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루크 아스란 전기-343화 (343/412)

【343회. 12개의 신물】

지크라엘을 선두로 한 연합군은 순탄하게 북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직 아즈문 제국의 영향권 내에 있어서 그런지 연합군의 가는 길은 마치 예전 평화롭던 시대를 거닐으는 것 처럼 순탄했으며 혹시나 했던 어떠한 기습에 의한 전투는 다행히도 한 차례도 발생하지 않았다.

그저 지나가다 몇 무리의 몬스터들을 만나 퇴치한 것이 다였으나 연합군의 규모도 규모인지라 힘이 약해진 몬스터들 마저 꼬리를 말고 도망치기 일 수 였다.

그렇게 연합군은 어느 때보다 더 가볍고 순탄해진 발걸음으로 행군의 속도를 높일 수 있었고 오늘 아침 그제야 아즈문의 국경지인 윈랜드를 넘어 메세츠데로 향하는 길목으로 빠르게 도달할 수 있었다.

그럼과 동시에 마치 기다렸다는 듯 서서히 강해지는 추위는 물론 새하얀 눈이 쌓여 있는 황폐한 땅이라는 이름이 붙인 평원에 도달하자 점차 병사들의 행군의속도가 눈에 띠게 느려짐이 보였고 몇몇 병사들은 동상에 걸리기라도 한 것인지 꽤 지쳐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결국 지크라엘은 잠시 병사들을 쉬게 해줄 겸 야영지를 피기로 계획하자 쉬기만을 기다리던 병사들은 금세 야영지를 만들며 천막을 펼쳤다.

"이제.. 메세츠데 지배력일세, 아무리 벨리알이 힘을 잃었다고 해도 이제부터 조심해야 해."

야영지 내에 피어오른 모닥불을 바라본 데미아스가 옆에 앉아있는 지크라엘에게 말했다. 그럼에 지크라엘이 잠시 고개를 끄덕이고는 대답했다.

"그래야지.. 그나저나 지금쯤, 그들은 마흐무드에 입성했겠군?"

"그러지 않았을까?... 그리 멀지 않으니까."

지크라엘의 말에 데미아스가 모닥불에 장작을 하나 더 집어넣으며 대답했다. 동시에 화르르 피어오르는 불꽃과 후끈한 열기가 몰아치는 추위를 잠시 따듯하게 데워주자 잠시 추위를 녹인 데미아스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저만치 앞 지평선 끝에 보이는 눈 덮인 설원에 닿았다.

새하얗고 웅장하게 자리한 설산 루미 산의 모습은 웅장하면서도 아름답게 보였으며 때론 보는이로 하여금 두렵게 만들기 충분했다. 아무래도 이 추위는 저 산에서 불어오는 것이 아닌가 싶어 절로 몸이 움츠려져 모닥불에 장작을 더 집어넣으며 말을 이었다.

"곳.. 이 지긋지긋한 전쟁도 끝이 날 게야.."

"..."

데미아스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럼에 지크라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더이상 전쟁은 지긋지긋했다. 특히 몸에 밴 피비린내는 물론 눈을 감고 잠들 때마다 들려오는 병사들의 비명소리가 매일 밤잠을 괴롭혔다. 특히 꿈을 꿀때마다 브루클린 영지에서 봤던 그 벨리알의 형상이 자꾸만 눈에 아른거려 시도 때도 없이 두려움이 일게 했고 결국 잠을 자다 몇 번이고 잠에서 깨야만 했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언제 밤잠을 편히 잤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그럼에 더이상 전쟁은 지긋지긋했다.

"이 전쟁이 끝나면 그대로 은퇴할 거라네... 더이상 버티기 힘들어."

부지깽이로 모닥불을 뒤적이던 데미아스가 지크라엘을 보며 말하자 지크라엘이 살짝 파문이 이는 눈으로 데미아스를 바라봤다. 검성이라는 칭호와 아즈문의 총사령관인 그가 은퇴를하게 된다면 아즈문의 국경의 힘은 약해질 게 불 보듯 뻔해 그의 은퇴를 막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그러나 차마 그에게 은퇴를 재고해 보란 말을 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렇다면.. 조금은 앞으로의 일이 걱정이 되는군.."

"하하 내가 없어서 걱정인가?"

"그렇지 않겠는가?..."

지크라엘이 조금은 섭섭한 얼굴로 대답하자 데미아스가 껄껄거리며 웃어 보였다.

"하지만... 이제 나도 늙었어..."

"그렇게 보이진 않네."

"끌끌.. 내가 좀 동안이긴 하지 허헛!"

데미아스의 농에 지크라엘의 입가에 자그마한 미소가 실렸다. 그러나 뒤이어 이어진 데미아스의 목소리는 꽤나 진중했다.

"지쳤다네... 내 몸과 마음이 지쳤어.. 매일, 병사들의 비명소리가 끊이질 않네.. 잠을 잘 수가 없어.. 더이상 이 검을 들 힘이 없네. 이제 내 마지막 불꽃이야. 더는 버티기 힘드네.."

"자네.."

그리 오래 전쟁을 격어보지 않은 지크라엘도 매일을 고통 속에 보냈는데 자신보다 오래 전쟁을 격었으며 윈랜드에선 참혹한 패배를 당했던 데미아스의 모습에 지크라엘은 어떠한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감히 상상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이 모든 것을 사무엘이나 나서스 둘 중 한 명에게 넘기고 집에 가서 좀 쉬어야지 않겠는가? 먼저 떠난 내 내자가 알면 한소리 할 거야.. 다 늙은 몸으로 왜 사서 고생을 하냐고 말이지.. 끌끌.."

"...멜리사...."

지크라엘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럼에 데미아스의 입가에 자그마한 미소가 서리며 이내 아련한 모습을 띠었다.

"더 지나면 멜리사의 웃는 얼굴도 기억이 나지 않을 것 같네."

"... 그는 아름다웠지... 착했고... 다정했고.."

"끌끌.. 아직도 미련을 못 버렸는 가?"

"흐흠.."

데미아스가 지크라엘을 슬쩍 흘겨보며 묻자 지크라엘이 괜스레 헛 기침을 했다.

"다 알고 있었네.. 그녀도 잘 알고 있었지 자네가 멜리사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을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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