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3회. 전쟁의 끝】
루크의 얼굴에 여전히 눈물이 흘러내렸다. 정말 모든 것이 끝이 났다. 한편으로는 허무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아무래도 모든 것이 끝났는데도 루시의 모습은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인 것도 같다. 주위를 돌아보아도 그 어디에도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벨리알이 사라지고 클루드가 더이상 숨을 쉬지 않았음에 완전히 박살이 난 아귀의 스태프에선 수많은 영혼들이 자유를 되찾았으나 여전히 루시만은 보이지 않았다. 그 어디에도 그녀의 따듯한 온기가 느껴지지 않자. 진정으로 그녀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 실감이 되어 루크의 얼굴에 슬픔이 가시지 않았다. 이내 라우엘이 루크에게 다가왔다.
"루크.."
"그녀는.. 어디에 있나요?.. 완전히 사라진 건가요?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건가요?"
루크가 나지막이 물었다. 이내 그의 슬픈 눈이 라우엘에게 향하자 라우엘의 눈가에도 빛으로 반짝이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럼에 대답하지 않아도 루크는 알 수 있었다. 루시는 더이상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을 말이다.
"신이 죽으면.. 신은 어디로 향하죠?"
"... 신은.. 신이 죽으면 그대가 겪었던 곳이 아닌 오직 태초의 존재의 곁으로 가지요, 그곳에서 몇 년, 아니 몇싶 년, 몇백 년 잠들어 있게 돼요 그리고 그 상태에서 루시페리아가 언제 다시 깨어날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어요."
"소멸이 된 건 아닌가요?"
"신의 소멸은 오직 태초의 존재만이 가능해요. 루시는 잠들어 있으면서 그동안 태초의 신에게서 심판을 받게 될 테죠. 거기서, 태초의 신께서 정하실 거에요 그녀를 소멸할지 아닐지.."
라우엘의 말을 들은 루크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내 잠시 머리가 어질어질해 균형을 잃고 넘어질 뻔했으나 라우엘이 그런 루크를 잡아 줘 넘어지는 것은 면했다.
"심판..."
"그래요.. 신으로서 보였던 그간의 행동, 그녀가 했던 모든 말, 모든 감정, 그 모든 것들을 전부 심판받게 돼요. 그리고 시간이 지나 태초의 신께서 심판을 내리겠지요. 소멸, 또는 기억을 잃고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던가."
"루시가 절 다시 볼 확률은.. 그럼..."
라우엘이 더는 말을 잇지 않았다. 그 확률은 희박했으며 자신 역시 태초의 신을 마음은 그 누구도 모르기에 확답을 내릴 수가 없었다. 루크에게 괜한 희망을 줄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루크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았다. 그럼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내며 라우엘을 보며 일렀다.
"그녀는.. 다시 돌아올 거에요.. 기다릴게요. 그녀가 절 기다렸듯이.. 이번엔 제가 그녀를 기다릴 차례인 것 같아요.."
"언제 깨어날지는 그 누구도 몰라요. 루크.. 그대가 살아 있는 동안 루시는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몰라요."
"괜찮아요.. 기다릴 거에요. 언제든.. 제가 늙어 죽을 때가 되어도. 루시를 잊지 않을 거에요."
루크의 모습에 단호함이 서려 있었다. 그럼에 라우엘도 잠시 그를 바라보다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였다. 라우엘의 주변에 모이기 시작하는 푸른 빛의 구들, 라우엘이 그런 푸른 빛을 보며 나지막이 대답했다.
"고마워요 루크... 영혼들이 저를 기다리네요."
"이 빛들은 스태프 안에 갇혀 있던 영혼들인가요?"
"맞아요. 모두, 벨리알에게 흡수를 당했거나. 또는, 아귀의 스태프에 갇혀 있게 된 불쌍한 영혼들, 그 영혼들이 모두 루크님에게 고마워하고 있어요."
라우엘의 말마따나 빛의 구들이 루크의 주변을 빙글 돌다 다시 라우엘의 곁에 머문다. 그럼에 루크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전.. 예전이나.. 지금이나 딱히 한 게 없어요."
루크가 씁쓸하게 대답했다.
"모두.. 루시의 덕분이에요...그리고 다른 분들의 덕분이구요.."
루크가 라우엘의 뒤편에 자리한 마리에테와 카시오를 바라봤다. 그럼에 라우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모두가 힘을 합쳐 성공할 수 있었던 거지요.. 그렇지! 가기 전에, 당신에게 마지막 선물을 드리고 싶네요."
"선물이요?"
라우엘이 살며시 미소를 머금고는 천천히 루크에게 가까워졌다. 이내 그녀의 입술이 루크의 이마에 닿자 따듯한 온기와 함께 그간 생겨났던 자잘 자잘한 상처들이 완전히 치유가 되었다. 이내 환한 빛이 잠시 루크의 몸을 감싸 안다가 스며들었다.
"당신을 위한, 저의 축복이에요.. 사랑과 인연의 신으로서 그대의 주변에 많은 분들의 유대감은 더욱 견고해지고 강하게 될 거에요."
"... 고마워요.."
"솔직히 이미 당신의 인연은 쉽게 끊어지지 않을 강한 실타래로 엮여 있어서 괜찮겠지만 말이지요. 아무튼! 그동안 고마웠어요 루크! 그대의 희생, 노력, 절대 잊지 않을 거에요.. 미안해지네요 이렇게 억지로 이어진 인연 속에 이렇게 잘 해주었는데 해줄 게 별로 없다는 것이."
"그렇지 않아요. 전 이미 소중한 분들을 너무나 많이 얻었는걸요. 라우엘님 덕분에요."
루크가 고개를 저으며 말하자 라우엘이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그렇게 생각해주셔서 고맙네요.. 루크.. 자.. 그럼.. 이마 가봐야겠네요."
라우엘이 미소를 그리며 살며시 고개를 숙인다. 그럼에 루크도 마주 그녀에게 고개를 숙여주자. 차츰 그녀의 몸에서 빛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다시 한 번 고마워요 루크 아스란. 그리고 마리에테, 카시오 당신에게도요."
그 말을 끝으로 라우엘의 몸에서 빛이 토해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서서히 흐릿해지는 형상, 아무래도 꽤 오래 현세에 있었음에 이제 그만 라우엘이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가야 할 듯싶다.
"언제나 같은 곳에서 그대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그대를 지켜보고 있을게요 루크.. 그대에게 언제나 행복과 사랑이 만연하기를.."
이내 완전히 라우엘의 형상이 사라졌다. 그럼에 마리에테가 살짝 고개를 숙여 보였고 루크 역시 고개를 숙여 그녀를 보냈다. 이내 정적이 찾아온 메세츠데의 알현실 주위에 새카맣게 그을림이 차츰 원상복귀가 되어 가며 본래의 색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덜컹하는 소리와 함께 열리는 알현실의 문, 그 사이로 한달음에 달려오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레이니 누나! 엘레니아 누나까지?.. 안느란테님.. 모두들!"
이내 한달음에 달려온 레이니가 루크를 덮석 껴안았다. 뒤이어 엘레니아와 안느란테까지 루크를 껴안아 주자. 왠지 차갑게 식어버린 마음에 다시 따듯한 온기로 채워지는 듯 싶어 입가에 은은한 미소가 피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