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1회. 전쟁의 끝】
아즈문 황성 지하에 위치 한 감옥이었다. 메세츠데 감옥과는 다르게 그나마 반 지하의 형태로 되어 있어 쇠창살로 만들어진 창문에는 자그맣게 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공기의 순환도 나름 잘 되어 있어 코를 찌르는 듯한 지하의 악취도 덜했다.
그나마 있는 것이라곤 몇몇 쥐들이 다이지만. 메세츠데 감옥보다는 훨씬 아늑함을 주는 감옥 한구석에 유일하게 스완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언제나 똑같이 무심한 표정과 마치 석상처럼 굳은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같은 자세로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목석 같은 그에게 작은 파문이 일게 하는 소리가 쇠창살을 비집고 새어 들어오기 시작했다.
무언가 기쁨을 맞이한 환호성, 동시에 흥겹게 울려 퍼지는 악기 소리 스완의 몸이 점차 떨려오기 시작하며 파문이 일었다.
이내 움직이지 않을 것 같던 그의 몸이 천천히 몸을 일으키자. 한동안 굳어 있던 뼈마디가 아우성을 쳤다. 이내 창문에 귀를 가져다 대며 무언가 다른 소리가 들려오진 않을까? 싶었으나 뭉게져 들려오는 소리에 이들이 무었때문에 이리도 환호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결국 스완은 몸을 움직이여 자신을 가로 막고 있는 커다란 쇠창살 사이로 머리를 내미니 저 앞에 무언가 불만으로 가득 차 있는 감옥의 간수가 보였다.
스완이 오랜만에 입을 열었다.
"이보시오."
갑작스런 스완의 행동 때문일까? 스완이 이렇게 입을 열어 자신을 부르는 것이 처음인지라 감옥을 지키는 간수는 불만이 가득한 표정에서 이내 조금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변해 스완을 바라봤다. 혹여나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 아닌가 싶었는지? 스완의 부름에도 어떠한 대답도 행동도 보이지 않고 멍하니 바라보자 스완이 다시 인상을 쓰며 그를 불렀다.
"이보시오... 혹시.. 바깥이 왜 이렇게 시끄러운지 알고 있소?"
"흠, 흠.. 자네가 말을 할 줄 알았다니 오늘 처음알았군.. 그러고보니 자네? 메세츠데의 간부라 했었지? 그래서 말을 하는 건가? 쯧쯧! 자네는 이제 돌아갈 곳이 없어, 메세츠데 놈들 멸망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어. 그 뭐야. 그들을 이끌고 있는 그 악마 같은 놈 말이야? 죽었다고 하더군! 자네의 상관이 죽었어! 꼴 좋다 좋아!"
"정말이오?! 그 말이 정말 사실이오?"
스완이 눈이 커지며 조금씩 파문이 인다.
"허허! 그렇다니까? 쯧쯧! 왜 하필 자네 같은 엘프가 메세츠데 진형에 손을 잡아서. 쯧쯧... 자네도 이제 사형을 당할지도 모르겠구먼! 그렇다면 나도 이 지긋지긋한 곳에 나가 축제를 즐길 수 있을테지!"
"...그런....그런.."
더는 간수의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스완이 떨리는 몸으로 이내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럼에 간수가 혀를 차며 스완에게 계속해서 뭐라 하는 것 같았으나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클루드의 죽음, 벨리알의 죽음! 믿기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왈칵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가 죽음으로서 자신이 지키려 하다 지키지 못했던 일족들이 모두 대지의 품으로 안식을 되찾았을 거라 생각하니 기쁨의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얼마나 힘들었던가. 하이엘프로서 자신의 종족을 지키지 못하고 그 영혼을 지옥과도 다름없는 곳에 갇히게 했음에 결국 악마의 편에 서서 무고한 자들에게 눈물을 흘리게 했고 무고한 자들에게 피를 흘리게 했다. 어떻게든 무덤덤하게 자신의 표정을 가리기 위해 마스크를 착용했음에도 가슴 속으로 얼마나 울고 고통스러웠던가 이제 모든 게 끝이었다. 더이상 그러한 고통 속에 살지 않아도 되었다.
"미안하오..정말 미안하오..."
스완이 나지막이 울음을 토해내며 사죄를 하자 그 속 뜻을 모르는 간수가 이내 고개를 설레설레 저어 보인다.
"정말 미안하오.. 모두들.. 정말..."
