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루크 아스란 전기-344화 (344/412)

【344회. 12개의 신물】

지크라엘의 표정에 씁쓸함과 함께 아련함이 묻어 나오며 잠시 모닥불을 뒤적이며 뜸을 들이다 이내 말을 이었다.

"그랬는가?.. 하지만 지금은 다 지난 옛일이지.."

"끌끌..그래.. 옛일이야.. 하지만 그때의 그 평화로움이 그립네."

"...나도 그립네.."

"그래서... 그만 하려 하네.. 모든 것을 끝내고 내 집으로 가, 편히 지내며 멜리사의 미소를 평생 간직하고 가고 싶네.. 더는 병사들의 절망 어린 목소리와 모습을 떠올리며 잠들고 싶지 않아."

"..."

데미아스는 진심이었다. 진심으로 지쳐있었고 오늘따라 더욱 늙어 보였다. 더는 총사령관의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럼에 지크라엘은 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데미아스를 바라봤다. 그러자 오늘 =따라 그의 얼굴에 늘어난 주름들이 더욱 깊어 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성도... 늙는구나."

"..큭큭.. .그렇지.. 세월 앞에 장사 없어. 그러는 자네도 많이 늙었네.. 언제까지 그리 살 텐가?"

"나에겐 아직 어린 황제가 있지 않은가?"

"... 그렇지... 자네에겐 이 전쟁이 끝나고도 해야 할 일이 남았지. 어찌 보면 전쟁보다 더 큰 일이 되겠구만..?"

데미아스가 씁쓸한 표정으로 묻자 지크라엘도 멋쩍은 미소를 그리며 괜스레 데미아스의 부지깽이를 뺏어 들어 모닥불을 뒤적였다. 그럼에 튀어 오르며 나풀거리는 불똥이 보이자 지크라엘의 시선이 불똥에 닿았다.

"루이서스는 잘 지내고 있는가?"

"황성에서 황후님과 같이 있다네 그래도 많이 성장했어.. 어찌나 대견스럽던지.. 이런 때일수록 굳건히 뒤에서 우리가 승리하고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며 자리를 지키겠다지 않겠는가?..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가끔가다 전 황제 제이서스의 모습이 떠오른다네.. 그렇기에... 난 아직 이 자리를 포기할 수가 없네.. 자네도 알지 않는가? 지금은 공공의 적이 생김으로 모두가 하나가 되었다지만... 또 언제고 오늘의 동료가 내일의 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이야..."

"그렇지. 맞네 자네의 말이.. 언제고 이익을 추구하는 자들이 인간들 아닌가..."

"허허! 자네도 그러는가?"

잠시 너털웃음을 보인 지크라엘이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데미아스에게 묻자 데미아스가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내가 어렸더라면?.. 나도 나 자신을 모르겠네. 내 가문을 위해... 내 가족을 위해 무슨 짓을 못할까?.."

"...."

금세 장난스런 표정을 지운 지크라엘이 데미아스를 바라보자 데미아스가 헛웃음을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끌끌.. 장난일세.. 내 한평생 아스란과 아즈문을 지키며 보냈는데 아즈문을 배반하려 할까? 난 무아란이 아닐세 지크라엘"

"... 놀라지 않았다라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허허.."

"자네는 언제나 놀리는 재미가 있었지."

"그거 아는가? 자네가 정색을 하고 말하면 그게 장난으로 안 보인다네.. 옛날부터 그랬어."

"끌끌..."

지크라엘이 불만이 가득 섞인 투정에 데미아스가 끌끌 거리며 웃어 보였다. 동시에 지크라엘의 시선이 다시 모닥불로 향했다.

"아무튼.. 아직 황제는 어려... 내가 있어야 해.. 그리고 그때가 되면 물러나야겠지.. "

"..."

지크라엘의 얼굴에 오랜만에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아무래도 어린 황제가 대견하고 자랑스러운 듯하다. 결혼을 하지 못해 손자가 없던 지크라엘은 황제 루이서스를 황제 그 이상인 손자로서도 생각하는 모양이다. 데미아스는 잠시 그런 지크라엘을 보며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아주 옛 기억이 떠올랐다. 멜리사를 두고 치고받고 싸우던 자신과 지크라엘의 모습에 아련한 웃음이 흘러나오자 지크라엘이 의아한 얼굴로 데미아스를 바라봤다. 그럼에 데미아스가 고개를 저어 보인다.

