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루크 아스란 전기-348화 (348/412)

【348회. 여신 라우엘】

"널 쫓지 말라니? 그럼 너의 만행을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으란 소리야?"

"그렇지! 바로 그 말이야! 만약 벨리알을 죽여서 평화가 찾아온다 해도 넌 날 다시 쫓을 거 아니야? 이번에 난 균열을 통해 내 진짜 몸으로 이곳에 소환된 거야. 이번에 죽으면 정말 죽게 될지도 몰라 난 죽기 싫거든 게다가 너의 주위엔 모든 신물들도 모여 있으니 분하지만 난 더이상 널 상대할 자신이 없어. 그러니 너에게 보증을 두는 거야! 너! 날 쫓지 마. 그게 내가 너에게 원하는 바야."

".... 도대체 이 중간 계에서 뭘 하려고?"

"적어도 너희들이 말하는 마계보다야 살기 좋은 곳이니깐 내 할 일을 내가 알아서 할 거고 더는 신경 쓰지 마! 그나저나 너희 시간 없지 않아? 이렇게 계속 꼬치꼬치 캐물을 거야? 괜히 벨리알이 힘을 찾으면 너나 나나 힘들어져 그러니 어서 대답이나 해! 들어줄 거야 말 거야? 무의미한 시간은 계속 흘러간다니까?"

"끄응.."

메드니스가 점차 저물어가려는 해를 가리키며 따지듯이 묻자 마리에테가 잠시 침을 성을 삼켰다. 아무래도 메드니스를 이 중간 계에 내버려둔다는 것이 큰 걱정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자 어서~ 마.리.에.테?"

그녀의 목소리가 다시 또 능글맞게 변했다. 그럼에 짜증이 솟구쳤으나 이내 길게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후.. 좋아! 하지만 한 가지! "

"응? 또 뭐?"

"당신이 예전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면 그때 다시 널 찾아갈 거야! 그리고 내가 어떻게 할지는 잘 알고 있지?"

"글쎄.. 뭐 생각은 해볼 게~ 후훗! 아무튼, 난 널 믿지 못하니까 언약을 맺어야지 않겠어? 넌 엘프니까. 좋아 세계수랑 라우엘님의 이름과 네 이름을 걸고 약속해!"

".. 그건 또 어떻게 알아와서... "

메드니스 답지 않게 용의주도하게 준비해왔는지 엘프가 중요한 약속을 할 때마다 하는 의식인 언약까지 입에 담아 말하자 마리에테의 인상이 있는 대로 찌푸려지며 신경질적으로 중얼거렸다.

"자 어서!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고!"

"어서요.. 그냥 해요 마리에테님!"

뒤이어 눈치 없이 안느란테가 대답하자 마리에테가 이내 한숨을 푹 내쉬고 대답했다.

"좋아... 엘프의 보금자리를 만들어주는 대지의 나무 세계수님과 이 세상 모든 이들에 빛을 나눠주신 라우엘님의 이름으로 나 마리에테 아르메아스 레예린은 지금부터 메드니스를 쫓지 않겠다고 모두에게 언약하겠습니다. 물론.. 그대가 내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다면 말이지"

"흠 솔직히 마지막 말은 조금 신경 쓰이긴 하지만 좋아! 그런대로 나쁘지 않아 자 받어~"

이것만으로도 나쁘지 않은지 메드니스의 표정에 웃음기가 다시 돋아나며 이내 품속에 숨겨 두었던 핏빛의 단검을 꺼내 마리에테 앞에 던져내자 마리에테가 재빠르게 그 단검을 받아들었다. 그러자 알 수 없는 섬뜩함이 단검을 타고 마리에테에게 전해지자 급히 자신의 작은 가방 속 안에 단검을 집어넣었다.

"그럼 내 할 일은 여기서 끝 그럼 이만 가볼게~ 아 그리고 루크~ 나중에 봐~ 이 향은 평생 남으니까~"

"예?"

"호홋~ 꼭 벨리알을 잡아 주길 바래~ "

루크를 향해 살짝 윙크를 하며 손에 들린 마계 향이 담긴 주머니를 흔들어 보인다. 그럼에 마나를 끌어 올리던 엘레니아가 결국 참지 못하고 메드니스에게 불꽃의 구를 날렸으나 그녀의 몸은 이미 연기로 뒤덮이며 모습을 감추어 버렸고 엘레니아의 불꽃의 구는 그저 애꿎은 허공만을 강타할 뿐이었다.

"에휴....."

한차례 후폭풍이 지난 듯 마리에테의 일행에 작은 정적이 일었다. 동시에 머리 띵하니 아파져 오는 것 같기도 했고 한숨이 끊이질 않자 크리스티나 나지막이 헛웃음을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루크님은 참으로 적에게도 인기가 많네요? 이게 다.. 라우엘님 뜻이겠지요...하, 하하.."

"설마요..."

루크가 차마 다른 여인들의 시선을 볼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자신을 째려보고 있으리라... 그럼에 한숨을 짓던 마리에테가 풋하고 웃어 보이고는 다시 발걸음을 옮겨 제단으로 향하는 길목 앞에 섰다.

"일단 라우엘님의 제단으로 향하죠."

"그건 그렇고.. 괜찮겠어요? 메드니스와 그런 약속을 해도?"