지키지 못한 가족들을 위해, 지키지 못한 영토를 위해 그리고 지난날의 과오를 위해 그는 연실 사죄를 했다. 특정 누군가를 위함이 아닌 모든 이들을 위해 사죄를 하고 또 사죄를 했다. 그럼에 그 사죄를 알아주는 것일까? 어디선가 스완의 주위에 푸른 빛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동시에 하나에서 두 개로 둘에서 셋으로 그 푸른 빛의 수가 늘어나자 간수가 놀라 자빠지며 소리쳤다.
"에, 에구머니나! 이게 뭐야.. 서, 설마 마법을 사용하려는 것이야? 이제와서 발악은 무의미하다고! 젠장! 하필 내 시간 때 이런 일이! 다른 사람을 불러와야겠어!"
무어라 다급하게 중얼거리던 간수가 황급히 감옥을 나서려 했다. 그러나 그러한 행동은 마침 감옥으로 들어오는 한 사내와 엘프 여인에 의해 막히게 되었고 사내가 조용히 손짓하며 간수를 내보내자. 간수는 여전히 놀람 반, 의아한 표정 반의 얼굴을 보이며 얼떨결에 감옥 밖으로 나가야 했다. 그럼에 감옥에는 스완을 비롯해 마침 들어온 엘프 여인과 사내만이 남아 스완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이제는 황금의 갑옷을 벗어 던지고 일반 예복을 입은 지크라엘과, 그녀가 항상 애용하던 푸른 로브와 은발을 길게 늘어트려 가지러니 정리한 마리에테였다. 그 들은 이내 스완이 있는 곳으로 향하니 푸른 빛의 구가 스완의 주위를 맴돌고 있는 것을 보게 되자 지크라엘이 작은 탄성을 토해냈다.
"멋지군.."
"푸른 바다 일족의 영혼들이에요.. 영혼에서까지 바다의 향이 짙게 풍기는 군요.. 아무래도 벨리알이 죽고 이들도 자유를 되찾았나 봐요.."
마리에테가 빛의 구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대답했다. 이내 스완의 앞에 다가선 둘, 이내 마리에테가 연실 누군가에게 사죄를 들이고 있는 스완에 앞에 서며 그를 불렀다. 그럼에 연실 오열을 하고 있던 스완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마리에테를 바라봤다.
"끝났어요.. 스완.."
마리에테의 고운 목소리가 스완의 귓가를 지나 마음에 닿았다. 그럼에 스완이 힘겹게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그들에게 당신의 목소리가 닿았나 봐요. 그들은 지금 너무나 행복해하고 있어요. 안식을 되찾았다는 것에.. 이제 이들은 편안하게 대지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에요.."
마리에테가 미소를 그리며 빛의 구를 바라보며 말하자 스완이 힘겹게 고개를 끄덕이며 이내 입을 열었다.
"고맙소.. 마리에테... 지크라엘.. 그리도 모두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소.."
"마땅히 해야만 할 일이오."
지크라엘이 무심하게 대답했다. 뒤이어 마리에테가 스완을 향해 말을 이었다.
"...그럼 이제 슬슬 이들을 보내줘요. 당신 때문에 아직 이렇게 떠돌고 있으니까요. 그대의 마지막 인사로 이들을 대지의 품에 보내주세요."
마리에테가 스완에게 손을 내밀며 말하자 스완이 조심스럽게 마리에테의 손을 맞잡아 몸을 일으켰다. 그러곤 빛의 구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했네.. 그대들이 힘들게 일궈 낸 땅을 지켜내지 못해 미안했네.. 이런 나를 평생 욕해도 좋네. 평생 저주해도 좋네.. 그러나 그대들은 더이상 고통받지 않았으면 좋겠네.. 더이상 영혼마저 고통을 겪지 않기를 바라네.. 그대들의 고통, 슬픔, 분노 모든 것을 내가 가져갈 테니.. 부디 안식을 찾기를 바라겠네.."
스완이 천천히 고개를 숙여 보이며 마지막 인사를 하자 수많은 빛의 구가 스완의 몸을 마치 춤을 추듯이 빙그르 돌았다. 마치 그를 용서한다는 듯이 그럼에 보이는 황홀경 속에 지크라엘과 마리에테가 탄성을 토해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둘씩 이내 그 빛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에 스완이 다시 울음을 토해내기 시작하자 마리에테가 조심스럽게 스완의 팔을 붙잡아 주며 온기를 나누어주었다.
"이제 돌아가요 스완.. 그대의 일족과 영토를 다시 일궈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