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4회. 전쟁의 끝】
그럼에 루크의 여인들도 이렇게 될 줄은 어느 정도 예상은 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럼에도 혹여나 루크의 주변에 또다시 다른 여자들이 생기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 것에 다행히도 루크는 더이상 여자를 늘리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냄으로 그 불안감이 조금은 해소가 된듯싶었으나 그래도 불안한 것 같았다.
바로 루크의 여인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추파를 던지는 귀족 영애들의 모습 때문이었다. 그럼에 점차 여인들의 표정이 굳어져만 갔고 그 수가 많아짐에 어서 이 파티가 끝나기만을 바라기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안녕하세요 공작님?"
이젠 이름이 아닌 공작으로 불리는 루크에게 아직 익숙지가 않은 루크가 멋쩍게 웃으며 이내 소리가 들린 곳을 바라보았다.
"아..예?"
"반가워요 공작님.. 혹시 절 아시나요? 아주 오래전에 한 번 만나 뵌 적이 있었는데 말이지요"
보라색 드레스를 입었고 약간 동글동글한 얼굴과 눈망울을 가진 여인의 모습에 루크는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나지 않아 멋쩍게 웃어 보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아직 견문이 짧아.. 괜찮으시다면 성함을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말해주시면 다음에는 꼭 기억하겠습니다."
루크의 사과의 여인이 다시 한 번 미소를 그리며 대답했다.
"괜찮아요 공작님 저는 라이올린 아가란이라 해요 아가란 백작님의 딸이지요."
"아! 아가란 백작님의 자제분이셨군요. 같이 전쟁에서 만나 몇 번 대화를 나눈 기억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대단하신 분의 영애셨군요!"
"호호홋! 감사합니다. 공작님! 그나저나 언제 한 번 아가란 영지에 들려주시면 좋겠어요 저희 아버지도 루크님과 심도 깊은 대화를 하고 싶어 하신걸요 저도 그렇고."
라이올린 아가란이 조금씩 루크에게 가까워지며 이내 콧소리 섞인 어투로 말을 하며 루크의 팔을 잡아챈다. 그러면서 자신의 가슴에 가져다 대더니 더욱 요염하게 변한 목소리로 귓가에 속삭이자 루크가 난감한 얼굴을 보이며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 예 언제쯤 한 번 찾아뵙겠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오늘 밤도 전 괜찮은데.."
"그, 그건 좀.. 하하.."
너무나 노골적으로 유혹하는 라이올린 아가란의 모습에 루크가 당황하며 급히 그녀에게서 손을 빼내려 했으나 오히려 더욱 강하게 부여잡는 팔에 도저히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손을 빼내려 움직이려 하면 그녀의 가슴에 닿아 그녀가 얼굴을 붉혔기 때문이었다. 그럼에 느껴지는 따가운 시선, 루크의 등이 불탈 것만 같은 이 따가운 시선에 점차 난색을 표하기 시작했으며 식은땀이 삐질 흘러내릴 때였다. 루크를 구원해주는 목소리가 다가왔다.
"여기서 뭐 해? 설마 또?"
"그, 그게 아니라.."
로제스가 매력적인 미소를 지어 보이며 루크의 손을 잡고 있는 라이올린 아가란의 손을 쳐내었다.
"아얏! 무슨 짓이야? 로제스! 이 천한 년이?! 감히 어어디 대고 그 더러운 손으로 감히 내 손을 쳐?!"
라이올린이 불쾌한 표정을 그대로 보이며 로제스를 향해 쏘아붙였다. 그러나 로제스는 오히려 방긋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루크의 옆에 달라붙어 대답했다.
"무슨 문제라도 있어? 왜? 이제는 제이스 무아란이 죽고 이제 루크에게 달라붙을 속셈인가 봐? 정말 넌 박쥐 같은 년이구나?"
로제스가 비릿한 웃음과 함께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묻자 라이올린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지며 다급하게 소리쳤다.
"뭐야?! 돈 주고 귀족이 된 천박한 년 주제에?! 공작님! 그대도 아시나요? 이 천한 년이 귀족을 욕보였다는 것을! 그녀는 돈을 주고 귀족이 된 천박하고 더러운 상인의 계집이란 것을 말이에요! 아직 몰랐던 것 같은데 어서 그 천한 것을 떼어 내세요!"
라이올린의 성난 목소리가 꽤나 컸나 보다. 주변에 있던 귀족들이 삼삼오오 모여 소란에 주목하기 시작하자 라이올린 아가란이 이내 비릿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로제스를 바라본다. 그럼에 라이올린이 더욱 크게 소리쳤다.
"어서요! 루크! 저런 천한 년 때문에 우리 귀족들이 욕보일 순 없어요! 어디 천한 피를 가진 계집년 주제에! 더럽고 역겹네요 네년이 어디라고 여길 오는 거고 누구를 붙잡는 거야?!"
"후.. 그만 하세요 라이올린 아가란."
"예?"
조용히 라이올린의 말을 듣고 있던 루크가 더는 듣기 힘들었는지 나지막이 내려앉은 목소리로 차갑게 대답하자 라이올린이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럼에 루크의 표정이 차갑게 식어버리고 이내 날카로워지며 라이올린을 노려보자 그녀가 흠칫 놀라 몸을 움찔거렸다.
"그 더러운 입을 좀 다물라고 했습니다. 라이올린."
"무, 무슨? 루, 루크 아스란 공작님?"
"그리고 그 더러운 입으로 제 이름을 부르지 말아 주었으면 좋겠어요. 그대는 지금 제 아내가 될 사람을 욕보이고 있어요 그것도 모두가 보는 앞에서 공개적으로 말이지요. 그렇다는 것은! 곧 저를 모욕하는 것과 같다고 배웠습니다. 그대는 고작 백작의 딸, 아직 귀족의 호칭을 받지 못한 그저 운이 좋은 평범한 일반인이나 다름없다는 것이지요 그에 비해 전 위대하신 황제 폐하와 재상 지크라엘님으로부터 공작의 직위를 받은 몸, 그리고 제 아내가 될 분은 저와 같은 한몸이기도 한데 이리도 공개적으로 치욕을 준다는 것은 곳 저를 모욕하는 것이고 나아가 그대가 오히려 귀족 전체를 모욕하는 것이겠지요. 그 말은 즉 슨 제가 그대를 죽여도 상관없다는 뜻이 겠지요? 증인이 필요하다면 여기에 모이신 모든 분들이 제 증인이 되어 줄 겁니다."
차분한 어조로 분노를 쏟아내고 있는 루크의 목소리에 라이올린의 심장을 후벼팠다. 그럼에 흠칫 몸을 떨며 주변을 바라보자 어느새 여론은 변해있었다. 이미 한껏 달라진 분위기는 모두 자신을 탓하고 있었고 그런 귀족들이 모두 자신을 바라보며 소곤거리는 모습은 마치 자신을 향해 욕을 하고 있는 것만 같아 보였다. 그럼에 창백해진 얼굴로 다시 일렀다.
"아, 아내라니요.. 저, 저 천한.. 계, 계집을.."
"또 모욕하시는 겁니까? 말하지 않았습니까? 제 아내를 모욕하는 것은! 저와 저 가문을 모욕하는 것이라고! 결국 아스란과 아가란이 서로 피를 보아야겠습니까?"
루크의 차가운 말을 뒤로 어느세 레이니의 허리에 찬 검 레오니르가 뽑혀 나와 라이올린을 겨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