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8회. 반격의 서막】
"절대 너희 앞에 걸림돌이 될 껀덕지 하나 남기지 않을 거야 그 점은 정말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단다. 그는 절대 황제의 자리를 탐할 수 없어. 그러니 안심하렴... 그리고 만약 너희들이 반대를 한다면... 난 그를 잊을 거야. 이건 꼭 약속하마."
"후... 하긴 예전 황후님께서 새로운 남자를 들이는 것은 없었던 일은 아니긴 하지만 너무 갑작스러워 조금은 당황스럽네요. 진작에 말해 주시지.."
세이실의 말에 루미에르가 쑥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세이실의 말대로 황제가 먼저 명을 달리하고 홀로 남은 황후가 새로운 남자를 들인 일은 많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재혼한 상대는 황제의 자리를 차지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기도 했지만, 그 남성으로 인해 말이 많았던 적도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보통은 그저 외로운 황후의 즐길 거리가 될 뿐이었다. 그만큼 아즈문은 여성의 재혼에서 꽤나 자유로운 곳이기도 했다.
이내 잠시 고민을 하던 세이실이 루미에르를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
"어머니.. 어머니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그도 그렇구요?"
"응.."
세이실이 진중한 표정이 되어 묻자 루미에르도 덩달아 진중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착해요?"
"응.. 착해... 나에게 잘 해주는걸.."
루미에르의 대답에 세이실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바람둥이나 그런 건 아니죠?"
"으..응?"
꼬치꼬치 캐묻는 세이실의 말 중 바람둥이라는 단어가 귓가에 들어오자 루미에르가 순간 얼어붙으며 말을 더듬었다. 그럼에 눈치가 빠른 세이실은 그 점을 놓치지 않았고 눈을 빛내며 다시 물었다.
"뭐야? 설마.. 바람둥이에요?"
"그, 글쎄..."
루미에르가 어물쩍하게 대답하며 넘기려 했으나 집요한 세이실은 그런 루미에르가 쉽게 빠져나가게 하지 않았다.
"어머니! 잘 대답해주셔야 해요! 어머니도 아실 텐데요? 재혼을 할 때 친가 또는 친자 모두가 허락해야만 가능하다는 것을요! 그리고 어머니도 우리가 반대하며 그를 잊겠다고 했잖아요? 그러니 어서 말해요!"
마치 다그치는 선생님처럼 루미에르를 혼내듯이 말하는 세이실의 말에 루미에르가 이내 울상이 된 얼굴로 대답했다. 확실히 그녀의 말대로 재혼을 할 때 친자들은 재혼상대에 대해 자세히 알 권리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 그게.... 어쩌다 보니.. 하, 하지만 자, 자신 있어 난.."
"어머니! 보는 눈이 너무 없는 거 아니에요? 바람둥이라니! 어떻게 그런 걸 알면서 좋아해요?!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결국 화가 난 세이실이 루미에르의 말을 끊고 언성을 높였다. 그럼에 루미에르는 쥐구멍에라도 피하고 싶은 심정이 되어 세이실에 눈치를 보았다.
"도대체 그가 누구길래 그래요?"
"그게.."
"어서 빨리 말해요 뜸들이지 말고! 혹시 제가 아는 사람이에요?"
루미에르가 세이실의 눈치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루, 루크.. 루크 아스란.."
"예..? 뭐, 뭐라고요?"
결국 힘겹게 열린 루미에르의 입에 루크 아스란이란 이름이 나오자 세이실의 화들짝 놀라며 자신이 혹시나 잘못들은 것이 아닌가 싶어 되물었다. 그러나 루미에르는 더이상 대답이 없었고 세이실도 충분히 루미에르의 말이 다시 되새겨지기 시작하자 헛웃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
그렇게 잠시 한동안 고요하고도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루미에르는 계속해서 세이실의 눈치를 보았고 세이실은 여전히 어질어질한 머리를 부여잡으며 상념에 빠져 있었다. 오직 루이서스만이 세이실과 루미에르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 ☆ ☆
"베어라!!"
