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루크 아스란 전기-389화 (389/412)

【389회. 전쟁의 끝】

아즈문을 비롯해 마흐무드, 그리고 요르문 간드까지 메세츠데 멸망의 소식과 벨리알이 죽음을 맞이했다는 소식으로 떠들썩했다. 그래서일까? 그 시기에 맞춰 축제를 여는 곳도 있었으며 그렇지 않은 곳도 한창 사람들 사이에서 이야깃거리로 조용한 날이 없는 상태였다. 그럼에 아즈문 역시 메세츠데가 멸망하고 연합군에 돌아옴에 들리는 마을마다 커다란 환대가 계속해서 이어졌으며 아즈문 도시까지 입성할 때까지 그 환대가 끊임이 없었다. 특히 궁으로 향하는 길목까지 연합군을 위한 환영 행렬이 길게 늘어 서 있었으며 모두 꽃잎을 던지거나 지나가는 병사들마다 포옹을 또는 나무로 만든 왕관을 써주기도 했다. 그렇게 연합군이 지크라엘의 선두로 황성에 도착하자 한달음에 나왔는지 어린 황제인 루이서스가 직접 밖으로 나와 승리를 하고 돌아온 지크라엘을 맞이했다.

"재상! 정말 고생 많았어요! 그리고 마흐무드와 요르문 간드의 형제님들 여러분들이 없었더라면 이 전쟁은 끝낼 수 없었을 거에요."

아직 어린 황제인 루이서스가 열심히 준비했는지 모두를 보며 기죽지도 않고 또박또박 말을 이어간다. 그럼에 지크라엘의 표정에 대견함과 함께 깊은 신뢰감이 느껴졌고 연합군의 얼굴에도 따듯한 미소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자, 모두 지쳤을 테니 어서 황궁으로 들어오세요! 여러분을 위해 많은 준비를 했답니다.!

그렇게 아즈문도 연합군에 도착함에 바로 환영식과 함께 병사들을 위한 축제가 한창 이어지고 있었다. 성 내에서도 성 밖에서도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축제가 한창 이어지고 있었고 밤늦은 시간이 되어도 그 축제의 열기는 쉽사리 잦아들지 않았다.

지크라엘도 그러한 축제의 열기 속에 지친 몸을 이끌고 즐기다 보니 더이상 버티기 힘들어 잠시 방으로 빠져나오게 되었다. 아무래도 이제 나이가 제법 차 있는지라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축제를 즐기는 것엔 몸이 따라주지 않은 것 같았다. 게다가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연거푸 마시니 머리도 알딸딸한 것이 금방이라도 취해 쓰러질 것만 같았다.

그렇게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지크라엘이 하녀가 받아 놓았는지 따듯한 물에 잠시 얼굴을 닦아내자 그제야 알딸딸한 정신이 조금씩 돌아오며 그제야 전쟁의 승리 했다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무언가 믿기지 않았다. 그동안 있었던 수많은 일들이 마치 꿈을 꾸은 듯싶었다. 그러나 차마 꿈이었다고 생각하기에는 이 일들로 인해 너무 많은 무고한 이들이 피를 흘렸다. 그런데 이렇게 즐겨도 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도 했다.

과연 이렇게 즐겨도 괜찮은 것인가? 이 순간을 위해 죽어나간 모든 이들에게 슬퍼하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물론 내일 쯤에 죽어나간 병사들을 위해 장례식을 치룰 것임이 분명한데도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무거웠다.

다시 찾아온 우울함, 전쟁을 하면서 생긴 이 우울증은 아무래도 쉽사리 치료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후.."

길게 한숨을 토해낸 지크라엘이 침대 위에 몸을 누었다. 천장이 빙빙 돌며 취기가 조금씩 올라온다. 아무래도 술을 너무 많이 마신 것 같았다. 그럼에 눈을 감으니 지난 일이 마치 주마등처럼 그려진다. 병사들의 비명, 여기저기 들려오는 폭음과 괴수들의 울음소리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다. 뒤이어 죽어나간 병사들이 힘겹게 몸을 일으키며 지크라엘을 향해 소리친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그런 병사들을 무심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이미 누군가의 죽음을 보는 것은 무덤덤해졌다. 그들이 울부짖으며 살려달라고 하는 모습 역시 익숙해졌다. 오직 승리를 위한다는 일념하에 아즈문을 위해 맞서 싸운 그들의 죽음을 무덤덤하게 받아들인다. 그럼에 자신의 모습이 마치 악마와도 같게 느껴졌다.

