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3회. 이 차원에 오게 된 이유】
-현재-
" 루시가 너무 불쌍해요... 이제 막 행복해지려 하는데.. 이제 그녀에게 가족이 생겼는데.. 이렇게 또 헤어져야 하나요?"
루크의 기억 속에 행복해하는 루시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러면서도 자꾸 이상한 꿈을 꾼다며 두려워하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겁을 집어먹고 그 야리야리한 몸을 벌벌 떠는 그녀의 모습에 루크의 눈앞에 아른거렸고 이내 그런 그녀를 다독여 주며 나중에 모두와 함께 놀러 가자고 약속을 했던 기억까지 떠오르자 루크의 얼굴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저도 알고 있어요.."
이내 라우엘이 진지해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렇기에 마리에테를 비롯해 당신들이 한데 모여 이곳으로 오게 된 것이기도 하고 저를 부른 것이기도 하죠. 우린 이제 벨리알을 상대하고 루시를 구하러 가야겠지요."
"루시를 구할 수 있는 건가요?"
루크가 의문이 가득 찬 모습으로 되물었다. 왜인지 모르게 너무나 불안했다. 그제야 신물이 다 모이고 모든 것을 끝낼 신 라우엘을 불렀으나. 알 수 없는 불안함이 루크의 마음에 가득 차 괴롭혔다.
라우엘도 자신과 같은 느낌을 받은 것일까? 그녀에게서도 확고한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저 자신과 똑같이 슬퍼하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굳어진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왜.. 대답이 없는 거죠?"
파문이 이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럼에 라우엘이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저도 알지 못해요... 신은 완벽한 존재가 아니기에.. 직접 벨리알을 상대하고 있는 루시를 만나 봐야 알겠지요."
"그럼..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지 않나요? 왜... 시간이 멈춘 것이지요?"
"걱정 말아요 루크, 아직은 여유가 좀 있답니다. 그저 당신과 얘기를 좀 나누고 싶어서 그랬답니다. 그나저나 정말 다행이에요. 루크 아스란, 아니 지구에서 온.. 이 강인씨.. 억지로 이어진 운명은 너무나 위태로웠고 위기가 많았지만, 그 운명을 끝까지 손에 쥐고 놓지 않았군요. 정말 다행이에요.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미안하군요.. 무책임하게 사전의 이야기도 없이 그대를 이 세상에 허락도 맡지 않고 부른 것이 그래도 이렇게 잘 이겨내는 모습을 보니 역시 저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음이 느껴지네요. 그대라면 이렇게 모든 신물을 모아 저를 불러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답니다.. 그럼에 고마워요 루크."
라우엘의 칭찬에 루크가 씁쓸한 표정을 지어 보이다. 궁금함으로 가득찬 얼굴로 말을 이었다.
"... 그런가요?..라우엘님..저도 묻고 싶은 게 있어요. 이렇게 말도 안 될 정도의 운과 인연... 그리고 마흐무드에서 들었던 인연의 중심,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전 하나도 모르겠어요. 정말 제가 그들이 말하는 사람인가요? 저는 딱히 특별한 능력이 없어요. 라우엘님에게 이렇게 칭찬을 받을 정도의 일은 하지 않았어요.."
루크가 잔뜩 인상을 찡그리며 여태 가지고 있던 고민을 묻자 라우엘이 잠시 다른 이들을 훑어 보다 말을 이었다.
"이 모든 이들이 한데 모이게 된 것은 다 루크 당신 때문인걸요?"
"그게 무슨 소리죠?"
"잘 생각해보세요. 이 모든 이들은 당신의 인연으로 시작되었고 그대가 흑마법사들을 막아냄으로 이렇게 모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으니까요."
".... 전...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라우엘님이 도와주신 건가요? 제 주위에 이렇게 좋은 분들이 있게 된 것 모두."
"후훗.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라우엘이 오히려 물어오자 루크가 잠시 고민에 빠지다 이내 고개를 저어 보였다.
"정말 전, 잘 모르겠어요..."
"물론 제가 도움을 준 것도 있답니다. 그대에게 이 얽히고설킨 인연의 실타래를 그대가 엮일 수 있게 해주었으나. 루크, 그대는 이 위태롭고 연약한 인연의 실을 지키고 강하게 만든 것은 다 그대가 만들어낸 것이에요. 전 그저 작은 계기만 만들어 주었을 뿐이지요."
"... 솔직히... 전 무언가 두려웠어요... 이 모든 일들이 다 라우엘님의 계획대로 만들어진 것이고 순전히 제 능력과 내 모습 때문이 아닌 모두 라우엘님 덕분에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인연이 아닌가 하고요.. 이들이 저에게 주는 사랑이 다 누군가에 만들어진 가짜가 아닌가 하고요.."
"흠.. 그랬나요?"
"예..."
루크의 진솔한 말에 라우엘이 천천히 루크에게 다가와 그의 뺨을 어루어만졌다. 그럼에 포근한 온기가 루크의 볼을 타고 흘렀다.
"걱정 말아요 루크, 이 인연들은 순전히 그대 스스로 만들고 강해진 것이니."
"..."
그녀의 말에 안심이 들었다.
"그리고 미안해요. 그대에게 이렇게 힘든 시련을 주어서. 그래도 잘 이겨내 주어서 너무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답니다."
"그렇지 않아요..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이 이렇게 좋은 분들을 만나면 저처럼 행동할 테니까요."
"후훗... 그렇지 않아요. 루크, 그대는 그대의 힘을 너무 얕잡아 보면 안 된답니다. 그대는 그 누구보다 깨끗한 몸을 가지고 있고 강한 정신을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언제나 남을 배려하는 그 선한 마음은 그대에게 너무나 강력한 무기가 되었으니까요. 그건 제 도움이 아닌 순수히 당신이 가진 힘이에요."
"...."
루크가 말없이 라우엘을 바라보자 라우엘이 다시 미소를 머금으며 대답했다.
"그러니.. 자부심을 가져도 좋아요 루크."
"그나저나 마리에테의 품속에 재미난 물건을 가지고 있군요."
뒤이어 라우엘이 마리에테를 바라보자 루크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럼에 라우엘이 손가락을 튕기자 마리에테의 가방 속에 조금 전 메드니스가 건네준 단검이 날아와 라우엘의 손에 안착했다.
"그건."
"그녀에게 들었겠지요? 신을 죽인 창, 이 창은 옛 신에 저항한 인간들의 무기였지요 그러나 그 죄로 인해 견고한 창대가 부러지고 이 날카로운 날만이 남았었는데.. 여전히 이 날만은 살아 있고 그 안에는 신을 향한 원망 역시 여전히 담겨 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