"거! 싱겁기는...그렇지! 그나저나 물어볼 것이 하나 있네."

"물어볼 거?"

모닥불을 뒤적이던 지크라엘이 데미아스에게 묻자 데미아스가 고개를 갸웃하며 대답했다.

"말해보게."

"황후님에 관한 이야기네"

"루미에르님 말인가?"

데미아스의 대답에 지크라엘이 모닥불을 뒤적이던 것을 그만두고 데미아스를 바라봤다. 그럼에 데미아스는 더 모르겠다는 듯이 의아한 얼굴이 되어 지크라엘을 바라보자 지크라엘이 잠시 인상을 쓰더니 말을 이었다.

"황후께서 루크와 다닐 때 무슨 일이 있었는가?"

"..그, 그게 무슨 소린가?"

"흠? 자네 갑자기 말을 더듬는걸?"

"하하.. 그게 무슨 소린가. 그냥 갑자기 뜬금없는 말을 물어봐서 당황해서 그런 거라네.."

생각지도 못한 지크라엘의 물음에 데미아스가 꽤나 당황했는지 멋쩍게 웃어 보이며 대답했으나 지크라엘의 표정은 더욱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동시에 가늘어진 눈으로 데미아스를 바라보며 물었따.

"내게 숨기는게 있는가?"

"수, 숨기는 것은 무슨?! 허헛! 너무 따듯한 곳에 앉아 있었더니 몸이 푹푹 쳐지는구먼. 난 그만 일어나 보겠네. 정 궁금하다면 지크문드에게 물어보세."

"... 자네!"

그 말을 뒤로 데미아스가 몸을 일으켰다. 동시에 루미에르의 모습이 떠올랐다. 황후가 다시 황궁으로 돌아왔을 때 어딘지 모르게 그녀의 모습이 꽤나 변했다고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애초에 밝고 마음이 강한 분이라 황제 제이서스의 부고에 더는 슬퍼하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했으나 그것보다 무언가 더 달라짐이 보였다. 예전보다 더 밝아졌다고 해야 할까? 마치 사랑을 하는 여인의 모습처럼 보일 때가 많았다.

특히 오랜만에 화장을 하며 자신을 치장하던 모습이나 평생 한 번 하지 않던 옷을 신경 쓰는 부분까지, 한평생 하지 않았던 자신을 꾸미는데 공을 들이는 모습이 지크라엘의 눈엔 신선하게 보였으면서도 의아함을 품게 했다.

그러면서도 옛 황후들이 새로운 부마를 들여올 때의 모습이 생각을 나게 했다. 물론 그녀의 밑엔 차기 황제가 이미 내정이 있어 반역을 하지 않는다면 부마가 되어 왕위를 얻지 못할 태지만 말이다. 그럼에 지크라엘은 의심스런 눈초리로 어느샌가 멀리 자신에게서 도망치는 데미아스를 보다 한편에 기다란 파이프 담배를 물고 있는 지크문드를 볼 수 있었다. 그럼에 지크라엘도 몸을 일으켰다.

"지크문드! 이 보게나!"

"오 - 지크라엘 무슨 일인가?"

파이프 담배를 머금다 한차례 메케한 연기를 뿜어내던 지크문드가 반가운 얼굴로 물었다. 그럼에 담배를 피우지 않은 지크라엘이 연기를 손으로 휘휘 내젓자 지크문드가 껄껄 웃으며 대답했다.

"미안하네 좀 독하지? 루드위그라는 요르문 간드 녀석들 중에 꽤 괜찮은 담뱃잎을 가지고 있어서 좀 빌렸다네 그나저나 무슨 일이길래 그리 연합군의 수장이란 체통을 지키지 못하고 헐레벌떡 달려오는 가?"

"아! 그렇지!.. 물어볼 것이 있네"

"물어볼 거?"

지크라엘의 말에 지크문드가 다시 한번 파이프 담배를 흡입하며 대답하자 연기가 코와 입가에 뿜어져 나왔으나 마법을 부렸는지 지크라엘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그래 물어볼 거."

"말해보게."

"혹시.. 황후님과 루크라는 아이가 같이 다닐 때 무슨 일이 있었는가? 황후께서 꽤 변한 것 같아 말이지."

"흐.. 흐흠.. 글쎄.. 난 잘 모르겠는데... 그나저나 변하다니?.."

데미아스와 같았다. 지크문드도 꽤나 당혹스런 얼굴을 보인다. 그럼에 지크라엘은 무엇이 있었다는 것을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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