동시에 주변이 이글거리며 불타오르기 시작했고 입에선 허연 입김이 터져나올 정도로 추위가 느껴졌다. 다급하게 주위를 돌아보자 승리를 만끽하던 병사들이 이내 불타기 시작했고 참혹하게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동시에 무언가 그림자가 다가왔다. 절로 몸이 떨리며 두려움이 느껴진다.

점차 가까워지는 실루엣 이내 어둠이 거치고 가장 보기 싫었고 가장 자신을 두려움에 떨게 했던 벨리알이 모습을 드러냈다.

"으악!!"

지크라엘이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아무래도 눈만 감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그 세 잠들었나 보다.

참으로 기분나쁜 꿈이다.

"후우..."

아무래도 전쟁 후유증인 것 같았다. 이내 지크라엘이 침대 옆에 있는 물주전자에 물을 한 컵 따라 마시며 목을 축이자 기분이 조금은 나아졌다.

-똑똑-

그때였다. 잠시 머릿속을 가다듬고 있을때 문 밖에서 들려오는 노크소리에 지크라엘이 피로한 몸을 들어 입을 열었다.

"누구세요?"

"저에요 루미에르."

뜻밖에 목소리에 지크라엘이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키며 곧장 문으로 다가갔다.

"들어오세요! 황후님!"

이내 문을 열고 의자를 가리키자 루미에르가 살짝 고개를 숙여 보이며 의자에 앉았다. 이내 갑작스런 황후의 방문에 의아함을 가진 지크라엘이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가 환하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지크라엘에게 말했다.

"그동안 수고 많았어요. 지크라엘. 결국 그대의 연합군이 메세츠데를 무너트렸군요."

"아닙니다.. 저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이 모두 힘을 내준 덕분이지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일을 한 것은 제가 아닌 루크라는 그 아이입니다."

"루크.. 가요?"

지크라엘의 말에 루미에르의 표정이 살짝 파문이 일며 놀란 토끼 눈이 되어 되묻자 지크라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습니다. 초대 현자이신 마리에테님과 함께 성으로 가 벨리알을 무찔렀다. 들었습니다."

"그랬군요..."

"지금 방에서 쉬고 계실 마리에테님에게 물어보시면 그때의 상황을 자세히 들을 수 있을 겁니다. 저희도 돌아오는 길에 언뜻 들은 게 다라 제대로 듣지 못해 궁금한 게 많았지만 좀 쉬게 해줘야 한다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곧 루크 아스란도 깨어나면 황성에 입궁하라 일러두었습니다."

"깨어나면 이라니요? 루크에게 무슨 문제가 생겼나요?"

루미에르의 표정에 걱정이 가득했다. 그것도 루크에 대한 걱정으로 보이자 지크라엘이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것이... 얘기를 들어보니 벨리알을 무찌른 직후 정신을 잃었다고 합니다. 마리에테님의 말엔 심력을 많이 소비해서 잠시 잠들어 있는 거라 했는데 그게 며칠째 일어나질 못해서."

"그런!"

루미에르가 갑작스레 몸을 일으켰다. 동시에 안절부절하지 못하는 그녀의 모습에 지크라엘의 머릿속에 지난 지크문드와 데미아스와의 얘기가 떠올랐다. 루미에르에게 새로운 사람이 생겼다는 이야기 이내 지크라엘도 덩달한 심각한 표정이 되어 루미에르를 불렀다.

"루미에르님?"

그러나 들려오는 대답이 없다. 무슨 고민에 빠진 것인지 자신이 부름에도 그녀는 깊은 상념에 빠져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니 분명 루크 아스란과 어떠한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점차 확고해지기 시작했다.

"루미에르님!"

"예?"

조금 언성을 높여 그녀를 부르자 그제야 루미에르가 반응한다. 지크라엘이 조금은 의심스런 눈초리로 말을 이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십니까?"

"아.. 그, 그게."

너무나 수상하다. 자신의 눈을 피해 얼굴을 붉히는 그녀를 보면 말이다. 점차 자신의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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