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3회. 최후의 전투】
"어떻게 된 거야.. 여긴.."
왠지 섬뜩했다. 회색빛이 돌아야 하는 바닥과 벽은 마치 큰불이라도 난 것처럼 새카맣게 그을린 듯 보이며, 그 그을린 자국에는 알 수 없는 음침함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러한 곳에 한가운데에 힘을 잃고 쓰러져 있는 백발의 여인, 왠지 모르게 공포심을 조성했으나 왠지 쓰러져 있는 여인의 모습은 참으로 가련해 보인다. 그래서일까? 잠시 자신을 자책하며 우는 것을 멈춘 카시오가 그녀를 향해 걸음을 옮겨가다 이내 여인의 앞에 멈춰 섰다.
언뜻 보아도 나이가 꽤 있는지 쭈글쭈글한 몸에는 마치 생기라도 다 빨린 듯, 그저 거죽만 남은 듯한 여인의 모습이 보였으나 얼굴은 기다란 백발에 가려 제대로 확인할 수가 없었다. 그럼에 카시오는 고개를 숙여 조심스럽게 그녀의 얼굴을 가리고 있는 백발을 조심스럽게 치워 냈다.
"괘, 괜찮아요?"
대답이 없는 여인의 모습 왠지 무서웠으나. 마음을 다잡고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카시오의 손이 그녀의 푸석푸석해진 백발에 닿아. 천천히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 흡!"
카시오가 화들짝 놀라 헛바람을 삼켰다. 동시에 굳어지는 몸에 잠시 균형을 잃은 카시오가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마, 말도 안 돼..."
이내 카시오가 잔뜩 떨리는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메, 메드니스... 메드니스 언니?!"
카시오의 눈가에 다시 눈물이 차올랐다. 언제나 목숨보다 미모를 더 소중히 여긴 그녀가 지금 자신의 앞에 있는 그녀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그러나 저 자글자글한 주름과 말라 비틀어진 살가죽을 뒤로한 채 얼굴을 본다면 단 한 사람 메드니스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럼에 의심은 확신으로 변했다.
"어, 어떻게.. 이, 일어나 봐! 일어나 봐! 언니!"
카시오가 다급히 몸을 일으켜 메드니스를 부여잡고 소리쳤다. 그러나 그녀로부터 어떠한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마치 풍선에 바람이 빠지듯이 간헐적으로 힘겨운 숨을 내쉴 뿐이었지 그녀에게서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언니! 제발! 언니!! 어떻게 된 거야?! 이게,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언니!! 제발 일어나봐!"
카시오가 울부짖으며 소리쳤다. 그러한 소란에 그제야 메드니스가 힘겹게 눈을 뜨며 잔뜩 파문이 이는 눈으로 카시오를 바라보았다.
"카, 카시오..? 네, 네가.. 어떻게.. 바, 바보야.. 여길... 어디라고.. 와.."
바람이 빠지는 듯한 숨이 조그마한 음성을 띠며 카시오를 불렀고 이내 그녀를 질책했다.
"어, 언니 그게 중요한게 아니야! 날 알아보겠어? 카시오야! 그러니 제발, 제발 일어나 봐 어떻게 된 거야.. 언니!"
"카, 카시오.. 당장 도망쳐.... 도망쳐야 해.. 카시오.."
"언니! 그게 무슨 소리야! 제발.."
"그는... 너, 너를... 죽일...거야... 그러니.. 도망...쳐.."
자꾸 입이 마르는지 어렵게 침을 삼키며 제대로 나오지 않은 말을 잇는 메드니스의 말에 카시오의 눈동자가 파문이 일다 못해.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그녀가 말하는 사람은 당연히 클루드 그자 일 것이 분명해 오히려 분노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베, 벨리알이.. 내 힘을... 얻어서.. 그 안에.. 있는 두, 두 개의 영혼을 이겨냈어.. 하아... 지, 지옥이.. 펼쳐.. 질 거야.. 그, 그러니.. 도망쳐.. 어서."
"안 돼! 난 도망칠 수 없어! 야낙 오빠와 언니의 복수를 할거야!"
카시오가 고개를 저으며 소리쳤다. 그럼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메드니스의 입가가 조심스럽게 올라가 미소를 그리며 힘겹게 말을 이었다.
"그러..지.. 마.. 도망..쳐.. 마, 마음만으로도.. 고마워.."
"안 돼.. 이, 일단 피해야 해! 언니! 어떻게든 치료를 해야 해!"
"나, 난.. 글렀어.. 카시오.."
"안 돼!!"
카시오가 울부짖으며 자신의 몸 보다 두 배는 커다란 메드니스를 잡아끌었다. 그럼에 너무나 손쉽게 움직이는 그녀의 몸, 얼마나 가벼워졌는지 카시오의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카, 카시오.. 그,그러지마..호, 혼자 도망쳐.. 그, 그가 다시 돌아올 거야.."
"싫어! 싫다고! 내가 언니 복수도 해줄게! 어떻게서든! 해줄 테니까! 일단 몸부터 피해!"
"카, 카시오...크흡."
뒤이어 메드니스가 마른기침을 토해냈다. 그럼에 그녀의 입에서 피가 한 움큼 뿜어져 나오자 카시오의 얼굴이 더욱 창백해졌다. 아무래도 메드니스의 상태가 그리 좋지만은 않아 보인다.
"언니.. 제발.. 제발.. 참아.. 참아 줘.."
"카시오... 카시오.. 내 동생.. 카시오...도망쳐.. 제발.."
"제발.. 언니.. 도망치라는 말은 하지 말아줘.."
그때였다. 자신의 앞에 균열이 일기 시작하며 마나가 모아지고 있었다. 분명 익숙한 공간 마법에 카시오는 곧 클루드가 돌아올 것임을 알자. 급히 마법을 부려 자신과 메드니스의 몸을 숨기고는 급히 한쪽 구석으로 몸을 숨겨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