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루크 아스란 전기-360화 (360/412)

【360회. 이 차원에 오게 된 이유】

빛을 담은 그릇에 흘러나온 빛이 온 동굴을 감싸 안았다. 그럼에 느껴지는 포근함, 마치 따듯한 물에 몸을 씻고 깨끗한 이불 위에 누워있는 듯한 포근함이 느껴졌다. 이대로 잠들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럼에 감탄을 금치 못한 마리에테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대단해요!"

이내 마리에테의 시선이 춤을 추고 있는 신물들을 바라봤다. 각각 각자의 빛을 머금고 춤을 추는 모습은 신비롭고 경이로웠다. 뒤이어 버고의 음률이 담긴 시가 들려왔다.

"이게.. 신 라우엘님을 부르는 의식.."

"맞아요.."

루크의 음성에 마리에테가 고개를 끄덕였다. 12개의 신물들이 이렇게까지 아름답게 보일 줄은 몰랐다. 그때였다. 각각의 빛을 뿜어대던 신물들이 이내 하나의 빛을 띠기 시작했고 그 빛은 이내 빛을 담는 그릇에 담기기 시작했다. 그러자 빛이 흘러넘치기 시작했다. 마치 빛으로 된 물처럼 그릇에 담긴 빛이 그릇을 채우다 넘쳐 하얀 대리석의 계단 아래로 흐르고 이내 루크의 발 앞까지 흘러나오자 루크가 그 빛에 손을 대었다. 따듯함을 뒤로 지쳤던 몸이 말끔히 회복되어 사라져갔다. 그때였다. 마치 홍수가 일어난 듯 빛의 그릇에서 뿜어져 나온 빛의 물결이 모든 이들을 덮치기 시작하자 루크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이, 이게 무슨 일이지! 뭐야... 어떻게 된 거야?"

빛의 물결에 정통으로 받아낸 루크가 난감한 표정을 보이며 주변을 돌아봤다. 그러나 마치 시간이라도 멈춘 듯이 그 누구도 움직이질 않았다.

"레이니 누나? 안느란테님! 에이리스님? 엘레니아 누나! 릴리!! 이럴 수가 모두 어떻게 된 거야.."

한껏 당황한 얼굴로 루크가 중얼거렸다. 그러면서 멈춘 그들의 몸에 흔들기도 해보았으나 마치 인형이 된 듯 움직이지 않았다.

"너무 걱정하지마렴.."

그때였을까? 어디선가 들려오는 포근한 목소리 속에 걱정이 말끔히 사라졌다. 이내 들어 올린 고개 사이로 제단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한 여인의 모습이 보였다.

"당신은.."

거대한 여섯 쌍의 날개를 가지며 흰색의 천으로 하얗디하얀 몸을 감춘 금발의 여인, 그 누구보다 더 고귀해 보이며 아름다워 보였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 속에 거대한 위엄이 느껴지자. 루크는 그가 누군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느껴지는 이 익숙한 느낌, 어디선가 라우엘을 보았던 것 같아 루크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당신이.. 라우엘님이신가요?.. 그런데.. 혹시 저와 만난 적이 있나요?"

"... 아직 기억을 못 하나 보군요? 우린 구면일 텐데요."

"예?"

라우엘의 말에 루크가 고개를 갸웃하며 되묻자 라우엘의 입가에 살며시 미소가 그려졌다.

"저희는 한 번 만난 적이 있답니다. 당신이 죽었던 그날."

"죽었던 그날?"

그녀의 말에 루크가 생각했다. 자신이 죽었던 날, 그럼 지구에서 이곳으로 왔을 때를 말한 것인지 아니면 윈랜드에서 암살자들에 의해 죽을 뻔했던 기억을 말하는지 몰랐다. 그러나 라우엘이 한차례 손가락을 튕기자 무언가 알 수 없는 기억들이 루크의 머릿속에 들어오는 것 같아 잠시 머리가 어질어질하며 균형을 잃을 뻔했다.

그러더니 금세 어지러운 느낌은 사라지고 맑아진 정신 사이로 하나의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여태 안개로 감춰졌던 그 기억들이 말이다.

"아... 윈랜드에서 제가.. 죽음을 맞이했을 때...그때군요! 라우엘님.."

