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루크 아스란 전기-361화 (361/412)

【361회. 이 차원에 오게 된 이유】

-루시의 과거 -

땅거미가 내려앉은 밤이었다. 루시페리아가 지친 몸을 이끌고 도달한 곳은 라우엘의 첫 번째 제단이었다.

그간의 고통을 말해주듯 그녀의 몸은 여기저기 해져 있음은 물론 며칠을 씻지 못해 꾀죄죄한 모습으로 이내 라우엘의 제단에 이르렀다.

"라우엘..."

루시페리아가 잠시 파문이 이는 눈으로 제단을 바라보다 다시 지친 몸을 이끌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라우엘의 제단에 있는 대리석의 계단을 올라 빛을 담은 그릇에 도달했고 천천히 기운을 이끌기 시작했다. 그럼에 고요하게 개울이 흐르는 소리만이 가득한 동굴 내부에 노란빛을 뿜어내는 반딧불이가 하나둘 피어올랐고 고작 한둘뿐이던 반딧불이의 수가 점차 늘어나더니 라우엘의 부름에 따라 수 많은 반딧불이들이 한데 어우러지기 시작했다.

"라우엘을 부를 빛이 되어 줘."

루시페리아가 허공에 떠다니는 반딧불이들을 향해 부탁 조로 말하자. 빛을 담은 그릇이 작은 떨림으로 공명하며 반응을 하기 시작했으며 서서히 반딧불이들이 빛의 그름에 담겨 빛의 물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그러한 신비한 형상에도 루시페리아는 조그마한 미소를 지어 보였으나 금세 무덤덤한 표정으로 변해, 빛이 담긴 그릇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빛이 점차 넘쳐 흐를 정도가 되며 만족스럽게 차오름을 느끼자 루시페리아는 깊은 한숨을 한차례 토해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라우엘.... 라우엘..."

나지막이 울리는 루시페리아의 음성, 그 목소리 안에 미세한 떨림과 우울감이 전해졌다.

"대답해줘 라우엘.."

이내 빛이 담긴 그릇 사이로 라우엘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하자 걱정스런 표정의 라우엘이 루시페리아를 반겼다.

"루시! 너.. 어째서 거기에 있는 거야?"

"응.. 예상대로.. 흑마법사들이 날 소환해 냈어... 불안전한 소환이지만... 그래도.. 잠시 중간 계를 돌아다닐 수 있었어.."

"태초의 신께서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

"알아.. 하지만 그대로 잠들 수만은 없었어. 확인했어야 하니까..."

"루시.. 이 멍청이! 그는 돌아오지 않아! 그는 이미 수백 년도 전에 죽었어."

".."

라우엘의 울분이 섞인 질책에 루시의 말문이 잠시 막히며 씁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더이상 네가 아는 그는 이 세상에 없어. 더는 그분의 명을 거역하지 마!"

"그렇지 않아 라우엘. 그의 후대가 나타날 거야."

"무슨 소리야.. 그의 핏줄은 남아있지 않아!"

라우엘의 말에 루시의 표정이 씁쓸하게 변하자 라우엘이 무언가 깨달았는지 이내 표정에서 경악이 서렸다.

"천기를 읽은 거야?... 그래선 안 돼!"

라우엘이 놀라 소리쳤다. 천기를 읽는 행위야말로 절대로 해선 안 되는 일이었고 그것을 입 밖으로 내뱉는 것도 물론 금기였다. 그 역시 신이 벌을 받았을 때 태초의 신에게 들었던 금기 중 하나였다. 그러나 루시는 너무나 거리낌 없이 대답하자 라우엘의 표정이 두려움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언제고 태초의 신께서 벌을 내릴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루시의 표정에는 그 어떠한 두려움도 보이지 않았다.

"상관없어... 어떻게서든 난 그를 다시 보고 싶었어.."

"그럼 그를 찾은 거야?"

"..."

라우엘이 조심스럽게 되물었지만, 루시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러지 못 했어. 그는 이 세상에 없었어.."

"...그게 무슨 소리야?"

