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루크 아스란 전기-372화 (372/412)

【372회. 최후의 전투】

"좋았어.."

나름 순탄하게 잔입한 카시오가 나지막이 기쁨을 토해냈다. 동시에 잠입한 황성 안, 역시 제국의 궁인지라. 그 크기가 어마어마했다.

이 거대한 궁을 일일이 하나하나 돌아보며 벨리알을 찾을 수나 있으려는지 조금은 막막한 감정이 든다.

"아냐.. 카시오, 고작 이런 걸로 무너지지 말자.."

이내 카시오는 마음을 굳건히 다잡으며 고개를 저었다. 고작 이런 일로 무너져선 안 되었다.

그럼에 천천히 걸음을 옮겨갔다. 길게 이어진 복도, 오른쪽 옆에는 똑같으 모양과 똑같은 크기의 창문들이 있었고 왼쪽에도 똑같은 문양과 똑같은 재질로 만들어진 여러 방문이 자리하고 있었다. 어딜 보아도 다른 점은 보이지 않은 이 성에 카시오는 인상을 찌푸리며 마나필드의 마법을 사용해 인기척이 있는지 찾아볼까 했으나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문득 떠오른 지크문드의 충고 때문이었다. 암살자들은 보통 마법을 사용하지 않는다던 그의 말이 떠올라 카시오의 뇌리에 지나치자 마법을 사용하길 포기해야만 했따.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래도 일일이 찾아봐야 하는 건가.."

카시오가 인상을 쓰며 중얼거렸다. 일일이 찾기엔 너무나 많은 방, 이 방 한 곳에 벨리알이 있을 텐데 어디서 찾아야 할지 막막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야낙과 메드니스가 황성에 있을 때 자신도 따라 가보는 것인데, 괜히 벨리알이 보기 싫어 같이 따라가지 않은 자신이 한탄스러웠다.

"다 거기서 거기 아니야?"

얼마나 걸었을까? 결국 잠시 멈춰 선 카시오가 잔뜩 인상을 구기며 중얼거렸다. 분명 계단으로 계속 내려오고 또 어디론가 빠진 것 같은데 조금 전과 같은 공간이 다시 나타났다.

아무리 보아도 어디 하나 달라진 점 없이 옆은 창문과 다른 옆은 온통 똑같은 방 그나마 달라진 점이라면 창문 밖 시야가 조금 내려간 것이 다이다. 혹여나 자신이 마법진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은 아닌가 싶었으나 그 어디에도 마나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건 또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는 건 순전히 자신이 길을 잃었다는 건데 카시오는 그런 자신의 모습에 한심스럽게 느껴졌고 또다시 야낙이 그리워졌다.

"하아.. 오빠 나 어떡해.."

호기롭게 복수를 한다고 했 건만 야낙을 죽인 데미아스에게 복수를 하는 것도 실패했고 벨리알은 이 황성에 길을 잃어 터무니없게 실패할 위기다. 그것도 전투 한 번 해보지 못하고 말이다. 이 어찌 한심하지 않을 수가 없는지, 그것도 마계에서 내노라 하는 마법의 일족인 자신인데 말이다. 이내 카시오가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대로 포기할 순 없었다. 마계인이라면 피의 죗값은 꼭 피로 갚아야 한다. 그럼에 자신의 칼날은 계속해서 벨리알을 찾기 위해 번뜩였고 카시오도 여기서 포기해선 안 되었다.

"약해지지 말자.. 카시오!"

자신을 다시 한 번 다독이며 카시오가 그렇게 한참을 걸었다. 이제는 무턱대고 아래로 내려가 보기도하고 여러 방을 돌아다녀 보기도 하길 이내 카시오가 한 곳에서 멈춰 섰다. 다른 방보다 더욱 커다란 문, 그디어 주변이 변했다.

"어쩌면 여기가.."

강철로 만들어져 있는 방, 게다가 안에는 무언가 있는지 문을 비롯해 문 주변에도 검게 부식되어 있는 것이 왠지 모를 꺼림칙함이 느껴지는 방이었다.

"여기만 다른 곳과 달라.. 게다가.."

카시오가 검게 부식 되어 있는 강철의 문을 보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무언가 이 안에서 알 수 없는 힘이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확실해."

카시오는 확신을 가졌다. 분명 이 안에 클루드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럼에 조심스럽게 다가가 문을 열려 할 때였다. 카시오의 움직임을 멈추게 하는 갑작스레 들려오는 여인의 비명,

카시오가 깜짝놀라 잠시 머뭇 거렸다. 뒤이어 잠잠해지는 비명, 카시오가 그대로 얼어버렸다. 동시에 굳게 닫힌 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하자 카시오가 놀라 급히 복도 옆에 놓인 갑옷 뒤로 몸을 숨겼다.

이내 완전히 열린 강철의 문, 그 사이로 스산한 기운을 뿜어내며 그디어 꼭 찾아내야만 했던 클루드가 비릿한 미소와 함께 문을 나서고 있었다.

카시오의 눈이 부르떠진다.

'그, 그디어..'

그디어 야낙을 죽음으로 몰고 간 자가 자신의 눈앞에 있었다. 그런데 왜 이리도 몸이 떨어지지 않은 것일까? 차마 움직일 수가 없었다.

'뭐, 뭐야.. 카시오! 움직여! 움직이란 말이야!'

이내 클루드가 자신의 앞을 무심히 지나쳐 가는데도 당장 그에게 달려가 자신이 아는 가장 고통스럽고 강력한 마법을 쏘아내고 싶은데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면서 머릿속에는 절대 그에게 모습을 드러내지 말라고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왜.. 왜 안 움직이는 거야..'

그저 보는 것만으로 겁을 집어먹은 것일까? 어서 몸이 움직이길 소리 없이 소리쳤으나. 끝내 클루드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감히 바라볼 수조차 없는 거대한 위압감, 두려움, 공포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져 카시오를 거세게 짓눌렀다.

심지어 그는 자신이 이곳에 숨어 있다는 것도 모르는데 말이다. 이내 카시오가 울음이 터져 나왔다.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그디어 원수가 바로 눈앞에 있었는데 아무것도 하지 못한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 한심스러워 미칠 것만 같았다. 그럼에 클루드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카시오가 그대로 주저앉아 오열을 하기 시작했다.

"흑, 흑... 미안해.. 미안해 오빠.. 흑...흑."

닭똥같은 눈물이 카시오의 턱선을 타고 흘러 바닥을 적셨다. 분하고 억울했다. 그러면서도 이런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어디론가 달려가 죽고 싶을 만큼 부끄럽기도 했다. 분명 자신을 두고 먼저 떠난 야낙이 자신을 비웃을 거라 생각했다. 그럼에도 카시오는 그에게 모습을 드러낼 수가 없었다.

"흑... 흑... 오빠.. 미안해.."

이내 서럽게 우는 카시오의 시야에 조금 전 클루드가 나선 방안이 보였다. 꽤 커다란 공동 같은 곳에 본래의 색을 잃고 온통 검게 물든 방, 그 안에 흰 백발의 한 여인이 쥐 죽은 듯 쓰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카시오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이상하게 저 여인에게 시선이 떨어지지 않았다. 특히 등에 달린 저 말라 비틀어진 두 쌍의 초라한 날개는 자신이 아는 한 여인의 날개와 너무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혹여나 클루드가 다시 마계인을 소환한 것이 아닐까 싶었으나 힘도 별로 없어 보이는 저 늙은 여인을 그가 소환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그럼에 힘겹게 몸을 일으킨 카시오가 흘러내리는 눈물을 대충 손을 닦아내고는 방 안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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