그제야 기억이 난 듯 루크가 반가움이 가득한 얼굴로 묻자 라우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만이에요 루크."

"저도.. 반가워요.. 아니 반갑습니다.. 라우엘님. 그나저나 괜찮으신가요?"

"후훗 편히 말해도 된답니다. 그나저나 무엇을 말입니까?"

이내 루크가 걱정스런 얼굴로 라우엘에게 묻자 라우엘이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 뒤이어 루크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제가 기억하기에는..저를 다시 살리려고 다른 신과 잠시 다툼이 있었잖아요. 그리고 저를 다시 살리는 일은 태초의 신에게 어긋난 행위라 들었는데."

"아~ 그 일은 좋게 넘어갔답니다. 태초의 존재께서도 어쩐 일인지 딱히 이 일에 관여를 하지 않았고요."

"그거 다행이군요.."

루크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하자 라우엘이 다시 그 신비로운 미소를 보였다.

"그분은 어떨 때에는 굉장히 무섭고 엄격한 분이기도 하지만 어떨 때에는 한없이 자비로움을 가지고 있는 분이기도 하니까요.. 그리고 지금 이 세상이 위험에 처한 상태에서 그렇게 모질게 대할 분이 아니에요..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답니다. "

"그런가요? 하지만 그분은 그런 자비심을 가지고도 루시를 홀로 남겨두었고 이제는 그를 희생시키려 하는 거 아닌가요?"

루크가 걱정스런 얼굴로 다시 묻자 라우엘이 아름다운 미소를 지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에 절로 루크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러나 괘념치 않은 라우엘이 다시 말을 이었다.

"전 다르게 생각했어요. 루시가 벌을 피한 것은 그분의 자비로움 때문이 아닐까요? 혹은 지금의 상황을 예언하고 루시에게 그대를 만나게 하려는 희망을 준 것이 아닌가 하고요. 루시는 그대를 너무나 사랑했으니까요. 그러나 그 역시 죄를 지은 신, 벌을 받아야 했음은 분명해요 태초의 신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공평하니까요. 그렇기에 태초의 신은 루시에게 이러한 벌을 제안한 것일 수도 있지요. 그 제안을 받아들인 루시는 결국 태초의 신의 자비에 당신을 만났고 다시 사랑을 알게 되었고 악신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지요 그게 다 당신 덕분이랍니다. 루크 아스란.."

"...그런! 그럼.. 루시가 희생한 일은 당신의 계획이 아니란 소린가요?"

루크의 물음에 라우엘이 진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 모든 계획은, 기억을 잃기 전 루시와 저의 계획이었고 전 그 계획에 반대를 했답니다. 어찌 되었든 그에게 너무 위험하니까요."

"그럴 수가... 이 모든게 루시가 계획 한 거라니요..전 여태.. 라우엘님께서.. 계획하신.. 일인 줄 알았어요."

"그가 지금 깨어나기 전, 아주 오래 전 한 차례 깨어난 적이 있었지요.. 그때 루시는 인간들을 관찰하며 많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답니다. 그리고 그는 더는 인간들을 미워만 할 수 없다 생각했지요. 그렇기에 그의 불꽃이 다하기 전 저를 만났었지요."

"라우엘님을요?"

라우엘이 진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는 여전히 인간들을 미워한다고 했어요. 하지만 차마 인간들을 죽일 수가 없었다고 했어요. 자신이 그들을 죽인다 해도 그의 연인은 돌아오지 않으니까요. 그럼에 그가 선택한 길은 벨리알이 다시 태어나게 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그때 그녀가 다시 깨어나 증오가 남아있다면 자신의 생각대로 인간들을 모두 멸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벨리알을 죽이기위해 도움을 준다고 했지요."

"...그래서.. 라우엘님은 그 말에 동의를 한 것이군요?"

"맞아요. 그리고 루시가 다시 깨어나, 그대를 만났것이지요."

"... 당신의 힘 때문이지요."

루크의 말에 라우엘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루시의 연인 그 후인이 다른 차원에서 태어났기에 그녀의 생각을 바꾸기 위해 라우엘이 직접 힘을 써 루크를 이 차원을 보낸 것이기 때문이었으니 말이다. 루크의 생각이 맞는지 라우엘이 더는 대답이 없자 루크가 씁쓸한 표정으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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