"나도 모르겠어.. 그의 후대가 태어나는 것은 어렴풋이 보였는데..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아.. 어딜 가도 찾을 수가 없었어, 게다가 내 힘이 점점 쇠퇴해져 더는 돌아다닐 기운이 없어. 이제 이 모습을 유지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

"... 너.."

라우엘이 걱정스럽게 묻자 루시가 고개를 끄덕였다.

"곧.. 다시 잠들 거야.. 그리고 라우엘 시간이 지나면 인간들에 의해 만들어진 악마가 태어날 거야."

"악마?"

"응... 인간들은 네가 필요하게 될 거야. 라우엘,"

"너.. 도대체 어디까지 읽은 거야!?"

라우엘의 걱정이 서린 다그침에 루시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 나도 어렴풋이 읽은 게 다야... 하지만 네가 사랑하는 이 차원은 곧 무너지고 말 거야."

"말도 안 돼..."

라우엘이 믿기 힘들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신이 차원에서 추방당하고 인간들이 죄를 지어 벌을 받은 이후로 차원이 흔들릴 정도의 큰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었다. 그럼에 라우엘로서도 별다른 낌새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는데 루시페리아는 도대체 무엇을 보았기에 이러는지 궁금했다.

"내가.. 인간들을 멸하지 않아도. 얼마 지나지 않아 인간들에 의해 만들어진 악마로부터 인간들은 멸하고 말 거야.. 아이러니하지 않아?"

"....루시.."

"이런 것을 자업자득이라 하나 봐... 인간들에게서 배웠어..."

루시의 얼굴은 웃고 있은 눈은 한없이 슬퍼 보였다. 도대체 무엇에 그리 슬퍼하는지 모를 라우엘도 그녀를 따라 슬픈 표정을 지어 보이다. 다시 말을 이었다.

"난.. 인간들을 도울 거야.."

"...그럴 줄 알았어.. 너라면 인간을 도우리라 생각했어."

"너는 어쩌려고.."

"난 내 사랑하는 이를 고통스럽게 죽인 인간들을 용서할 생각이 없어."

이내 루시의 표정에 분노가 자리하며 주변에 불꽃이 들끓었다.

"그래선 안 돼.. 화를 누그러트려.. 루시.. 더는 그분의 심기를 건드리지 마.. 여기서 더 선을 넘었다간 넌 소멸이 될지도 몰라."

"....."

루시가 대답이 없었다. 그저 멍하니 라우엘을 바라볼 뿐이었다.

"언제고 나는 다시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거야 라우엘.."

"... 무슨 소리야? 도대체 어디까지 읽은 거야.."

"그건 상관이 없어! 라우엘... 하지만 한 가지, 난 다시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거고 그 시기는 악마가 태어나는 시기랑 같아. 그때 난 이번에 결정하지 못한 결정을 내리게 될 거야."

"무슨 결정.."

"널 막아서며 인간들을 멸하던가.. 아니면 악마를 막아서던가. 말이야."

"....그래선 안 돼! 넌 차원을 지켜야만 하는 신이야! 그리고 너의 차원은 지금 이 세계이고! 제발 악신이 되지 말아줘!"

"난 더이상 미련이 없어. 그를 찾지 못한 난 더는.. 살아갈 이유가 없어 라우엘.."

"루시!"

서서히 루시의 몸이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몸을 유지하는 힘이 점차 소진되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럼에 루시의 표정이 더욱 단호해지며 라우엘을 불렀다.

"라우엘... 언제고 넌 나와 적이 될지도.. 아니면 동료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해.. 나에게는 그가 없는 세상은 의미가 없어."

"루시! 그, 그렇다면 나에게 왜 이런 사실을 말해주는 거야?! 넌 내가 어떻게 할지 당연히 알잖아! 루시!! 나와 대립을 하고 싶은 거야? 아니면 도와달라는 거야!"

라우엘이 다급히 소리쳤으나 그 말을 뒤로 루시페리아의 몸이 완전히 흐릿해지다 이내 수 많은 반딧불이로 산화되어 모습을 감추었다. 그럼에 라우엘의 표정에 더욱 당혹스러우므로 변해버렸으며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몰랐다.

"루시... 도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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