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4회. 최후의 전투】
흑연이 한차례 몰아치다 이내 전장에 도망쳐 온 클루드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꽤나 익숙한 공간, 메세츠데 궁의 알현실이었다. 새카맣게 그을린 커다란 알현실에 흑연과 함깨 모습을 드러냈으나 이내 힘없이 쓰러지며 고통에 찬 신음을 토해냈다. 아무래도 갑작스레 터진 빛과 함께 근처에 라우엘의 힘이 느껴져서인지 자신의 힘에 굴복했으며 이내 메드니스의 힘으로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고 생각했던 루시의 힘이 갑작스레 폭주한 것 같았다.
"크흐..."
고통이 더욱 강해졌다. 머릿속이 빙글빙글 돌며 멋대로 힘이 폭주하다 사라지길 반복하며 몸속에 자리한 혈관들이 부풀어 오르다 이대로 터지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그럼에 어서 빨리 라우엘에게서 멀어져야 한다는 것이 지배적이었다. 어서 도망쳐 루시의 힘을 다시 억누르며 최후에는 그녀의 힘을 자신의 힘으로 흡수해야 했는데 그러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이미 적들은 자신의 턱밑까지 쫓아와 숨통을 조이고 있었다. 자신의 불찰이었다. 클루드가 지쳐 결국 정신을 잃고 루시의 힘이 같이 약해짐에 벨리알은 이내 승기를 잡고 자신이 이 몸을 차지했다. 생각했는데 그것이 자신의 크나큰 오판이었나보다.
루시페리아, 그녀는 잠시 약해진 척을 하며 지금의 순간이 찾아오기까지 발톱을 갈고 닦고 있었던 것 같았다.
"젠장... 어서.. 도망쳐야 해"
그럼에 어서 도망쳐야 했다. 분명 라우엘은 자신을 쫓고 있을 테니 이렇게 아쉬움을 토로할 시간조차 없었다.
벨리알이 다급히 아귀의 스태프를 꺼내 들며 마나를 끌어 올리려 했다. 그러나 마나가 차오르지 않았다. 겨우 모이기 시작한 마나도 이내 허공에 흩뿌려지며 사라지자. 벨리알의 안색이 창백해져 갔다.
"이런 망할! 루시페리아!! 방해하지 마라!"
벨리알이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아무리 주변의 기운을 끌어모아도 모이지 않았고 아귀의 스태프에 있는 힘을 이끌어내려 해도 그러기가 쉽지가 않았다. 이제는 몸도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은 것 같자. 벨리알의 눈이 분노와 다급함으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었기에 조금은 극단적인 선택이 필요했다. 그럼에 그의 시선이 자신의 손에 닿았고 차츰 손에 들린 스태프의 아래쪽에 날카롭게 되어 있는 부분을 바라보자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실렸다.
"네년도 나와 같이 고통스러울 테지..."
기괴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벨리알이 높이 스테프를 들어 보였다. 동시에 내려쳐지는 스태프는 벨리알의 배를 꽤 뚫자 몸속에서 여인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방해하지 마라!!"
배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동시에 엄습하는 강한 고통과 마치 불에 지진 듯 참을 수 없는 고통에 벨리알도 나지막이 신음을 토해냈으나 그것보다는 그의 몸속에서 들려오는 여인의 비명소리가 만족감을 들게 했다.
"내가 고통을 받으면 너 역시 고통을 받는다. 내가 죽게 된다면 너도 죽는단 말이다. 루시페리아!"
비릿한 미소와 함께 벨리알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동시에 여전히 배에 꽂혀 있는 스태프를 살짝 비틀자 다시 엄습하는 강한 고통에 여인의 비명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이내 스태프를 뽑아들자. 잠시 폭주를 하던 마나가 잠잠해졌다. 그러나 벨리알 역시 고통을 참아내야 했기에 안 그래도 창백하던 안색이 더욱 창백해져 마치 시체를 보는 것 같았다. 그 역시 고통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후우.. 후우."
그럼에 잠시 심호흡을 하며 고통을 이겨내던 벨리알이 다시 한 번 마나를 끌어모으기 시작하자 다행히도 이번엔 마음대로 마나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서 라우엘에게 멀어져 루시의 힘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했다. 그렇기에 아쉽지만 메세츠데를 버리고 다른 곳에 숨어야 했다. 라우엘이 찾을 수 없는 곳, 라우엘이 다가올 수 없는 곳이 필요했다.