길목에 선 마리에테를 향해 루크가 조심스럽게 물어오자 마리에테게 나름 밝게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후훗! 이제 제가 메드니스를 죽이지는 못하겠지만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 죽일 수 있잖아요? 호홋! 걱정 말아요. 이미 여러 방법을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아.. 하하.. 역시.."

마치 메드니스가 제안할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이 비릿한 웃음을 지어 보이는 마리에테를 보며 그녀가 왜 그리 쉽게 메드니스에게 언약을 맺었는지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그녀의 머릿속에는 메드니스를 다시 죽일 방법을 여러 가지로 생각했음이 분명해 보였다.

그럼에 루크가 멋쩍게 웃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고 뒤에 있던 안느란테가 신이 나 소리쳤다.

"역시 저희 일족에 하이엘프님이세요!! 그래요! 메드니스 그년을 찢어 죽이는 거에요!"

"하..하."

나름 고귀하다라고 불리는 엘프의 입에서 험악한 단어가 나오는 것이 아무래도 인간들과 다를 바가 없어진 안느란테였다. 그럼에 다른 이들의 표정이 핼쑥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빨리 제단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했다.

"자.. 어서 가요.."

그럼에 크리스티나가 어색한 웃음을 보이며 종종걸음으로 가장 먼저 안으로 들어섰다.

☆ ☆ ☆

연합군의 행군은 점차 메세츠데에 가까워질수록 그 속도가 현저하게 느려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북쪽에 위치한 설산인 루미 산에 영향 때문인 듯하다.

설산인 루미 산에서 불어오는 한기는 점차 메세츠데로 가까워질수록 더욱 심해졌음은 물론 이제는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강한 눈보라가 거진 끊임없이 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럴 때마다 수북이 쌓이는 눈과 그 깊이에 평평한 평지를 행군하는 것보다 배는 더 힘들었기 때문에 그 속도는 더욱 느려지게 되었다.

그럼에 병사들은 아무리 내피를 두툼하게 입고 갑옷을 착용했더라도 뼛속까지 아려오는 한기는 쉽게 갑옷과 내피를 비집고 몸 안을 훑어지나가 온몸을 얼게 만들었고 내피와 갑옷으로 인해 무거워진 무게는 쌓인 눈을 더욱 걷기 힘들게 만들었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이러한 힘든 행군을 하는 동안 적군의 습격이 없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그래서일까? 주위는 그저 고요하며 소복소복 눈 내리는 소리만이 가득했고 어느새 황폐한 땅을 지나쳐 앙상한 나무들이 가득한 곳에 이르니 조금은 약해진 한파에 병사들의 긴장감도 조금씩이지만 어느정도 풀려갔다.

그러나 그러한 병사들과 달리 루드위그와 라게르사는 오히려 더욱 경계가 심해져 있었다.

"느낌이 좋지 않군.."

말을 타고 앞장서서 가던 요르문 간드의 부족장인 루드위그가 주변을 유심히 살폈다. 주변에는 앙상한 나무들만이 가득했는데 그 시야가 나무에 가려져 그 끝을 알 수가 없었다. 뒤이어 또 다른 말에 타고 있는 라게르사가 루드위그 옆에 서며 말했다.

"매복하기 너무 좋은 곳이에요... 과연 그들의 지휘체계가 무너졌다 해도... 이 좋은 매복장소를 놓치고 싶지 않을 게 분명해요.."

라게르사의 대답에 루드위그가 말을 잠시 멈추자. 그 뒤에 있는 병사들이 모두 멈춰 섰다. 그럼에 지크라엘이 루드위그와 라게르사에게 다가왔다.

"무슨 이유인가?"

"너무 고요해요... 아무리 겨울이라도 새들의 지저귐도 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아요.. 게다가 이 나무들 때문에 끝이 보이지 않아 시야가 짧아 우리에게 너무 불리합니다. 이곳은 아무래도 매복하기 너무 좋은 곳이에요. 조심해야 할 겁니다."

"흠... 확실히 그대 말대로 너무 고요하군..."

라게르사의 말에 지크라엘도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유심히 주위를 둘러보자. 멈춰 선 병사들이 몸을 덜덜 떨며 추위로 인한 불만을 조금씩 토해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불만을 제외하곤 오직 들려오는 소리라곤 눈이 내리는 소리와 말들의 투레질 하는 소리만이 가득 들려올 뿐이자 루드위그는 물론 지크라엘도 자신들이 너무 과하게 생각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라게르사만이 여전히 진중한 표정으로 사위를 경계하며 중얼거렸다.

"아무리.. 한겨울이라 해도 숲이 이렇게까지 조용하리라곤..."

"흠 하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도 없고요.. ...."

이내 루드위그가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대답하자 지크라엘이 너털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메세츠데에 가까워짐에 신경이 곤두서 있어 그럴지도 모릅니다. 자 다시 움직이도록 하지요"

"좋습니다."

그럼에 루드위그가 다시 발걸음을 옮겨 다시 행군이 시작되려 할 때였다.

"적이다!!"

지크라엘의 뒤편에 자리한 곳에서 유심히 한 곳을 바라보고 있던 데미아스가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그러면서 말의 옆구리 쪽에 찬 칼을 빼 들어 한 곳을 가리키자 그곳에는 앙상한 나무 사이로 활을 들어 보이며 연합군 쪽으로 시위를 메기고 있는 괴수의 모습이 보였다.

"오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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