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루크 아스란 전기-395화 (395/412)

【395회. 전쟁의 끝】

"히익! 그, 그게 전.. 그런 뜻이.."

"다시 한 번 제 여인에게 함부로 대한다면 이번엔 목을 베겠습니다. 제가 그대를 봐주는 건 아가란 백작님과 함께 생과 사를 나눈 전투의 현장 속에 같이 생활한 전우애 때문이기도 합니다. 절대 그대를 위해 자비를 내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군요! 그렇기에 오늘 단 한 번뿐입니다. 다시 한 번 그 걸레를 문 입이 제 주변 사람들에게 닿게 된다면. 혀부터 시작해 마지막엔 목까지 차근차근 베어버릴 겁니다."

"..."

"더 할 말 있습니까?"

루크의 말에 하얗게 질린 라이올린이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 잔뜩 겁을 집어먹은 그녀로서는 자신의 목에 겨누어진 검과 살벌하게 느껴지는 차가운 루크의 표정과 말에 너무나 두렵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좋아요. 누나 그만 검을 거둬도 될 것 같아요."

그럼에 라이올린을 겨누던 레이니의 레오니르를 치우며 검집에 꽂아 넣자. 단 한 수의 기다란 검이 검집에 꽂아 넣는 솜씨는 화려한 기예와도 같아 절로 감탄을 자아낼 정도였으나 라이올린에게는 감탄 대신 더욱 큰 두려움을 일게 했다. 다시 한 번 검에서 빛이 번뜩이면 기예고 뭐고 자신의 목이 떨어질 위험이니 말이다. 어찌보면 레이니의 모든 행동이 자신을 향한 경고와도 같았다.

그렇게 레이니의 검이 모습을 감추고 루크의 표정도 다시 평소대로 돌아오자 그제야 라이올린이 긴장이 풀렸는지 조금씩 뒷걸음질쳤다.

"더이상 할 말이 없다면 이제 좀 쉬고 싶군요.!"

"네..네.."

명백한 축객령에 라이올린이 잔뜩 긴장을 한 채로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루크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뒷걸음질치려 할 때였다.

"잠시만요! 라이올린 아가란!"

이번엔 로제스가 급히 자리에서 도망치려던 라이올린을 붙잡았다.

"뭐. 뭐지..요.."

아무래도 눈을 불을 키고 있는 루크를 비롯해 레이니, 또는 엘레니아나 다른 이들에 모습에 잔뜩 겁을 먹은 라이올린의 입에서 로제스를 향해 자기도 모르게 존대가 튀어나왔다. 그럼에 루크는 이 심각한 분위기 속에 웃음이 터져 나올 뻔 한 것을 간신히 참아내야만 했다. 그만큼 라이올린의 모습이 잔뜩 겁에 질린 생쥐와도 같은 꼴 때문이었다.

"아직 전 사과를 듣지 못했어요."

"뭐?"

로제스가 비릿하게 웃어 보이며 다시 말을 이었다. 동시에 루크가 그것도 그렇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여 동의한다. 생각해보니 가장 심한 말을 듣고 모욕을 받은 것은 루크가 아닌 로제스였기에 그러나 라이올린은 그러한 로제스의 말에 다시 심기를 건드렸는지 겁먹었던 모습은 온 데 간대 사라지고 다시 불쾌한 감정을 내비치며 되묻자 로제스가 인상을 구겼다.

"이젠 귀까지 좋지 않은 건가요? 말했잖아요? 저는 아직 사과를 듣지 못했다고요. 루크는 그대를 용서했을지 모르지만 전 아직 아니거든요. 안 그래요 루크 아스란 공작님?"

루크의 팔을 잡아다 끌어안으며 로제스가 묻자 루크가 일말의 고민도 없이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사과는 하고 가셔야 옳은 일이 아닐까요? 라이올린? 그대가 이 나라의 특혜를 받아 귀족이 된 이상 잘못한 점이 있다면 사과를 하는 것이 옳은 일이고 배운 자의 덕목이 아니겠습니까? 잘못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사과를 해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우린 못 배운 자들이 아니니까 말이지요!"

"그렇죠. 귀족일수록 타의 모범이 되어야하는 거지요!"

루크의 말을 로제스가 받아친다. 그럼에 라이올린의 얼굴이 창백해졌다가 이내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자신이 평소 천하게 생각했던 여자에게 사과를 하려니 꽤나 부끄러운 건가 보다. 마치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활화산도 같은 얼굴에 라이올린을 보며 로제스가 기대에 찬 눈으로 바라보았으나 쉽사리 말이 떨어지지 않은지 라이올린이 계속해서 침묵을 유지했다. 그럼에 인상을 구긴 로제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왜요? 하기 싫어요? 그렇다면."

로제스가 레이니를 바라보며 눈짓을 하자 그럼에 그녀의 손에 레오니르가 차츰 검집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하며 뼛속까지 시리게할 예기를 잔뜩 내뿜는다.

라이올린이 다시 경기를 일으키듯 놀라며 급히 고개를 숙여 소리쳤다. 저 검에 베여 죽는 것보단 이 부끄러움을 한 번 참는 게 나으니 말이다.

"죄, 죄송합니다. 루, 루크 아스란 공작님.. 고, 공작님을 모욕하려던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조그맣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하는 그녀의 모습에 루크가 피식 웃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쉽게 보내줄 생각은 아닌 것 같았다.

"크게 말씀하셔야지요. 뭐라 그러는지 들리지가 않아요. 혹시 무슨 말을 했는지 들었나요?"

"그.."

장난기가 가득한 루크가 키득거리며 로제스에게 묻자 로제스가 어깨를 으쓱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럼에 더욱 붉어진 얼굴로 라이올린이 한 번 더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죄, 죄송합니다. 루크, 아스란 공작님.. 고, 공작님을 절대.. 모, 모욕할 생각은 아니었습니다..자, 자비를 베풀어..저의 사과를 받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나마 조금 커진 목소리가 이내 모든 귀족들의 귓가에 닿았다. 그러나 루크가 고개를 저으며 헛웃음을 지어 보이고는 대답했다.

"지금 무언가 아주 크게! 착각하고 있는데. 저에 대한 사과가 아니라. 제 아내가 될 로제스 다닐루 님에게 사과를 하라고요 알겠어요?! 알았다면 다시 하세요."

".."

"자 어서요! 이러다가 파티가 끝나버리겠어요."

어느새 이 큰 소란에 파티 내내 흐르던 음악도 멈춘 상황이었다. 그럼에 모든 이목이 라이올린에게 쏠리기 시작했고 루크가 시간을 가리키며 재촉하자 라이올린이 그렇게나 분한지 부들부들 떨리는 몸으로 이내 로제스 앞에 섰다.

동시에 서로 마주치는 시선, 치욕과 분노로 가득 찬 라이얼린이 몸을 부들부들 떠는 게 느껴질 정도 다 그에 비해 로제스의 표정은 여유롭고 승자의 미소를 그리고 있다.

이내 서서히 숙여지는 라이올린의 고개, 한 없이 무겁기만 하다. 그러나 로제스의 눈이 반달을 그리며 이내 비릿한 미소를 띠기 시작했다.

"미, 미안하게 됐어.. 로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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