"지옥이 있겠으나.. 다시 거기로 가면 돌아오기가 힘들 테니.. 마계, 그렇지 마계로 숨는 게 좋겠어!"
라우엘의 빛이 닿지 않은 곳, 마계 그것이 벨리알의 최선의 선택이라 생각했다. 그럼에 어디로 도망쳐야 할지 정한 벨라일이 서서히 마나를 끌어 올리며 주문을 읊자 그의 앞에 균열이 일기 시작했다. 곧 공간을 이동하는 마법임에 주변의 마나가 거세게 몰아치기 시작했고 균열의 크기가 점차 커지기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벨리알의 뒤편에서 잠시 빛이 폭사했고 뒤이어 루크 아스란과 마리에테가 모습을 보였다.
"루크 아스란! 마리에테!... 결국, 너희들이 또 날 방해하는구나."
빛 무리가 완전히 가시며 보이는 루크와 마리에테를 향해 벨리알이 신경질적으로 이를 갈았다. 이 모든 것이 다 저 둘 때문이었음에 그의 분노가 하늘을 꿰뚫을 정도로 높아져 루크 아스란과 마리에테에게 향해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벨리알의 시선이 가는 것은 루크 아스란 뒤에 그려지는 한 여인의 형상, 여섯 쌍의 날개를 가지고 금발을 가진 여신 라우엘 그녀가 가장 신경이 쓰였다. 완전하지 않은 자신의 몸은 아직 그녀를 상대할 수 없음을 알기에 지금은 도망쳐야 할 때다.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도 목숨을 유지한다면 이 자존심을 회복할 날은 언제든지 올 것이기에 때를 기다려야 했다. 특히 자신의 몸에 점차 약해지는 루시의 힘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했고 그렇다면 저 라우엘도 자신의 힘 앞에 무릎을 꿇게 될 것이리라 생각했다.
"버고 진실을 비춰 줘!"
뒤이어 마리에테가 급히 하나의 거울을 꺼내 벨리알에게 비추자 거울은 이내 벨리알을 비추었고 그 뒤에 한 여인의 모습을 그려내기 시작했다.
"클루드의 영혼은 보이지 않군요... 벨리알, 그대가 결국 클루드를 집어 삼켰지만, 아직 루시페리아는 이겨내지 못했나 보군요?"
마리에테의 말에 루크가 작은 희망을 간직하며 마리에테를 바라봤다. 어쩌면 루시를 다시 데려올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마리에테.."
벨리알이 통탄의 찬 신음을 토해내며 이를 갈며 마리에테를 불렀다. 동시에 루크가 앞으로 나서며 말을 이었다.
"이제 포기하세요, 벨리알, 더이상 도망칠 곳은 없어요!."
"..루크.. 아니지. 지금 네 몸에 있는 건 라우엘인가? 뭐, 아무렴 상관없겠지.."
벨리알이 나름 여유로운 표정을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클루드...그깟 인간 따위가 내 힘을 받아낼 수 가 있을 거라 생각했는가?."
"계약을 하지 않았나요? 클루드는 그 계약을 지켰을 텐데."
"그랬지.. 그렇기에 루시 그 망할 년이 내 몸속에 있는 것이지..."
"그런데 왜 계약을 어긴 것이지요?"
루크의 몸속에 자리한 라우엘이 계속해서 묻자 벨리알이 한차례 웃음을 토해냈다.
"그깟 계약! 내가 살기 위함이다! 그리고 언제나 내 몸을 같기 위함이지... 나는 곧 내 몸에 있는 망할 년의 힘을 흡수한다면 태초의 신조차 어찌하지 못하는 완전무결한 존재가 될 것이다.! 내가 언제까지 지옥에서 살아야 하는가? 왜 너희들이나 인간 같은 존재만이 이런 곳에 자유를 누리는 것이지? 어째서?! 태초의 신은 날 만들어 놓고 지옥에 처박아 두었다.! 애초에 날 만들지 않았으면 되는 것을!"
"당신은 인간들에 죄로 인해 만들어진 그저 형벌일 뿐, 실제로 존재하는 자가 아니니까요."
"그렇기에 내 존재를 되 찾으려는 것이다.! 더이상 지옥은 지긋지긋하다.! 그리고 이간에 의해 내가 만들어졌으니 이것도 그들의 업보일 것이다.!"
"제가 용납하지 않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