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7회. 루미에르】
한참을 상념에 빠져 있던 루미에르의 귓가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럼에 화들짝 놀란 얼굴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의 앞에 잔뜩 뿔이 난 표정의 세이실이 보였다. 그런 그의 옆에는 루이서스가 여전히 불안한 눈빛을 빛내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자 자신이 또 상념에 빠졌음을 알 수 있었다.
"으,응.. 왜?"
루미에르가 조금은 얼떨떨한 얼굴로 묻자 순간 자신이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꼭 루크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면 왜 이렇게 바보가 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럼에 세이실이 한숨을 깊게 내쉬며 말했다.
"이것 봐요! 또! 도대체 누굴 생각하는 거에요? 도대체 누구길래 어머니를 이렇게 빠지게 만든 거에요?! 어머니의 넋을 잃게 한 장본인이 도대체 누구냐구요?!"
"하.. 하하.."
루미에르가 멋쩍게 웃어 보였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세이실이 동그라며 커다랗고 자신과 똑같이 황금색으로 빛나는 눈을 부릅뜨고는 루미에르를 바라보자 루미에르가 이내 웃음을 거두며 멋쩍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여 보였다.
"제 생각이 맞지요? 어머니 어머니는 지금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어요! 분명해요! 이제 확신이 들 정도예요. 이렇게 알게 된 이상 쉽게 넘어가지 않을 거에요 어머니!"
"...정말이에요?"
루이서스 역시 세이실의 말을 듣고 루미에르에게 묻자 루미에르가 괜스레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런 루미에르의 모습은 곧 세이실의 말에 맞다는 대답으로 보이게 했다.
"응..."
뒤이어 소심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하자 루이서스가 조금은 충격을 받은 얼굴이 되었고 세이실도 역시나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새, 새 아빠가 생기는 건에요?"
"어머니.. 이게 얼마나 큰일인지 아시죠?"
루이서스와 세이실이 걱정스러움이 가득한 얼굴로 동시에 물어봤다. 그럼에 루미에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족보가 이상하게 꼬일 거에요. 어머니가 새로운 남자를 들인다면 그가 황제의 자리를 노릴 수도 있잖아요."
"...그런.."
세이실의 말에 루이서스가 걱정어린 시선으로 루미에르를 바라보자 루미에르가 다급히 손사래를 치며 대답했다.
"그, 그건 말도 안 돼! 아즈문의 유일한 황제는 오직 루이서스 뿐이야. 그건 내가 확실하게 대답할 수 있어."
"..그렇기에 황후의 자리를 내려놓으시려는 거군요? "
"...."
이미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건지 눈치가 빠른 세이실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자 루미에르가 더는 할 말이 없어졌다. 어떠한 말을 꺼내도 그 자그마한 단서만으로도 세이실은 모든 것을 알아챌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런 세이실 앞에 한없이 움츠러든 자신은 무슨 변명을 꺼내도 어색하게 보일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럼에 세이실이 음유시인들이 만든 책들 중 추리 소설에 관한 책까지 모두 섭렵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제 말이 다 맞아요?"
루미에르가 멋쩍게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왜 인지 모르게 세이실과 루이서스에게 미안한 감정이 자리했다. 어떻게 보면 다자라지 않은 아이들을 내버려두고 자신의 사랑을 찾겠다는 말이 무책임하다고 생각할지도 몰랐다. 아니 그렇게 생각할 것이 분명했다. 그럼에 루미에르는 더더욱 아이들의 눈을 바라볼 수가 없어 고개가 절로 숙여지며 들어 올려지질 못했다.
"미안하구나.."
루미에르가 고개를 숙인 체 마치 죄인이 된 듯 부끄러워하며 사과를 해왔다. 그럼에 루이서스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 절 버리지 말아 주세요 어머니! 절 버리면 안 돼요!"
"그런 게 아니야.. 루이서스.. 난 절대 너희를 버리지 않아."
루이서스의 말에 당황한 루미에르가 급히 루이서스를 다독이며 말하자 세이실이 콧방귀를 뀌더니 루이서스에게 말했다.
"이 바보야! 널 버린다는 게 아니야!"
"...정말?"
여전히 울상으로 된 루이서스의 얼굴에 세이실이 한숨을 푹 내쉬고는 루이서스의 이마에 작은 꿀밤을 먹이며 대답했다.
"그래 이 바보야. 너와 나 그리고 자신의 사랑을 위해 황후의 자리에서 나온다는 소리야."
"우리를 위해서 누나?"
"그래 그렇게 공식적으로 황후 자리에서 나온다면 어머니가 그 누구와 이어져도 그 남자는 황제의 자리를 절대 노릴 수가 없어. 어머니는 황실 사람이 아니게 되니까. 그렇다고 우리의 어머니가 안 되는 건 아니야. 어머니가 우릴 버리지만 않으면 네가 보고 싶을 때 또는 어머니가 보고 싶을 때 언제든지 만날 수 있다는 거지. 물론 어머니가 황실 출입을 할 때 예전처럼 자유롭게 돌아다닐 순 없겠지만 말이야. 제말이 맞죠? "
세이실의 말에 루미에르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자 루이서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물었다.
"그럼... 어머니의 남자가 우리 새 아빠가 되는 건 아니야?
여전히 어려운지 루이서스가 다시 물어오자 세이실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공식적으로는 무리겠지.. 하지만 비공식적으론.. 새 아빠가 되는 거긴 하지만.. 이거 족보가 참으로 애매해지겠네."
세이실이 눈살을 찌푸리고는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대며 한탄을 토해냈다. 그럼에도 루이서스는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해했으나 그래도 어머니인 루미에르가 자신을 버리는 게 아니라 생각했는지 이내 활짝 웃어 보인다. 그런 루이서스의 모습에 세이실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참 속 편하네.."
"세이실의 말이 맞단다.. 황가의 이름에서 내 이름은 빠지겠지만, 황실의 족보에서 그 남자의 이름은 절대 실리지 않을 거야. 그렇지만 세이실, 루이서스..우리의 관계는 어느 것 하나 바뀌는 게 없어 그건 약속할 수 있단다. 앞으로도 계속 난 너희 엄마가 될 거야.."
루미에르의 말에 세이실과 루이서스가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