슬슬 메세츠데 성이 보였다. 길고 긴 행군에 끝이 보인다는 소리였다. 그러나 그만큼 적들의 반항도 심해졌다. 그럼에 여전히 연합군들은 자신의 검을 휘두르며 밀고 들어오는 적들을 차근차근 베어 가고 있었다.
"도대체 어디서 튀어나오는 건지 정말 끝이 없군!"
적들의 수는 성에 가까워질수록 많아졌다. 어느새 그 규모도 소규모식 게릴라 형태의 습격이었다면 이제는 대규모의 전면전으로 변해 있었고 지금도 그러했음에 루드위그가 잔뜩 짜증인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무래도 전투도 큰 전투가 많아짐에 점차 피로가 쌓였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그의 베틀 엑스가 시원스럽게 허공을 갈랐고 적들의 목이 우수수 떨어져 내리며 땅을 피로 물들였다.
여전히 피곤함에 찌든 상태에도 그의 힘은 혀를 내두를 정도로 뛰어났다. 뒤이어 기병들을 이끄는 나서스와 사무엘이 진을 친 적들의 진형을 헤집어 놓았으며 보병들에게 뚫고 갈 길을 터주자. 완전히 뭉개진 적군의 진형을 보며 지크라엘이 소리쳤다.
"추기경님!"
급히 병사들의 뒤, 후방에서 서포터 역할을 해주던 조셉을 부르자 조셉이 고개를 끄덕이며 사제들을 바라봤다. 그럼에 모든 사제의 모습에 빛이 일렁이며 그 빛은 곧 병사들의 원기를 회복해주며 용기를 심어주었고 각자의 무기에는 신성력을 머물게 했다. 그러한 신성력은 곧 연합군의 반격에 시발점이 되었다.
잠시 지친 몸도 잊은 그들이 힘있게 땅을 박차기 시작했고 기병들이 헤집어 놓은 적들의 진형을 쇄도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물러서지 마라! 적들은 그저 인형이다.! 인형을 벤다 생각하면 된다! 두려워하지 마라!"
지크라엘이 소리쳤다. 동시에 선두의 서며 루드위그와 같이 적들을 베어 갔고 그 뒤를 데미아스가 따랐다. 그럼에 기세를 탄 연합군은 쉽게 적들의 진형을 무너트리며 이제는 전투가 아닌 학살로 변해 있었다.
"조금만 더 힘을 내라! 코앞이 메세츠데다!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베어라!!"
저만치 지평선의 끝에 보이는 메세츠데의 성벽을 가리키며 지크라엘이 다시 한번 소리쳤다. 그럼에 병사들이 더욱 힘을 내었고 모두가 하나가 되어 기합성을 터트렸다. 그럼에 결국 완전히 붕괴가 된 메세츠데 병사들이 급히 도망치는 모습이 보이자 데미아스가 도망치는 적들을 보며 소리쳤다.
"나서스! 사무엘 끝까지 쫓아 적들을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어차피 주변은 탁 트인 평원이었다. 그 어디에도 함정을 놓을 수 없는 거리에 데미아스가 소리쳤고 사무엘과 나서스는 같이 기병들을 이끌고 도망치는 적들을 베어 가기 시작하자. 기병을 따돌릴 수 없던 몬스터들과 메세츠데 병사들은 이내 싸늘한 주검이 되어 평원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완전한 대승이군!"
마지막 한 명의 병사가 목을 잃고 쓰러짐에 지크문드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뒤이어 병사들 사이에서 승리의 함성이 여기저기서 들려오기 시작하자 지크라엘이 눈을 빛내며 자신으로 가득 찬 얼굴로 서서히 보이기 시작하는 메세츠데 성을 바라보았다.
이미 이들의 눈엔 이길 수 있다는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고 지크라엘도 그러했다. 이제 곧 끝이 보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