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9회. 최후의 전투】
"끄으윽.."
라우엘의 현상이 매우 옅어졌다. 그럼에 점차 루크로 돌아온 몸, 루크의 표정에서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절로 느껴졌다. 그에 비해 벨리알의 표정은 더욱 잔인하고도 후련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더욱 기운을 이끌어내자 루크와 라우엘이 동시에 고통스러운 신음을 토해냈다.
"루, 루시.."
고통스러워하는 와중에도 루크가 루시를 불렀다. 그럼에 계속해서 벨리알의 몸이 움찔거리자 벨리알의 표정이 점차 험상궂게 변했다.
"말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게 좋겠군!."
신경이 쓰여서일까? 자꾸 몸에 루시의 기운이 루크의 목소리에 반응해 꿈틀거린다. 이대로 있다간 루크가 다시 루시페리아를 깨울 것 같은 불안함이 들었던 벨리알의 아귀의 힘이 더욱 강해지자 루크가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커억.. 컥.."
숨을 쉬기 어려운지 컥컥 거리며 몸을 아둥바둥 거렸다. 그럼에 점차 흐려지는 의식 속에 루크의 얼굴도 마치 시체처럼 창백해지기 시작했다.
"크흐흐.. "
이내 루크의 시야가 완전히 점멸되며 빛을 잃기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갑작스럽게 세상이 느려지며 서서히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혹여나 정신을 잃은 것일까? 아니면 자신이 죽은 것일까 싶었으나 그건 아닌 것 같았다. 바로 루크의 귓가에 들려온 목소리 때문이었다.
-루크, 잠시 루시를 만나게 해줄게요.. 그녀를 깨우는 거에요. 당신만이 가능해요.-
"라, 라우엘님?"
라우엘의 목소리가 더는 들려오지 않았다. 대신 완전히 변한 공간, 왠지 모를 익숙한 느낌이 물씬 풍기는 공간이다. 동시에 루크의 몸을 옥죄여 오던 모든 감각들이 완전히 사라지자 루크의 머릿속에 루시의 얼굴이 떠올랐다.
"여긴.."
루크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온통 어둠뿐인 공간 속에, 이내 한 줄기 빛이 자리하기 시작하더니 저만치 앞에 한 여인의 모습이 보였다.
"아.."
마치 제단 위에 몸을 누인듯한 곤히 잠들어 있는 여인의 모습, 긴 흑발의 하얀 피부 이내 루크의 눈가에 눈물이 흘러내리며 천천히 누워있는 여인에게 다가섰다.
"루시.."
루크의 입에서 나지막이 루시의 이름이 불러졌으나. 누워 있는 여인은 어떠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곤히 잠든 것처럼, 그나마 간헐적으로 부풀다 사그라들기를 반복하는 그녀의 가슴을 보며 그녀가 살아있음을 알 수 있었다.
"루시.. 나야.. 루크.. 일어나 봐.. 제발."
잔뜩 떨리는 손으로 쓰러져 있는 루시를 흔들었다. 그럼에 차츰 몸을 뒤척이던 루시가 서서히 눈을 뜨기 시작했으나 그녀의 얼굴은 너무나 초췌해 보였고 어떠한 생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살아있는 시체와도 같이, 너무나 안쓰럽고 불쌍하게 보이자 루크의 눈가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루..크..?"
이내 힘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은 루시의 목소리가 루크의 귓가에 닿자 루크가 힘겹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야.. 루시.. 알아보겠어?"
"헤헤... 당연히.. 알아보지.. 루크.. 많이 수척해졌어.."
얼마나 힘들었는지 목에 쇳소리가 긁혀 나올 정도로 쉰 목소리로 힘겹게 미소를 그리는 루시의 모습에 루크의 얼굴에 눈물이 한차례 흘러내렸다.
"보고 싶었어.."
"나도 보고 싶었어."
루시의 앙상하게 마른 손이 천천히 들려 루크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냈다. 그럼에 루크도 그녀의 손을 맞잡아 주며 대답했다.
"널 구하고 싶어.."
"..헤헤.."
"어떻게 하면 널 구할 수 있는 거야?"
"...무리야... 알잖아.."
그녀의 씁쓸한 목소리에 루크의 얼굴에 왈칵 눈물이 터져 나왔다. 이미 루시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포기한 듯싶었다.
"그러지 마. 제발! 포기하지 말아줘 루시!.. 나랑 같이 돌아가자... 우리 약속했잖아... 그 약속 잊은 거야?"
"약속?"
"모든 일이 끝나면 다 같이 여행하러 가자고 했잖아... 가야지... 안 그래?"
"...아...헤헤.. 그랬지.."
여전히 힘겹게 미소를 그리며 루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이내 루시의 표정이 다시 슬픔을 띄며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그 약속 못 지킬 것 같아.. 루크.."
"무슨 소리야.. 그렇지 않아..."
"미안해.."
"그런 말 하지 마! 루시.. 나랑 평생같이 있겠다며.."
루시의 표정이 너무나 슬퍼 보였다. 그녀 역시 울음을 꾹 눌러 참는 모습인 것 같았다.
"미안해..."
"제발 그런 말 하지 말아줘.."
"미안해.. 루크.. 울지마.."
루시의 커다란 눈망울에도 이내 습기가 찼다. 그러면서도 루크를 향해 울지 말라는 그녀가 힘겹게 손을 들어 루크의 눈물을 닦아냈으나 그마저도 힘이 드는지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웃어줘... 제발.. 날 위해..."
"루시.."
"그리고... 날 죽여줘.. 더이상 버티기 힘들어. .아파.. 나 너무 아파.."
"루시.. 난 널 죽일 수가 없어.."
"아냐.. 너만이 가능해.. 라우엘이라면 불가능하겠지만.. 넌.. 넌 가능해. 넌 날 사랑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