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0회. 최후의 전투】
루크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루시는 오히려 웃음을 보였다. 어떻게든 슬픔을 꾹 눌러 참으며 미소를 보였으나 그 미소마저 슬프게 보였다.
"루크....."
"..."
"루크..."
"응..."
"날 죽여줘... 제발.. 이 고통 속에서 날 해방시켜줘...나 너무 힘들어."
"... 널 잃고 싶지 않아.. 난 널 죽일 수 없어. 내가.. 내가 어떻게 널."
"...."
"너와 헤어지고 싶지 않아."
".. 헤어지지 않아.. 난 언제나 너의 마음속에 평생 있을 거야... 그러니.. 이 고통 속에서 날 해방시켜줘.. 루크.. 부탁이야.. 내가, 잠시 벨리알의 힘을 막을게 그러니 그때가 기회야."
"루시.."
루크가 떨리는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어준다. 그럼에 보이는 그녀의 미소, 그동안 너무나 보고 싶었던 그녀의 미소가 루크의 손끝을 타고 온몸을 슬픔으로 적셨다. 이내 루크의 얼굴이 천천히 루시에게 가까워졌다. 이내 완전히 가까워진 서로의 얼굴 서로의 입술이 하나가 되어 겹치자. 지난날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피어올랐다. 그녀와 함께했던 모든 일들, 모든 말들이 떠올라. 차마 눈물을 감출 수가 없었다.
"사랑해..."
나지막이 들려오는 루시의 목소리, 루크가 이내 그녀를 보며 힘겹게 미소를 짓는다.
"사랑해.. 루시."
"고마워...웃어줘서.."
그 말을 뒤로 루시의 모습이 점차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루크의 입술에 닿은 그녀의 달콤하고도 따듯함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하자 루크의 눈에 파문이 일다 다시 눈물이 터져 나왔다.
"루시.. 루시... 루시! 제발.. 제발!"
"안녕.."
이내 완전히 사라지는 루시의 모습. 동시에 거치기 시작하는 주위의 배경, 어둠이 완전히 무너지기 시작했고 차츰 현실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럼에 보이는 광경은 머리를 부여잡으며 고통에 찬 신음을 토해내고 있는 벨리알의 모습이 보였다. 더는 루시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루시.."
루크의 입에서 나지막이 루시를 불렀으나 더이상 들려오는 대답도 없었다. 그럼에 루크의 발치 앞에 떨어져 있는 란치아의 창이 눈에 들어왔다. 살며시 빛을 머금고 몸을 떨고 있는 란치아의 창, 어서 빨리 자신을 들고 벨리알을 찌르라고 아우성치는 것 같았다.
"루시.."
루크가 눈물이 가득한 얼굴로 천천히 란치아의 창을 들어 보였다. 그럼에 루시에게서 전해 받은 온기가 루크의 몸을 타고 흐르며 정신을 맑게 해준다. 마치 루시가 자신의 옆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자 루크의 몸에 작은 떨림이 서서히 잦아들며 창끝이 곧아졌다.
"무,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이냐.. 나, 날 죽이면 루시페리아! 그년도 죽는다 루크 아스란!!"
란치아의 창을 들고 있는 루크를 향해 벨리알이 소리쳤다. 그러나 그 의기양양하던 모습도 점차 굳어지기 시작했다. 이미 울음을 터트리면서도 천천히 창을 들어 보이는 루크의 모습 때문이었다.
"머, 멈춰라.. 네가.. 날 죽인다면.. 네가.. 네 손으로 루시페리아 그년을 죽이는 거랑 다름이 없단 말이야!"
"알아... 알기 때문에.. 내가 하는 거야.."
눈물을 흘리면서도 루크의 표정에 단호함이 서려 있었다. 그럼에 벨리알도 무언가 불안한 느낌을 받았는지 고통에 찬 머리를 부여잡으며 뒷걸음질쳤으나. 이내 몸도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은 듯, 신경질적으로 허공에 대고 소리쳤다.
"제, 젠장.. 루시페리아!! 놓으란 말이다! 내 몸에서 떨어지란 말이야!!"
"미안해.. 루시.. 미안해.."
루크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왠지 벨리알의 모습을 통해 힘겹게 미소를 그리고 있는 루시의 모습이 아련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그럼에 더는 시간을 끌 수가 없었다.
"미안해.."
"그, 그만둬! 그만두라고!! 그만둬!!!"
이내 루크의 창이 벨리알의 심장을 뚫고 지나갔다.
"커억.. .컥..."
한움큼 터져나오는 핏물, 벨리알의 얼굴이 경악과 절망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조금 전의 의기양양함은 온데간데 보이지 않았고 여전히 고개를 저으며 현실을 부정했다.
"미안해.. 루시.. 미안해.."
"이, 이럴 수 없다.. 이럴 수 없어.. ..커억.."
점차 느껴지는 고통 속에, 현실을 부정하는 벨리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점차 강해지는 고통과 자신의 심장을 타고 들어오는 차가운 강철의 느낌이 그에게 현실을 깨닫게 해주자. 벨리알의 시선이 루크에게 향하다. 다시 자신의 심장을 뚫고 지나간 란치아의 창으로 향했다.
"미, 믿을 수 없다.. 내가... 내가.. 고작 인간에게 죽는다고?..."
"그래, 난 마나의 저주를 받아 어떠한 힘도 없어, 평범한 사람들보다 약한 존재야. 네가 하찮게 여기는 나약한 존재란 말이야. 하지만 넌 나에게 죽게 되는 거야! 벨리알!"
루크가 울부짖으며 소리쳤다. 동시에 란치아의 창이 점차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이내 강력한 빛이 차츰 벨리알의 힘을 흡수해가기 시작하자. 추악한 벨리알의 얼굴이 사라지며 그 안에 있는 클루드의 모습을 띠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벨리알의 힘이 약해지고 있어서 그런 듯싶다.
"아, 안 돼.. 고, 곧... 곧 끝나가는데.. 이대로.. 이대로 죽을 수 없어...."
"너만 없었다면, 네가 세상에 나타나지 않았다면! 루시를 잃지 않았을 텐데.. 다 당신 때문이야. 이 모든 게 너 때문이라고! 너 때문에 루시가 다시 슬픔을 겪는 거야. 그러니 난 당신을 막아야 해. 그래야만 한다고."
"망할...루, 루크... 아스란!!!"
벨리알이 울분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으나. 결국, 그 말을 끝으로 란치아 창에서 폭사 되는 거대한 빛이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 빛은 이내 완전히 벨리알의 모든 것을 삼켜 가기 시작했다.
"아, 안 돼!! 끄아아악!"
아련한 비명과 함께 서서히 사라지는 벨리알의 모습, 더는 벨리알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모습도 클루드로 완전히 변해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다. 동시에 클루드의 몸에서 푸른 빛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동시에 카시오와 마리에테를 가둔 흑연도 차츰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