정을 지울 수는 없었다. 그녀 역시 루시가 걱정되긴 매한가지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 루크의 모습을 본 라그나르가 말을 이었다.

"어쨌든 그 루시라는자로 인해 벨리알의 힘이 약해졌다는 거 아니겠는가? 그러니 지금이 그 벨리알을 죽이기 위한 가장 최고의 시기가 되었고, 그렇기에 연합군이 지금 북벌을 하기 위해 준비 중이기도 하고 말이야."

라그나르의 말에 루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루시 덕분이죠.."

"그렇다면 그녀의 희생을 헛되이 만들어선 안 되겠지."

"그런데.. 루시와 저가 헤어지기 전에 루시가 그런 말을 했어요. 꼭 자신을 죽여야 한다고요. 그게 무슨 말이죠?"

루크가 의문을 표하며 묻자 마리에테의 표정이 처음으로 구겨졌다. 이내 무언가 곰곰이 생각을 하는 것 같아 잠시 그녀를 기다려주자 얼마 지나지 않아 마리에테가 다시 말을 이었다.

"...루시페리아.. 루크님도 잘 아시죠? 그녀는 애초에 신이에요 육체란 것을 가지고 있지 않지요, 그리고 지금! 클루드의 몸에서 벨리알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는 건 모두가 알 거에요. 허나 벨리알 역시 루시페리아처럼 육체가 없는 존재... 만약... 제 생각이 맞다면 루시는 벨리알과 완전히 동화가 되어 죽음을 택하리라 생각되는군요. 그래야 벨리알이 클루드의 몸을 버리고 도망치지 못할 테니까요.. 제 생각일 뿐이지만 루시는 벨리알이 도망치지 못하게 가둬두는 역할을 할 테고 같이 죽음을 맞이하려는 생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렇다면! 루시도 죽게 된다는 건가요?! 그럴 순 없어요!"

라그나르가 무겁게 내려앉은 공기를 걷어내며 루크를 향해 묻자. 이내 루크도 고개를 끄덕였다. 루크 역시도 지금 당장 라우엘에게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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